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리뷰: 9점] 오누이(あにいもうと, 1953) - 나루세 미키오

영화감상평

[잡담리뷰: 9점] 오누이(あにいもうと, 1953) - 나루세 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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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색하고 쓰기보다는 자유롭게 일기형식처럼 쓴 리뷰글입니다.


시대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보편적 사유와 이미지라는 것

평점 ★★★★☆


12일 오늘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시작한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찾았습니다. 부산에 내려온 지 이제 막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영화의 전당에서 하는 특별전은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제외하고는 전혀 가본 적이 없었고 가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마음 먹고 찾아가 봤습니다. 최근에 만성피로 때문에 극장에도 자주 못가고 집에서 고전영화나 다운받아 보면서 왠지 모르겠지만 “고전영화는 극장에서 안 봐도 된다”는 편견이 버려진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루세 미키오. 저는 알게 된지 얼마 안 되는 감독 중 한명입니다.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렇게 ‘일본의 3대 거장’이라고 불렸던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4대 거장’이란 표현은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걸 알게 된지 어림잡아도 불과 3~4개월 밖에 안 되었으니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지 딱히 실감도 안 났죠. 심지어 그의 작품들 중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겸비하지 않은 채 그냥 영화의 전당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어달라고 했습니다. 제목은 <오누이>였습니다. 제목도 처음 들어본 이 작품은 ‘하라 세츠코’ 같이 아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었고 뭔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대표작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작품관을 느껴보자는 일념으로 상영관에 입장했죠. 편견인 걸 알지만서도 내심으로는 완성도와는 별도로 재미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재밌었습니다. 재미와 별도로 완성도도 훌륭했습니다. 그러한 것이 촬영에서부터 잘 드러납니다. 영화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한 시골의 가족 이야기인데 인물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풀샷으로 촬영되어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배제하고 있는 의도로 보입니다. 영화에서 ‘사건’의 중심은 항상 ‘오누이’입니다. 장남 ‘이노’와 장녀 ‘몬’의 가치관적 갈등이 가장 큰 주를 이루고 있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오누이’라는 하나의 세대는 시대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치라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 성별 외에도 인물의 성격에서 드러나는 가치관의 대립, 즉 ‘가부장제’와 ‘여성주의’의 사회적인 대립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지며 근대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회적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죠. 영화는 관객더러 누구의 편을 들게 하지 않고 건조한 시선으로 관찰하며 사회를 환기시킵니다.

 

영화에서는 ‘오누이’말고도 ‘부모’라는 세대가 가족의 일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의 존재감은 작습니다. 그중에서 ‘아버지’는 장남에게까지 제방 쌓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만 장남 ‘이노’는 그걸 거부합니다. 게다가 장녀를 임신시킨 청년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합니다. 단지 ‘아버지’는 콘크리트로 제방을 손 쉽게 ‘만드는’ 시대에서 강에 돌을 ‘쌓는’ 것만을 고수하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여기서 ‘강’이라는 것은 ‘과도기적 시대의 단면’과 상통하여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아버지가 ‘과거를 고수한다’는 것은 시간을 봉인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행동은 ‘제방 쌓기’라는 행동과 의미가 어느 정도 통합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흐르는’ 시대를 ‘흐르는’ 강에 빗대어 표현하며 삶과 시대의 끊임 없는 운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유를 포착하는 이미지도 훌륭합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거기에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덧붙입니다. 그러한 역동적인 시대 안에서도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덧붙이며 보편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냅니다. 끊임 없이 변화되는 시간을 구사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운다는 것도 훌륭했습니다.

 

웬만한 영화보다도 상당히 만족하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입문작으로 보게 되었지만 상당히 여운이 길고 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전영화치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둔 것도 독특할 뿐더러 ‘여성의 자유연애결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내고도 삶에 대한 통찰까지 이끌어내다니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만 합니다. 빨리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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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6 이스라필  
일본 흑백 영화는 아직 동경 이야기 밖에 못 봤는데
나중에 기회되면 도전해 봐야겠어요
28 godELSA  
요즘은 힘이 많이 빠졌지만 일본 영화는 고전 영화가 걸작이 많습니다.
몇몇 감독 스타일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영향을 미치고도 하죠.
그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리메이크도 몇 번 되었고 오마주도 많이 되었죠.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16 이스라필  
흑백 영화는 아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과 '란'은 봤는데 좀 어렵더라고요.
'라쇼몽'이랑 '7인의 사무라이'는 파일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엄두가 안나네요
그나마 리메이크판으로 접한 '7인의 사무라이'를 도전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