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상영작 감상평

영화감상평

2015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상영작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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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한 상영작 9편 중 7편만 적었습니다.


- <인간>(브리기테 브로드로프 감독, 2014)

마음 속에 휘몰아치는 욕심의 허망

평점 ★★★☆

영화 <인간>은 제목 그대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남자는 아무런 악의 없이 오로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 물건을 나눠주는 이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에, 상인들은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만을 위해서 특정 인물에게 악의를 가지는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즉, 남자는 이타심의 표상이고, 상인들은 탐욕의 표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자가 의도치 않는 상인들과의 갈등 구조다. 영화가 직접 남자를 갈등 구조에 빠뜨리면서 짓밟히는 인간애를 묘사하며 탐욕과 이기심으로 흉하게 탈색되어가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그린다.

영화는 한 명의 남자는 보여주지만 여러 상인들의 모습은 어렴풋이 보여줄 뿐, 잘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이기심이 어느 특정 등장인물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상인의 역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을 가져온다. 따라서 사건이 영화 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바깥으로 확장시키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듯하다. 남자도 분명히 머물렀던 곳이 있을 터인데 왜 떠돌아다니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우리가 되돌아보아야할 것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 <배틀 오브 브리튼>(드니 볼트 감독, 2014)

노사 전쟁, 어디 한둘이겠나

평점 ★★★

한 여자가 강의를 하고 있다. 여자는 정리해고를 노사 간의 전쟁이라고 비유하며 정리해고 대상 근로자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따내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여자는 비교적 논리적인 모습으로 냉정하게 각각의 상황 대처법을 설명하지만, 실제 정리해고의 근로자들의 모습은 절망적이고 의욕적이지 않게 그려지며 정리해고 상황을 대처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정을 회사 측에 토로하면서 구걸하는 모습처럼 그려진다.

영화는 이 두 시퀀스들을 씬마다 교차해가며 이론과 실제를 대조한다. 전략의 이론은 실행될 수록 희망찬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는 오히려 실행될수록 절망적으로 치닫는다. 점차 전략의 괴리감이 벌어지고 극대화될수록 현실의 비참한 칼바람이 심히 와닿는다.

전쟁에서 전략을 짜는 것과 실제로 전투에 나서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전략을 짜는 입장에서는 실제 전투에서 벌어질 상황을 계산하여 전략을 짜야한다. 이것을 이 영화에 끼워맞추면 여자의 효율적인 강의를 위해서는 정리해고의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근로자들의 내적인 고통과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남의 일이라고 서류상으로만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되었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이 정리해고 당할 때 아무 일 같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진다. 그 근로자들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극대화한 감정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 <이 사람을 보라> (디미타르 쿠트마노프 감독, 2014)

이미지를 수렴하는 거친 질감의 흑백 미장센  

평점 ★★★★☆

‘아다’는 시골에서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맞으며 신발도 없이 맨발로 길을 다닐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다. 집에는 병을 앓고 계시는 어머니 한 분만이 계신다. 힘들게 장작을 찍는 ‘아다’를 누구 하나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다’는 마치 버려지고 홀로 남은 외롭고 소외된 존재처럼 보인다. ‘아다’에게 어머니도 삶의 짐 중 하나로 보일 정도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고 ‘아다’는 호롱불을 켜고 그 동안 짊어져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아다’는 환상을 보게 된다.

영화는 그 환상을 통해 ‘구원’의 의미를 되새긴다. ‘아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구원을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죽어버리게 되고, 결국엔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남자의 말처럼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 영화는 무신론의 논리를 펴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반운명론적인 논리를 펴내려가며 ‘구원’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다’의 감정을 대변하는 흑백 미장센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백미다. ‘아다’의 힘든 삶을 반영한 듯한 거친 화면과, 내적인 고통과 갈등이 심화될수록 영화의 흑과 백의 어두운 대비는 선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아다’가 삶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환상’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기존의 거칠고 어두운 흑백보다 더 부드러워지고 밝아진 화면을 연출한다. ‘아다’가 스스로는 구원받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컬러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감정과 영화적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 <캠> (칼-요한 베스트레고드 감독, 2014)

차분하게 찍어나가는 자연의 경고

평점 ★★★

“괴생물체들이 마을을 침공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보이지 않고 인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단순하지만 카메라 무빙이 독특하게 인상 깊은 영화다. 카메라는 한 곳에 고정되어있고 오로지 오른쪽으로 한 바퀴 회전하며 한 씬을 이루어낸다. 영화 내의 모든 씬이 전부 이렇게 촬영된다. 영화의 초반부 씬에는 몇몇 동물들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생물이 전혀 찍히지 않아 다큐멘터리로 착각이 될 정도지만 이상한 생물체가 갑자기 나타나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개의치 않고 계속 고정된 채 회전한다.

영화는 그 괴생물체도 자연의 일부로 다루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인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을에서 그 괴생물체는 모여서 산다. 마치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자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듯하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이 돋보이는 스릴러.

