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볼만하게 만든 대중용 햄릿 - 야연 [스포일러 주의]

영화감상평

그럭저럭 볼만하게 만든 대중용 햄릿 - 야연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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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연인을 황후로 취한 아버지. 그것에 순응하지만 상심을 하고 산골에 파묻혀 가무에나 탐닉하는 황태자. 형을 독살하고 황제가 되어 황태자를 암살하고 형수를 황후로 맞으려는 동생. 연인을 잃고 차례로 연인의 아버지와 숙부의 아내가 되는 비운을 겪지만 사태를 돌이키려는 여인. 형식적인 약혼을 맺은 황태자의 사랑을 얻으려 하는 또 한명의 여인. 타의로 헤어나올 수 없는 음모에 얽힌 김에 천명을 빙자해 황위를 얻으려는 부자. 
 
아버지는 왜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의 연인을 빼앗았을까? 또, 왜 그녀를 마음껏 차지하지 않았을까? 권력을 돌보는 일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이 그를 살해하고 황제가 된 것은 그녀를 얻기 위해서 였을까? 그의 잔인무도한 행사들은 권력을 잃는다는 것은 그것으로 이미 벌써 죽음을, 따라서 그녀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다른 길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죽음을 택한 것은 그녀를 얻을 수없다는, 그녀에게 배신당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아들은 왜 자기 연인을 빼앗은 아버지를 위해 복수에 나서는가? 이왕 하기로 한 복수에서 그는 왜 그렇게 모질지 못한가? 권력에 대한 욕심, 사랑에 대한 욕심이 모자르기때문인가? 상처받을 줄은 알아도 독심까지 품을 줄은 모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는왜 무고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줄 알면서도 끝내는 물러서지 않았는가? 그는 왜 가면을 썼고 왜 연기를 하는가? 그는 끝내 현실을 현실 자체로 볼 수 없는 존재였고 그래서 죽음을 축복이라고 말한 것인가?
 
사랑을 얻으려 하던 이도, 권력을 얻으려 하던 이도, 사랑 때문에 권력을 얻으려 한 이도, 사랑과 권력을 함께 얻으려 한 이도, 사랑을 잃고 뜻하지 않게 권력을 얻은 이도, 사랑도 권력도 독심까지 품으면서 얻으려고 할줄은 몰랐던 이도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는가? 그것은 누구의 죽음이 가장 순수하고 허망하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알 수 있다. 결국 황태자의 그 노래는 사랑과 독심과 권력이 한덩어리가 되어 연출해 내는 비극이 없는 세상을 향한 구애의 노래였고 유약하고 대장부답지 못했을 망정 그 구애의 진심은 끝내 지켰다. 그리고 청 역시 그러했다.             
 
많은 이야기를 구겨담은 구성이 전혀 아니기에 내러티브에 헛점은 보이지 않는다. 액션 영화가 아니기에 액션 장면들은 아름다웠지만 적절히 제한되었다. 야연에 이르러 극에 달하는 극적 긴장 역시 잘 유지되었다. 감각적인 영상은 따로 놀지 않으며 내러티브와 어울린다. 장쯔이의 나신을 보여주는 장면도 딱 필요한 만큼이었다. 태형을 가하는 장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병사들이 자결하는 장면 역시 영화의 중심 포인트 가운데 하나인 권력의 비정함과 무심함을 보여줄 만큼 충분히 핍진하고 끔찍했다. 고증도 아예 안된 것은 아닌듯 하다. 여인들의 옷은 분명 당나라 시대 여인들의 옷 그대로이고 외국 상인들, 사자, 그리고 낙타가 등장하는 도성 풍경 역시 당나라 때의 장안 풍경 그대로이다. 장엄한 궁성의 모습 역시 실제의 대명궁을 약간 과장한 정도일지 모른다. 당시의 무구나 병장기에 대해 잘 모른다면 함부로 일본풍이니 서구 중세풍이니 말해서도 안된다.           
 
이 영화는 제작 의도에서든 영화 자체로서든 영화의 어느 요소로서든 무협영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나 협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이 영화를 평하는 것은 범주착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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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허상도  
2시간 짜리 여인천하? 사극에 초점을 두고 보더라도 전체적인 진행은 조금 느린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