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이저 헤드, 내 사랑 린치에게.

영화감상평

이레이저 헤드, 내 사랑 린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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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영화가 있나!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볼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다. 그는 언제나 해석되기를 거부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나 일부 비평가들은 해석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도 언제나 해석되어 왔다.
그의 영상언어는 이레이저 헤드라는 초기작에서 다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린치가 자주 사용하는 수법중에 어둠 속에서 인물이 등장하거나, 빛과 어둠을 이용하여 사물을 표현한다거나, 이성의 파괴로 상징되는 대가리 박살 씬 등이 그렇다. 제목 자체도 '이레이저 헤드' 아니겠는가.
대가리 박살 씬은 블루벨벳, 광란의 사랑,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레이저 헤드 등등 많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나오는 중요한 씬이다. 블루벨벳으로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겠는데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주인공 맥라클란이 아버지의 부재 이후 또 다른 아버지의 상징이랄 수 있는 데니스 호퍼를 만나게 된다.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세상의 더러운 면을 목격하면서 맥라클란은 이면의 아버지로 상징되는 데니스 호퍼의 대가리를 박살냄으로써 평범한 일상으로 귀환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될 때 보여준 그 아름답고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세계로 말이다.
블루벨벳이라는 컬트의 명작을 만든 이후 린치는 TV프로그램에 손대게 되는데 트윈픽스라는 미드이다. 이 드라마 역시 블루벨벳의 연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중산층의 더러운 이면이 가득한 드라마이다.
린치에겐 고난이 있었다. 사구라는 SF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그는 상업영화 시스템에 의해 편집권을 빼았기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영화에 내걸지 않고 그 유명한 '앨런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크레딧을 올린다. 또 다른 거장 스텐리 큐브릭이 상업영화시스템으로 인해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없었던 작품인 '스파르타커스'를 자신의 필모에서 지워버렸듯이 말이다. 어쨌든 그 이후 린치는 적은 제작비라도 자신이 모든 권한을 쥐고 영화를 만들게 된다.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인랜드 엠파이어 시리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스트레이트 스토리나 엘리펀트 맨 같은 좋은 영화들도 있지만 상업영화와 어느 정도 합의를 통해 만든 영화이니 린치의 영화를 논할 때는 제외하고 싶다. 특히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서정적인 영화여서 되려 린치가 만들었다는 그 자체로 괴기스럽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완성된 대본이 아닌 것 같다. 실험 그 자체로의 의미가 있겠다.  부기나이트처럼 포르노 산업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하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듯한 주인공들의 신출귀몰은 포르노의 무시무시한 번식력과도 같고 여자 주인공은 누구도 갖지 못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포르노 속 여주인공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공포의 대상인 카메라맨(일명 미스테리 맨)은 유일하게 여성을 취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카메라 그 자체이다. 남성 캐릭터 중에 유일하게 성욕을 충당하지 못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것은 거세된 인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카메라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징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맥을 짚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흘러가다가 뜬금없이 마무리된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실험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있기 이전의 위대한 실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감히 말하길 가장 위대한 영화이다. 탈서사적 서사, 그 자체를 보여주었으며 그 안에 영화산업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와 강렬한 영상미, 그리고 린치 특유의 미학이 완벽하게 성립되어 있는 위대한 영화이다. 말도 안되는 네러티브로 이렇게 말도 안되는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린치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난 개인적으로 린치의 필모 중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이레이져 헤드가 가장 좋다. 그는 언제나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미친 이야기를 하지만 그나마 제대로 전달되는 좋은 영화는 두 개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시스템과의 합의 없이 스스로 만들어낸 영화로써 제대로된 역할을 해내는 것은 그 둘 뿐이다.
린치는 자신의 영화를 '직관하라!'고 한다. 해석없이 그냥 닥치고 보라는 얘기다. 광란의 사랑에서 니콜라스케이지와 로라던이 드라이브 하는 장면이 있다. 로라던은 묻는다. 왜 그곳으로 가야하냐고. 관객들은 상상한다. 로라던이 왜 가야하는지 물었으니 그들이 이동할 장소는 분명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로라던이 물어봤던 '왜'의 장소는 'Fuck you'가 되어 돌아온다. 장소를 나타내는 표지판에 뻐큐라고 써있다. 그러니까. '해석은 사절! 직관하셈!' 이라는 거다.
그리고 직관할 수 밖에 없다. 인랜드 엠파이어가 그렇다. 보다보면 지친다. 비스무리한 애기가 4~5개가 겹치는데 그걸 계산할 이유가 사라진다. 심지어 뜬금없이 토끼도 나온다.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라. 완성되지조차 않은 이야기이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마지막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다니!'이다. 린치도 인정하는 거다. 말도 안된다는 걸.
린치가 계속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면 언제나 '미친'영화를 만들 것이고 우린 그걸 '직관'해야한다. 린치가 인정한 이레이저 헤드의 완벽한 비평이 없듯이. 그리고 그 역시 완벽한 영화를 내걸지도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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