 

- <전쟁과 사람들> (토마슈 마추무스탁 감독, 2014)

이겨도 지고 져도 또 지는 전쟁

평점 ★★★☆

여자는 영화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병사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전쟁에서 활약하는 ‘병사’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에 더 중심을 둔다. 다리 불구가 되어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그리면서 가족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슬픔 등의 감정들을 포착해낸다. 그러면서 폴란드가 독일을 이겼다는 국가 전체가 기뻐하는 장면과 교차하면서 전쟁의 비극성과 아이러니를 표방한다. 아무리 독일 장교를 죽이고 공로를 세웠어도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는 한 사람의 행복을 앗아가 버린 비극적인 사실을 그리면서 전쟁에 대한 반감을 비교적 따뜻하게 묘사해낸다. 인물들의 인터뷰를 교차하면서 다큐멘터리적인 딱딱한 공식을 따르지만 동시에 애니메이션적인 요소들을 추가하여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라의 승리를 우상화하기 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개인적인 비극의 통탄을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장르를 잘 섞어 따뜻하고 부드럽게 연출해낸 영화.

    

- <절경> (남근학 감독, 2014)

설경을 보며 따뜻한 어묵을 먹는 듯한 느낌

평점 ★★★☆

한 남자가 지붕을 수리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 영화 내내 남자는 행복하기는커녕 웃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같이 작업하기로 했던 사람은 못 나오게 되고 혼자서 쓸쓸한 모습으로 집을 철거하고 있을 뿐이다. 남자는 무언가 삶의 외로움과 책임을 혼자서 무겁게 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며 삶의 현장으로 상징되는 지붕은 연약하고 쉽게 부서져 간다. 남자가 저 지붕에서 불안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재 살아가면서 무거운 책임의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고독으로 가득 찬 남자의 내면에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버지다. 남자는 아버지에게 제주도로 출 장 와있다며 거짓말하고 아버지와의 통화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라는 인물은 남자가 책임지고 살아야 할 하나의 부담스런 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남자를 이하고 위로해주면서 남자의 짐을 하나 덜어준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남자에게 힘든 삶을 쉴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쉼터라는 본연의 의미로 되새겨진다.

남자는 아무도 모른 채 죽어있는 여자와 그 옆에서 한 아이를 발견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신기한 건 날씨는 춥고 보살펴 줄 어머니는 죽어있는데도 아이는 울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픈 동안에도, 심지어 죽고 난 이후에도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고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모성애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기적 같은 장면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늘에 눈이 내리고 차가운 절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족애의 따뜻한 절경을 묘사한다. ‘절경’의 중의적 표현이 인상 깊은 수려한 영화.

 

- <벌레아이> (김윤경 감독, 2015)

미장센으로 승화되는 무채색의 무게감

평점 ★★★★

영화는 공사현장에 비닐봉지에 담겨진 채 버려진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이 주변으로 벌레들이 모여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벌레는 어디에서나 사랑받지 못하고 혐오되고 죽여지고 버려지는 존재다. 영화는 버려진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벌레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문하는 장면이다. 벌레들은 아이를 덮어주고 아이는 자신과 같은 버려진 존재들에 대해 동질감을 느꼈는지 비로소 편안한 얼굴을 짓는다. 이 장면은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가 미개한 벌레로부터 사랑을 받는 듯한 그런 느낌을 가져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아이는 어떠한 존재이던 간에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아이는 사랑받는 행복을 추구하게 되지만 종종 자신이 벌레라는 환상과 자기비하에 빠지게 된다. 아이의 사랑에 대한 갈망은 심해지고 점차 그것이 입양 부모의 친자식에 대한 질투심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질투가 점점 심해지면서 부모의 사소한 행동에도 자신을 폄하하기 시작하고 벌레라는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아이가 하나의 괴물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아이를 버리는 개인들과 버려진 존재들에게 무관심한 사회가 아이에게 어떤 인성을 심어주게 되는지 이야기한다. 그런 측면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가 버려진 트라우마 때문에 매일 불안감에 떠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오며, 버려졌던 존재로서의 애환과 증오를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환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영화는 고아수출국으로 오명을 쓰고 있을 만큼 고아가 많은 우리나라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빨리 고쳐나가야 할 문제라며 거침없으면서도 안타까운 어조로 말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흑백으로만 그려진 프레임으로 이루어져있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원색이 사용되는 장면이 거의 없다. 심지어 아이가 행복해하는 순간에도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애니메이션 연출을 미장센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데, 아이의 내적인 감정들과 흑백의 화면이 서로 다채롭지 않다는 것에서 일치한다. 오로지 무채색만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불안감과 행복, 이 두 가지 감정만을 오가는 아이의 심리를 반영하여 보이는 듯하다. 그림에 감정의 무게를 두는 미장센은 급기야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의 흑백 미장센’이 어우러지는 진중하면서도 공격적인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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