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다, 쏠테면 쏴라

영화감상평

쏜다, 쏠테면 쏴라

1 흰곰 5 2292 5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마이 와이프.
일이면 일, 요리면 요리….
별로 가리는 것 없이 척척 다 해치우는 내 아내가
유일하게 못하는 것은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골고루 보는 것이다.
반찬은 요모조모 구석구석까지 고루고루 먹는 그녀는
영화만큼은 언제나 한 종류만 보려한다.
늘 언제나 always 해피앤딩의 영화.
그 구조가 무협지만큼이나 단순해도 항상 그 종류다.
호러, 컬트, 예술, 비극………..
우리 마누라는 영화에 있어 혐오 조건이 너무 많다.
심지어 주인공의 외모도 왠만하면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재밌게 보는 “슈렉”도 안봤다.

신혼 시절 부부싸움이 극도의 신경전 양상으로 흐르다
결국 각 방의 대치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을 때,
나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볼륨을 높이고
공포 영화 축에 끼기에도 민망한“올가미”를 틀었다가
바라던 우위는커녕 베트남전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 받던 끝에
러시안 룰렛 게임에서 죽어간 “디어헌터”의 드니로 형님 친구보다 더
참혹한 참상을 겪게 된 적이 있었다.
연애 시절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아내를 속여 에버랜드에 있는
숲에 가려 동선이 보이지 않는 독수리 요새를 태웠다가
그 놀라운 악력과 심장이 터질 듯한 비명으로
내 아내 자신이 아닌 동승한 여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그 참사가
“올가미” 재난과 오버랩 되며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기괴한 후유증을 가져왔다.
그 이후로 나는 자연스러웠던 공포물 코너의 출입이 예전과 달리
마치 호러 영화에나 나오는 음산한 복도를 걷는 것과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됐을 뿐 아니라 미세한 경기까지도 일으키게 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테마음악도
무섭다며 끄라고 소리치는 우리 마누라를 보면
코믹 멜로물이면서도 교통사고 장면에서 차에 부딪혀 날아가는
여자의 미묘한 표정 때문에 즐거운 장진 감독의”아는 여자”를
공포물로 분류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내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내 아내에겐 “괴물”은 하드코어다.

마음씨 좋은 우리 마누라가 극도의 양면성을 표출하는 영화감상 행태 때문에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혼자 감상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쓸쓸함을 가지게 됐다.
그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장소도
영화관에서 자연히 tv앞이나 모니터 앞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같이 보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도 억울한데
화면까지 초라해져버린 상실감에 말 못할 슬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아픔을 몰라주는 우리 와이프의 “억울하면 끄라”는 예의 바른 말에
주권을 잃은 나라의 국민이 된 심정으로 감정의 내재화를 통해
모든 것을 한으로 승화 시키며 꿋꿋히 계속해서 영화를 보고있다.
나도 나름대로 성질이 있어
9.11 테러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끔 테러를 자행하는데
그것은 바로 아내의 선정기준에 반기를 들고
조금 수위가 높은 영화를 안 그런 척 하며 같이 보는 것이다.
그런 영화의 대표적인 예가 “해바라기”다.
해바라기가 뭐 그럴만한 영화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자신이 독립국가의 한 국민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식민지하에 있는 나로서는 대단한 반란이었다.
어쨌든 그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김래원을 보고
비극적 요소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고, 슬픈 내용 싫어하는거 모르냐고..
내 아내는 씩씩댔다.
그래도 스토리에 조금 빠져들었는지 끝까지 보다가
별로 심하지 않은 잔소리를 끝으로 영화감상을 무사히 마쳤다.
“그나마 김래원이 못된 놈들을 다 두들겨 패서 좀 시원하다나…..쩝”

얼마 전 이런 나의 아내와 김수로 감우성 주연의 “쏜다”를 보게 되었다.
코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누라표 검열에 걸릴만한 내용이었다.
마누라가 그랬다. 너무 슬프다고………

김수로가 마구 웃겨대서 많이 웃었는데…….
내 아내 말이 무리한 억측으로만 느껴지진 않았다.
웃으면서도 왠지 마음 한 켠에서는 슬픈 감정이 들었다.
억지로 상황을 키워가는 스토리 구성과
말도 안 되는 자동차 추격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닮은 구석이 많아 여타 다른 코믹 물 영화처럼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고
묵직한 뭔가가 내 가슴을 누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많이 가지지 못한 자의 컴플렉스일까?
부조리한 여러 사회적 폐단들과 겹쳐지는 서민들의 몸부림이 보여
그냥 웃어 넘겨버리기엔 아주 껄쩍찌근했다.

