[리뷰: 8점]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 2016)

영화감상평

[리뷰: 8점]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 2016)

28 godELSA 2 3471 4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하였지만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시다면 이 글을 피하시기를 권합니다.

 

떡밥의 고수들이 끌어올린 '트릭의 예술'!

평점 ★★★★

 

통 '장르 영화'라고 부른다. 관습들을 유형화하고 반복하고,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단순명쾌하게 해결하는 영화들. 그래서 장르 영화의 메인 디쉬는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다. 보다 보면 (반전을 제외하고는) 장르 영화의 결말은 예상되는 경우가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문제가 진행되고 해결되는 과정을 보며 즐긴다. 하지만 장르 영화의 결말을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면? 관객은 그 모호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드류 고다드 감독의 <캐빈 인 더 우즈>가 떠오른다. 공포영화의 관습들을 죄다 버무려 놓았는데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아보이던 모든 것이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예상치 못한 독특한 지적 쾌감을 선사했다. 그 영화의 각본가 드류 고다드가 <클로버필드>의 각본을 맡았었다는 건 신기한 아이러니다. 그래서 <클로버필드 10번지>도 <캐빈 인 더 우즈>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일까. 같은 영화를 중심으로 생각보다 밀접한 연관이 되어있는 두 영화는, 아니 <클로버필드>를 포함하여 세 영화는 영화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장르 영화의 관습을 뒤집어서 전개를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 이러한 장치들이 공포 장르영화에 적용되니 더욱 시너지를 낸 모범적인 표본들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의 후속편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거의 연관이 없다고 보면 된다. (제목 자체도 영화 내의 장소일 뿐이다) 미스터리로 끝나버려 잘 알려지지 않은 <클로버필드>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연관점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본격적 속편에서 드러내기 위한 떡밥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핸드헬드 기법에서 벗어나 있고 전개 내용도 다르다. 이 영화의 제작자 J. J. 에이브람스는 " <클로버필드>의 후속편이 어차피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될 것이라면, <클로버필드>의 테마를 유지하면서도 제작에 의의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한 후속편의 개념을 넘어 <클로버필드>의 형제와도 같은,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속편의 딜레마를 예상하고 완전히 다른 스핀오프 격에 가깝게 제작한 과정은 이 영화가 거의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 지점을 확보한 대목이다. 어쩌면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속편 아류작들이 얼마나 지리멸렬한지에 대한 깨우침일까. 기존에 머물지 않고 속편으로서의 독창성도 확보한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가장 영리한 전략이다. 또다른 프랜차이즈의 탄생이 기대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초반부에는 싸이코 납치극을 연상케 하더니 이내 뒤집어 <우주 전쟁> 같은 SF극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더니 이내 또 뒤집어 싸이코 납치극으로 다시 확장되어 변모하더니 끝에 가서는 다시 확장된 SF극으로 더 크게 변주된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끊임 없는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변주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장르 사이를 오가기도 하는 이러한 간극의 연결 지점은 바로 극 중에 치밀하게 설치된 떡밥(복선)들에 있다. 사실 극 중에서 복선은 이미 다 알려져 있어서 후반부에서 가서 점차 떡밥이 맞아 떨어지는 것은 반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히지만 떡밥들을 관객이 믿냐, 안 믿냐의 문제다.


이 영화의 트릭은 그것에 기반하고 있다.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말을 믿고 의심을 하게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미셸'의 시점으로 진행되면서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영화는 '하워드'가 하는 모든 말에 논리적 근거를 설치하고도(방공호 외부의 공기에 노출당한 여인 등) 논리의 어긋남을 따로 설치하며(하워드가 자신의 딸 메간이라고 지칭하는 여자에 대한 다른 증언과 물증) 인물 간의 심리적 간격을 조절한다. 긴장감은 낯선 누군가(또는 알지 못했던 정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심리적 간격의 거리감에 따라 그 긴장감이 비례되며 영화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조절해보인다.  합리와 불합리, 친근감과 낯섬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활용해보이는 이 교묘한 트릭은 이내 관객은 전혀 트릭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후반부에 가서는 의심되었던 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 나타나는 지적 쾌감은 장르 영화의 새로운 경지다. 그것이 이 영화를 거의 순수한 장르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는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처음 언급된 '맥거핀 기법'. '전체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속임수'라고 정의되어 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맥거핀의 연속이다. 관객들은 '하워드'가 '미셸'의 차를 정말로 실수로 치었는지, '하워드'가 정말로 여성 납치 살해범인지 알 수는 없다. 사실 진실 공방은 중요치 않다.(이러한 정보의 부재는 <클로버필드>에서 활용해 보였던 핸드헬드 기법의 서사적 효과와 닮아있기도 하다.) 이것은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스토리라인을 산만하지 않게 만들고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더욱 몰입시키는 트릭의 하나다. 진실에 대한 단서들이 맥거핀으로 드러나며 인물 간의 심리적 간격을 조절하고 인물들의 행동에 동기를 불어넣기도 하는 극적 장치.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호함이 긴장감을 강하게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것을 산만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용해보이는 이 영화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와 영화에 대한 이해가 가장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기반이 된 서스펜스는 치밀한 속임수에 기반하고도 있지만 교차편집도 유려한 편집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거기다가 사실적인 벙커의 모습과 조명의 활용을 미장센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공간이 점차 드러나며 공간의 폐쇄성이 강조되면서 긴장감을 구축하고도 있다. 특히 초반부 식사 시퀀스는 정말 무섭도록 아름답다. 아마 저예산 장르 영화가 배워야할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 굿맨의 섬뜩한 연기는 단연코 압권. 지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다방면에서 뛰어난 서스펜스 영화를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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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4 소맥  
내가 알고 있는 그 영화가 아니군요 제목이 비슷해서 ㅎㅎ
27 블루와인  
떡밥이라는 표현에 웃고,
솔직히, 클로버필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에, 후속편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게 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구성, 연출, 연기등, 모든 부분에서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영화라는 사실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