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감독의 을 지지하는 가 띄우는 글

영화감상평

심형래 감독의 <허황된 꿈>을 지지하는 <벌거숭이 꼬마>가 띄우는 글

G 이영화 1 2043 5
*감상평이 없다고 아래에 그러시길래  저와 비슷한 감상평을 대신 올립니다.



글쓴이 :독을차고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


며칠 전 출근길에 신문을 보다가 <폴 포츠>라는 인물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휴대 전화 외판원 출신인 그는, 지난 6월 영국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를 불러 우승하며 일약 주목 받는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불룩 나온 배에 허름한 양복 차림인 그가 무대에 올라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하자, 심사위원들과 방청객 사이에서는 비웃음과 차가운 시선이 흘렀다. 이윽고 그의 노래는 시작되고, 그 순간 꿈을 향해 살아온 한 사람의 목소리는 천상의 소리가 되어 듣는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동영상을 보거나 음반을 사서 들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의 가창력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실력으로만 치자면 그에게 부족한 부분이 왜 없을 것인가? 사고로 성대를 다치고 몇 년 간은 생업에 종사해 온 사람인데 말이다.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대상은, 고단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디워> 논쟁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디워>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맹목적인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휘둘리는 대중으로 묘사한 글을 보았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표를 구하지 못해 새벽 2시 40분에 자다가 일어나 극장에 가 <디워>를 보게 된 이유를…….

워낙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보니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꼭 보고 싶었다. 아니다, 필자는 그 정도 이유로 알람을 맞춰 놓고 새벽에 극장을 찾을 만큼 부지런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따지고 들어가 보니, 이유는 간단하고 뚜렷해졌다.

오해와 편견의 난관을 뚫고 오랜 시간 공들여 자신의 꿈을 이뤄 놓은 심형래 감독의 노력이 주는 감동을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디워>라는 영화는 동시상영작이었다. <인간 심형래>의 꿈에 대한 도전을 그린 <인생극장> 한 편을 덤으로 틀어 주는…….

<디워>를 관람하는 지지층이 3040 세대라는 분석을 살펴보면, 아마도 그들 또한 필자처럼 꿈을 위해 노력한 자에 대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3040 세대는 심형래 감독의 코미디를 보고 자랐고, 현재는 고단한 현실의 한가운데 서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지가 과연 우매(愚昧)한 대중들의 광풍으로 치부될 수 있는가 하는 분한 마음도 느껴 본다.



<디워>,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있는 영화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여느 괴수 영화들처럼 단순한 플롯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500년에 한 번씩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어 승천하고 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라는 전설이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 구성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와 맞물려 전체적으로 스토리라인이 어설프고 빈약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인물 중심의 장면과 괴수 중심의 특수 촬영 부분이 현격한 수준 차를 드러내며 전체 작품의 내적 구성에 있어서의 단절과 부조화를 초래한다는 커다란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서브 플롯의 디테일한 설정을 통한 내러티브의 견고함을 보완할 필요를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대작이라 일컬어지는 <트랜스포머>나 <판타스틱 4 : 실버서퍼의 위협>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의 결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전까지의 질주하던 스릴감에 급제동을 거는 허무함까지 안겨 주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나 <판타스틱 4 : 실버서퍼의 위협>은 현란한 볼거리와 상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만한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워>는 어떤가? 우리네 <전설의 고향>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무기 전설을 몇 배의 스케일로 확장하여 실로 장대한 비주얼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아주 먼 옛날 시골집 안방에서나 오가던 잊혀진 우리 이야기를 현대의 LA 한복판으로 끌어내어 사실감 있게 그려 내지 않았나?

LA 시가전의 비주얼은 어떤가? 다른 모든 부분을 차치(且置)하고라도 이 시가전 씬은 두고두고 영화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중과 지상에서 펼쳐지는 액션씬은 그야말로 관객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우고, 손에 땀을 쥐게 하지 않았던가?

이만하면 한 편의 괴수 영화로서, SF 영화로서 나름의 존재 가치는 스스로 획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는 텍스트로서 <디워>의 존재 가치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디워>에서는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해 악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즉, 스스로 제물이 되기보다는 사제(司祭)가 되어, 제물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우리 국민들이 있다. 이들을 제물로서 사지(死地)에 보내놓고도, 본인은 사제(司祭)로 머물면서 회개에 게으른 몇몇 사람들도 있다. 이들조차도 스스로 희생을 결심하고 용기있는 제물이 되는 순간,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비약된 것으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관점에 따라서는 <디워>가 더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충분한 존재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판은 하되, 비난은 말자


건전한 비판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디워>에 대해서도 수많은 비판이 오고가길 바란다. 그래야 심형래 감독이 그 비판을 토대로 더욱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영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영화판에 뛰어든 이방인 심형래에 대한 비난이 넘쳐나는 것이다.

<디워>의 흥행이 할리우드에 비견할 만한 우리 기술력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라는 의견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서편제>나 <쉬리>의 흥행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편제>의 경우 뛰어난 작품이기는 하지만,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당시의 유행어를 반영하듯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넘어선 자부심과 애국심에 기대어 정치인,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나? <쉬리>는 어떤가? 우리도 할리우드 수준의 액션씬을 찍어 냈다는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과 남북 분단 상황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전면에 내세워 애국적인 (?)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던 것은 아니었나?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애국심과 영화의 흥행을 연결시켜서 관객들의 냉정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문제점들을 부각하여 “○○는 영화도 아니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비난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필자는 이러한 근거로 지금의 비판이 영화 자체보다는 인간 심형래에 초점을 둔 비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걸려 있는 일반인들의 영화평들을 보아도, 평론가들을 능가하는 분석을 하고 있는 관객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디워>를 관람하는 관객들을 바보로 표현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객을 바보로 생각하는 사람이야 말로, 영화를 자신의 이념이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객은 바보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깨인 감독이 끊임없이 바른 생각들을 주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이다. 블로그에 휘갈긴 그 폭력적인 비난글조차도 필자에게는 오만한 스노비즘의 또다른 표현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본인들이 보기에는 “감독 같지도 않은 자가 만든,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가 시쳇말로 “대박”을 치고 있으니 당황스럽기도 할 일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가 결국은 “애국심”이었나 본데, 좀 더 고민해 보시라. 그런 결론을 내린 자체가 너무 얄팍하게 이 세상을 바라본 결과가 아닌지부터……. 그리고 본인들이 “천일야화”를 쓸 만큼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이 땅에서 열정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수고 또한 존중해 줄 줄 아는 넓은 가슴도 가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서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울 줄 아는 진정한 영화인의 동업자 정신을 길러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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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안말순  
  잘 지적 하셨네요,,아무도 댓글 안 다신다,, 뭐 따질말이 없으니 ㅎㅎ
왜 이만큼 해 놓은것도 모르고 처음부터 할리우드랑 비교하는지 모르겠네요.. 처음 시도에 이 정도 파급 효과 이뤄낸건 대단한거 아닌가요?이런게 우스운데 왜 자기들은 아무것도 못하면서 까기나하고 진짜 어이없음,, 그렇게 까는데 자기는 그럼 2천만은 모아야지,,백만도 못채우면서 큰소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