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영화감상평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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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安 감독이 <Brokeback Mountain> 이후 2년만에 <色, 戒>를 가지고 돌아왔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Leone d'Oro(황금사자상)와 함께-

 


이번에도 영화를 본 후 2년 전처럼 머리 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갖가지 생각들이 날 죄여왔다.


 


1.


 


인간은 나약하다.


강인하게 단련한 정신도 육체 앞에서는 나약하게 무너진다.


 


나라를 일본에 팔아 먹은 친일파의 핵심 인물 '이'(양조위 분).


그를 처단하기 위해 '막 부인'(탕웨이 분)으로 위장하여 접근하는 '왕치아즈'.


저항세력의 표적인 '이'와 죽음을 감수한 임무를 띤 '막 부인'은 둘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로 첫 대면을 한다. 그런 그들이 육체의 욕망에 무너진다. 서로에 대한 경계가 계속되는 정사를 통해 풀어지는 것이다. 어느새 누구보다 신중했던 그들은 육체에 지배당하고 만다.


 


상식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희생한 '막 부인'이 '이'에게 빠져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적극적인 저항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 그들의 최대 적인 매국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막 부인'은 말한다. '이'는 자기 몸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와 심장마저 죄여버린다고. 적대감과 경계, 희생 정신으로 시작했던 정사가 위험하고 치명적인 사랑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매사를 신중히 경계하며 사는 '이'마저도 '막 부인'에게 마음을 열어 버리지 않는가.


 


육체, 육체적 사랑, 그 치명적인 유혹 -


 


2.


 


<色, 戒>에서 보는 여성에 대한 시각에 대해 .


 


영화에서 그녀들이 하는 일이라곤 담배를 물며 마작을 하고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떠는 일이 다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자기 다이아 반지는 몇캐럿이냐는둥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만 할 뿐이다. 물론 친일파 수장들의 부인들이지만 한심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왕치아즈/막 부인'의 태도 역시 실망감을 준다.


'막 부인'과 '이', 둘 다 육체의 욕망에 무너져 버린 것은 같다. 하지만 '막 부인'의 접근 목적은 '이'의 암살을 위한 것이었다는걸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어떻게 보면 여느 남자들처럼 젊음과 美라는 것에 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항 세력으로서의 '막 부인'은 욕망에 넘어 가지 말았어야 한다. 욕망에 넘어 감으로 인해 남성 앞에, 육체적 사랑 앞에 약해지는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만다.


 


李安 감독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영화에서의 모든 여성은 약하고 무력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영화 마지막 부분 채석장에서 '막 부인'의 극단 친구중 한 명의 여성이 겁이 질려 벌벌 떠는 표정과 그들이 고문에 바로 그들의 저항 계획을 실토했다는 점 역시 나의 이러한 생각에 힘을 얹어 줬다.


 


3.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가진 엄청난 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李安 감독의 중국이 부러웠다.


 


똑같은 일제 강점기를 거친 한국과 중국.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역사 문제가 많은 우리나라 정부는 그 해결책에 대해 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문화예술계에서 이러한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되새기기에 관심을 쏟는 것도 아니다. 중국 정부의 행동에 대해선 잘 모르겠으나 <色, 戒>를 보면 이와 같은 영화 한 편이 얼마나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속상하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이러한 사실을 정녕 몰라서 하지 않는 걸까? 세계적인 감독 李安. 그의 영화는 중국에서만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개봉한다. 영화 초반부, 홍콩 대학에 피신한 학생들이 펼치는 반일 저항 연극은 유치한 대사들이지만 우리의 선조들도 같은 경험을 했기에 가볍게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영화의 기본 골격인 매국노의 처단을 위한 행동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국 관객들에겐 선조들이 어떤 경험을 했었나 알려주면서 애국심을 고취시켜 줄 수 있고, 타국의 관객들에겐 왜곡되지 않은 역사에 대해, 비록 완벽한 논픽션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영화의 파급 효과는 대단한 것이다. 요즘 시대에 무슨 애국심 고취냐, 지난 일 들춰내서 뭐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고 내가 있기 전에 나라가 있는 것이다. 역사는 좋은 일이건 좋지 않은 일이건간에 잊혀지기 전에 계속 다시금 들춰내야 한다. 그래서 난 중국이 부럽다. 李安이라는 세계적인 감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감독이 역사를 들춰내 줘서.


 


"Love and torture co-exist"


- 李安



http://www.cyworld.com/gangfilmn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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