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스포: 7점] 거미의 땅(2012)

영화감상평

[리뷰-스포: 7점] 거미의 땅(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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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타자화와 물질화, 거미줄처럼 엮인 기억들에 대한 통렬한 응시

평점 ★★★☆

 

<거미의 땅>. 제목부터 낯설다. ‘거미의 땅’이라니. 어찌보면 여기서부터 벌써 연출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 초반부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진 여성들”. ‘거미’는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성들은 아직도 기지촌에 살고 있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무엇이 사라졌나? 다시 말해,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시간’이다. 그럼 또 바꿔서 말하면, 시간은 무엇을 사라지게 했는가? 그것이 이 영화가 메시지를 도출하는 지점이다.

 

사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는 ‘미디어 아트’ 개념의 장르에 더 가깝다. 아니 차라리 미디어 아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만큼 연출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있다. 세 명의 인물이 과거를 회상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주제의식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과연 현실적인 논점을 따질 여지를 제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어떠한 인물만의 기억들을 들으며 그러한 기억이 결집된 ‘장소’의 과거를 쫓는다. 사실적인 근거나 팩트에 주력하기보다는 여성들의 체감적인 경험에 근거를 두고 이미지를 이어나간다. 상당히 주관적인 의미가 반영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에 덧대어진 감정으로서 관객에게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 주관성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사실을 구현하고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논쟁점이 있을 거지만 ‘다큐멘터리’ 장르는 ‘미디어 아트’를 위한 발판일 뿐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구현하는 데 주력할 뿐 사회적으로 문제제시를 하지도 않는다. 오롯히 과거에 대한 인물의 감정을 포착하고 그려나갈 뿐이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이분한다는 데에서 두드러진다. 영화의 전체적인 설정을 아우르는 내레이션이 있다. “과거에서 온 유령들은 편지를 들고 사람들의 문을 두드린다”. 여기에 주목할 것이 있다. ‘유령’과 ‘사람’이 서로 다른 존재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유령’은 과거에 대한 상징으로 드러나는 단어지만 본인이 아닌 타인의 존재감을 형성하는 단어다. 그 유령이란 것은 영화에서 누군가에겐 ‘버린 딸’이기도 하며 ‘소중한 친구’로 나타나는데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데 있어 그러한 존재가 감정의 대상으로 개입하며 인물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한다. 과거에 잃은 무언가에 대해 그리워하는 인물의 사연을 드러내보이며 ‘사람’은 현재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읽힌다. 결국 ‘유령이 문을 두드리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과거의 누군가를 연관짓는 현재의 사람들’이다. 현재와 과거의 사람을 이어주는 장치로 ‘편지’라는 개념이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인물이 회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추상적인 소품이다. 과거에 대한 누군가의 애절함을 드러내는 장치인데 회상하는 본인은 상당히 타자화되어있다. 객관적인 시점으로 이어지는 회상 형식은 ‘버려진 기지 건물’처럼 시간이 공간화거나 물질화된 사물의 이미지와 연관되며 감정의 호소를 낳는다.

 

영화 후반부로 가서는 ‘유령’과 ‘사람’이라는 존재가 시공간만 다를 뿐 각자의 동일한 인물임을 드러낸다. 반전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했던 주체와 객체가 합일시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영화의 메시지는 두드러진다. 과거의 누군지도 모르는 타자화된 회상과 감정으로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의 역사의 연속임을 환기시킨다. 그러한 반전은 미군 위안부의 폐해와 같이 이어지는 삶의 고통을 그려내는 장치며 영화는 다시 ‘편지’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해 제의적이고 위로적인 메시지를 옮겨낸다.

 

영화는 타자화된 시선으로 전개되는 회상 형식과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특정한 장소 뒤에 숨겨진 사연을 드러내보인다. 그것을 타자화하고 물질화하여 시간이 지나 폐허가 된 장소에 담긴 미군 위안부의 삶의 기록을 옮겨낸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과 삶을 영화는 길게 응시한다. 바로 그것이 시간이 사라지게 한 무언가이자 ‘거미’이며 영화의 도착 지점이다. 영화는 거미줄처럼 다양하고 시공간에 있어 넓게 뻗어있는 기억들을 ‘기지촌’이라는 장소로 묶으며 그것은 누군가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하나의 역사임을 명시한다. 과거의 역사이 잊혀진 바로 그 장소들이 영화가 은유하는 '사라진 거미의 땅'이며 영화는 시간 안에서 사라진 역사와 삶을 다시 채워넣는다. 삶을 응시하는 것이 지나쳐 감상적인 면모도 있지만 영화는 그 시대와 공간을 체험하게 해주며 따라서 시간에 의해 사라져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와 사람들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호소만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큰 영화다. 마지막으로, 현재에 남겨진 과거에 대한 ‘관념’을 관찰하기 위한 공감각적 장르의 구현이라면 미디어 아트 장르의 근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틀에 갇혀서 보면 안 될 영화다.

 

개인적 후기)150분의 런닝타임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군요. 영화 자체가 워낙 정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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