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그냥 신 하세요. 인정합니다.

영화감상평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그냥 신 하세요.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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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부분 11관왕에 오른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 그가 싱글벙글하며 마이크를 잡고 외친 일갈은 다름 아닌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였다.

‘내가 이 세상의 왕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묘한 반감이 들었다. 잘 난줄 충분히 아는데, 굳이 그걸 또 티 나게 들어내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랄지, 그리고 당시에 <타이타닉>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었는데, 타고난 성격상 너무 잘 나가는 사람이나 대상을 보면 좀 꼬이는 대목이 있다.

‘그래, 당신 참 잘났어. 당신 똥 야광일 거야’



제임스 카메론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친 놈’이라고 한다. 어떤 대상에 미치기 시작하면 정말 죽기 살기로 한 길만 파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 미치는 대상이 영화였기에,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깊이와 정열로 미칠 수 있었기에,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 2>, <어비스>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거만한 천재가 <타이타닉> 이후 10년 넘는 인터벌을 갖는 동안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 <해리 포터>, <배트맨> 같은 영화들이 시리즈로 연작되며 블록버스터 시장의 지도를 바꿔놨고, ‘제임스 카메론’ 이란 이름은 ‘피터 잭슨’ 같은 이름으로 서서히 잊혀가는 판이었다.

‘엄청난 돈을 벌어놨는데 굳이 머리 아프게 작품 안 해도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겠어.’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냥 ‘살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천직에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하게 미쳐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이 사라진 동안 극장에 걸렸던 수많은 이름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그가 왜 이 시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감독이자 최고의 상업 영화 기술자인지 명확하게 증명하는 영화 <아바타>가 드디어 우리에게 도래했다.

분명, 개봉이 아닌 도래란 표현이 적합하다.



놀랍도록 발전한 CG 기술력이나 전에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는 하나의 도구와 요소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영화전체의 짜임새보다 CG 기술이 만든 비주얼을 더 중요시 할지도 모르지만, ‘보는’ 영화든, ‘생각해야 하는’ 영화든 간에 ‘좋은’ 영화는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이 서로 튀지 않고 잘 어울려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 조화의 앙상블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관객들은 불편해하거나 지루해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누구보다도 CG 기술에 의지해 영화를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 기술력이 진보할수록 그의 바운더리가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바타>는 마침내 적토마를 얻은 관우처럼, 진보한 신기술을 손에 넣은 카메론이 유감없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신천지 영화의 표상이다. 하지만 엄청난 용량의 수퍼 컴퓨터 메모리를 빌어 탄생한 <아바타>의 모티브는 이미 롤랑 조페의 1986년 작 <미션>에서 충분히 경험했던 것, <지옥의 묵시록>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와도 결을 같이 하는 스토리 텔링은 자칫 범작도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요소였다.

그러나 카메론은 뻔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야기 위에 야심 차게 만든 신천지의 그림을 교묘 적절하게 덧입히는 데 성공한다. 극중 외계인 종족 ‘나비’들이 소원을 비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이야기와 비주얼은 서로 공유하고 공존하며 조화를 이뤄 영화를 이끌면서 때론 당당한 전사의 거친 호흡을, 때론 한 없이 부드럽고 신비한 생명의 느낌을 스크린 밖으로 표출하여 관객들을 새로운 신천지로 안내한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생소했던 ‘나비’들이 생존의 땅을 빼앗기고 외치는 분노의 절규가 우리 현실에서 생생하게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거대한 괴물과 교감하며 고공에서 솟구치는 짜릿한 순간을 느낄 때, <아바타>는 이미 상당수 관객의 마음을 집요하게 풀어 헤집어 놓고 있었다. 바로 이런 카메론의 재주와 능력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요즘 이름깨나 날린다는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들이 만든 그 어떤 영화에서도 이런 시기적절한 조화의 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당신 정말 잘 난 사람 맞네.’




제임스 카메론은 굳이 어떤 한계를 극복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계’란 굴레도 이미 누군가의 발길이 닿았던 영토라고 생각하고 <아바타>라는 신검을 뽑아들어 지금까지 어떤 영화도 닿지 못한, 위대한 신천지의 길을 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혹은 그가 이 영화로 ‘왕’이 아닌 ‘신’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꼬이고, 비주얼로 떡칠을 한 영화보다는 <이터널 선샤인>, <박하사탕> 같은 영화가 천만번은 더 좋은 나에게 <아바타>라는 영화는 잠시 동안 기억에 남을 뿐,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오를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162분의 러닝타임에는 적지 않은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꿈을 위해 인생의 모두를 바친 진실한 예술가의 숭고한 혼이 담긴 신천지의 시간이며, 이 시간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가는 위대하다.

‘그래요, 인정합니다. 당신 그냥 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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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hoke  
제 생각인데...아바타는 어비스와 터미네이터2의 관계 처럼 일종의 실험적 성격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마도 다음 작품은 총몽일텐데, 이 총몽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기계 사이보그라서 기존의 웬만한 cg가지고는 표현불가거든요. 뭐 속도빠르고 통쾌한 단순 액션이라면 가능하겟지만 비극적이고 어둡고 시니컬한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이전에 만들어진 tv물 다크엔젤 역시 총몽을 염두에 둔 실험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10 사라만두  
정말 돌아온 `락`님 맞으신지? ㅎㅎ
맞다면 글솜씨는 여전하시네요.
여튼 평 정말 잘 읽었구요, 말씀대로 인터벌 기간이 레스트였는지 트레이닝이었는지
직접 확인하러 빠른 발걸움 해야겠슴다.
1 돌아온락  
네. '돌아온' 락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만두님도 좋은 글 여전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