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0점] 순응자(Il Conformista, 1970)

영화감상평

[리뷰: 10점] 순응자(Il Conformista, 1970)

28 godELSA 0 2097 1

모든 것이 반짝이는, 현대영화의 광명 같은 클래식.
평점 ★★★★★


<순응자>. 고전영화를 보다보면 지금과도 사뭇 다른, 급진적인 연출의 영화를 만나게 된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영화지만 아마 그 영화가 누벨바그나 모더니즘을 주동한 것은 분명하다. 현재에서도 봐도 익숙하지 않은 연출들, 다분히 새로운 장치들로 무장한 그 영화가 클래식이 되어 현재에 와서도 지적인 충격을 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순응자>는 새롭다. 어쩌면 현대영화의 기교들을 이 영화에서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이 영화를 얘기하기 전에 이 영화를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1959년,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네 멋대로 해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파격적인 촬영과 편집, 상당히 불친절한 내러티브와 기존과는 다른 인물상을 가진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와는 색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내러티브의 일정한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기존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반대하고, 영화의 구조를 깨우치고 그것을 분해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순응자>는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작품 같다. 해부된 구조를 철저하게 잘 꿰어놓고 봉합해놓은 영화랄까. 영화만이 가지는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모아다가 그 효과를 극대화하여 영화의 특수성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같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의 구조를 살펴봐도 기존과 모양새을 달리한다. 일단 순차적이지 않다. 아니,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속에 액자식으로 여러 시퀀스가 나뉘어 담겨 있다. 이것은 연출자가 플롯에 관여하는, 현재와 과거의 교차편집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시간대가 넘어갈 때 씬을 잇는 숏을 눈여겨 봐야한다. ‘마르첼로’의 불안한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오롯히 ‘마르첼로’에게 대입되는 카메라로 알 수 있는 건 마르첼로의 시선으로 본 회상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베르톨루치 감독은 회상의 드라마에 있어서 조작자로서 개입하지 않는다. 되려 인물의 무의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마르첼로’의 시선으로 진행되다보니 객관적인 지표에 있어서 관객에게 부차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되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시에 시간 순보다는 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드라마가 나열되고 있는데이에 의해 돋보이게 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인물의 심리다. 따라서 <순응자>는 사건의 디테일과는 관계 없이 인물의 내면만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소시민적 자화상’(파시즘에 대한 처벌이 드러나는 장면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과도 긴밀히 이어진다.

 

무엇보다 <순응자>는 영화가 이미지 예술이란 점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것처럼보인다. 매 장면에 녹아들어 있는 조명과 색채감, 그리고 완벽한 구도를 자랑하는 이 영화의 미장센은 단연코 아름답다. 딱히 어느 한 숏만 지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한 숏 만으로 인물의 관계와 감정을 가늠케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구도가 계산되어 있는데, 이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범위를 이미지로까지 확장시킨 일환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장센들에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이 영화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인물의 의식의 흐름따라 플롯이 전개되긴 하지만 실제 역사를 다룬 사실성을 보유한 스토리다. 그런데 이미지로 보이는 미장센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화면 안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자리잡고 있는 색채와 채도, 조명은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생기는 이미지과 서사의 괴리감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덧붙여서 흐름이 뚝뚝 끊기는 편집에서 오는 이 괴리감과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이 괴리감이다. 심지어 ‘마르첼로’의 내적 갈등도 이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순응하고 있는 정치적 사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의 인간적인 이상관(정신병원에서 아버지와 얘기할 때 드러난다)과 사이의 괴리감에서 ‘마르첼로’는 사회적 정체성을 잃는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연출이 만들어내는 부자연스러운 괴리감과 일맥상통한다. 이 괴리감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데 인물의 처지를 대변하려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적 언어가 아닐까 싶다. 인물의 심리에 다가서고, 그것을 회화적(미장센)이고 시적(리듬감)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특수한 언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아름답다.


개인 후기) 극장 개봉하고 이제야 보네요. 모든 장면이 매혹적이더군요..! 영화보는 동안 주위에서 하품 소리가 연발된 것은.. 뭐하고 말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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