문제를 위에선 찾지 않고 힘없는 서민에게만 철저히 찾아대는 경찰과
자신의 모든 불법과 범죄를 국회의원이 된 정당한 사유로 바꾸는 정치인
거기에 더해 총맞아도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거만의 진화를 보여준 아버지보다 더 한 그 자제분.

중앙선을 마구 건너뛰는 권력자들 사이에서
차선만 바꿔도 체포되고 처벌받는 일반인의 현실에
화가 자꾸만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그러한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보편화되었기에
유영철 같은, 막가파 같은 이들이 잡히면
부조리한 사회 탓을 하며 변명해대는 것이 아닐까?
불평등한 사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처사들을 매일같이 보는
그래서 상상으로나마 사회에 대고 마구 총질해대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 영화의 끝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과 같이

늘 언제나 always…. 공.정.한. 법에 따른 서민의 처벌이다.

법과 그에 따른 법 집행은 그들이 아닌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과연 그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이번만은 내 아내의 영화를 고르는 기준에 동조하고 싶다.
늘 즐거운 영화만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마음이 아픈 것은 현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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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고운모래  
  ㅎㅎ 편식 성향이 저와 정말 비슷하네요.<BR><BR>재미있는 글 아주 재미있게 보고갑니다.<IMG src="http://www.cineast.co.kr/zboard/miniwini.visualEditor/emoticons/wink_smile.gif" align=absMiddle border=0>

한가지만 부연하면,

권선징악은 해피엔딩...
권악징선은 언해피엔딩이라야 되요.

따라서 해피엔딩을 원할 경우는 권선징악을 택하여야 합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선하면 손해를 보니 악하게 살아야 보답을 받는다" 라는 강한 메세지의 전달이다고 봅니다. 일종의 역설이고 반어법이죠.

권선징악은 동화나 소설...
권악징선은 현실...

Justice나 정의는 책 속에나 나오는 것이고,
한국사회에서, 특히 공직사회에 적응할려면 같이 썩어야 한다. 썩은 사회에 대한 풍자... 거기서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참 씁쓸합니다.

"아버지, 왜 나에게 정의와 바른생활만 가르치고, 이 사회가 썩었다는 사실은 왜 안가르쳐주었나요?" 라고 원망해야 하는 사회...

유치원에서 기껏 바르게 가르쳐 놓고나면, 다시 사회에서는 그렇게 살지 마라고 꺼꾸로 재교육시키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의 권악징선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참으로 씁쓸합니다.
1 머무르는  
  글 잘봤습니다. 저도 쏜다 보고나서 씁쓸한 마음이 많이 들었죠.

극중 감우성 대사중 기억나는 대사가 있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했죠???"
3 영화나 볼까  
  와이프께서 심성이 고우시고 착하신 것 같군요.
오래 오래 행복 하시길...
1 이경훈  
  저는 '쏜다' 보고 상당히 짜증났습니다...사회부조리 비판 의도는 좋았지만

너무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 억지스러웠고...

감우성과 김수로의 일탈이 통쾌함이나 대리만족 보다는 단지 발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분풀이의 대상은 부조리한 사회를 향하고 있으나 실제로 영화상에서 피해를 보는 건

또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난동으로 사고가 나고 사람이 다치고 물건이 부숴지고...

그런 것들을 단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일 뿐이다 라고 제쳐두기엔 좀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졌구요...
1 플로렌스  
  사설이 무척 길면서도 산만하네요.. 읽다가 내가 무슨 글을 클릭했나도 잠시 잊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