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3 -2>>그녀가 꿈꾸었던 하늘의 의미 (스포 有)
#뒷북 3-2 탄, 전편에 이어서, 이번엔 영화를 보고 쓴 글입니다.
친일 문제로 말이 많고 탈도 많던 청연. 지금껏 비판적인 태도로 바라보았지만, 보지도 않고 영화를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수 밖에 없겠죠. 과연 몇몇 분들의 말대로 청연은 미화되지 않은 영화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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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연은 미화된 영화입니다. 박경원의 실재 행적과 비교해가며 볼 필요도 없이, 아니 굳이 그녀를 논할 필요도 없이 영화안에서 친일의 악취는 숨길수 없이 고약합니다.
"하늘에 올라가면 조선인, 일본인, 여자, 남자 이런건 상관없잖아."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반대로 땅 아래에도 그녀가 꿈꾸는 하늘은 존재합니다. 영화속 일본이라는 공간은 조선인이라는 차별도, 여자라는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꿈을 이룰수 있는 이상향에 가까운 공간이죠.
"조선이 너한테 해준것도 없잖아."
오히려 조국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도 제대로 갈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게 만들며 매국노라는 굴레까지 덧씌우며 그녀의 발목을 잡기만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은 박경원을 비롯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어떠한 위해도, 차별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남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며 소리지를수 있는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됩니다. 박경원에 대한 미화를 숨길수 있는, 고난을 극복해내는 인물을 통한 극적 긴장감을 살릴수 있는 일본인들의 차별이라는 장치를 걷어내버리고 애써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과거에도 친일적 작품을 통해 논란을 일으켰던 이화여대의 교수이자 작가인 이인화 교수. 많은 이들의 관심은 박경원의 미화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친일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박경원의 실재행적이 아니라, 차별받고 있는 '여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일제치하의 시대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조차 다뤄지고 있지 않은 현실인식과의 괴리는, 작가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상향적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조선은 이상향과 대비되는 여성이 억압받는 공간입니다. 즉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현실인식은 1900년대가 아니라, 2000년 바로 지금의 모습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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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친일적 성향에 치우쳐 있고 연출은 개연성을 잃어, 다소 불쾌하고 크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번쯤 볼 만한 작품이기는 합니다. 또, 영화속 주인공이 박경원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큰 논란의 소지는 없을 수준의 영화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수 있는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박경원의 묘에 묵념하던 두 배우의 모습이 찜찜하게 남아 뇌리에서 쉽게 잊혀질 수 없듯 말이죠.
친일의 악취를 꿈과 동심이라는 향수로 포장하려 했지만, 코만 더 찌를 뿐이었던 이 영화. 작가가 청연을 통해 진정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박경원의 생애가 아니라 이인화 자신의 추악한 내면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부디 그녀가 꿈꾸었던 일본이라는 하늘을 당당히 드러내 보이기 바랄뿐입니다.
친일 문제로 말이 많고 탈도 많던 청연. 지금껏 비판적인 태도로 바라보았지만, 보지도 않고 영화를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수 밖에 없겠죠. 과연 몇몇 분들의 말대로 청연은 미화되지 않은 영화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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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연은 미화된 영화입니다. 박경원의 실재 행적과 비교해가며 볼 필요도 없이, 아니 굳이 그녀를 논할 필요도 없이 영화안에서 친일의 악취는 숨길수 없이 고약합니다.
"하늘에 올라가면 조선인, 일본인, 여자, 남자 이런건 상관없잖아."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반대로 땅 아래에도 그녀가 꿈꾸는 하늘은 존재합니다. 영화속 일본이라는 공간은 조선인이라는 차별도, 여자라는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꿈을 이룰수 있는 이상향에 가까운 공간이죠.
"조선이 너한테 해준것도 없잖아."
오히려 조국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도 제대로 갈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게 만들며 매국노라는 굴레까지 덧씌우며 그녀의 발목을 잡기만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은 박경원을 비롯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어떠한 위해도, 차별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남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며 소리지를수 있는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식됩니다. 박경원에 대한 미화를 숨길수 있는, 고난을 극복해내는 인물을 통한 극적 긴장감을 살릴수 있는 일본인들의 차별이라는 장치를 걷어내버리고 애써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과거에도 친일적 작품을 통해 논란을 일으켰던 이화여대의 교수이자 작가인 이인화 교수. 많은 이들의 관심은 박경원의 미화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친일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박경원의 실재행적이 아니라, 차별받고 있는 '여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일제치하의 시대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조차 다뤄지고 있지 않은 현실인식과의 괴리는, 작가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상향적 공간'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조선은 이상향과 대비되는 여성이 억압받는 공간입니다. 즉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의 현실인식은 1900년대가 아니라, 2000년 바로 지금의 모습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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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친일적 성향에 치우쳐 있고 연출은 개연성을 잃어, 다소 불쾌하고 크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번쯤 볼 만한 작품이기는 합니다. 또, 영화속 주인공이 박경원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큰 논란의 소지는 없을 수준의 영화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수 있는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박경원의 묘에 묵념하던 두 배우의 모습이 찜찜하게 남아 뇌리에서 쉽게 잊혀질 수 없듯 말이죠.
친일의 악취를 꿈과 동심이라는 향수로 포장하려 했지만, 코만 더 찌를 뿐이었던 이 영화. 작가가 청연을 통해 진정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박경원의 생애가 아니라 이인화 자신의 추악한 내면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부디 그녀가 꿈꾸었던 일본이라는 하늘을 당당히 드러내 보이기 바랄뿐입니다.
8 Comments
'그러한 분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 이완용도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더라'라는데에서 뭔가 억 하는 기분이 듭니다. 저 역시 이 영화가 다소 반일도 아니고 친일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감하나, 그것때문에 이영화가 '매장'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집중포화를 맞았어야 했는지 (영화를 안본사람들한테 까지도)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완용이가 친일파가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요?
씨네님의 좋은 글이 제가 지적한 한줄때문에 빛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가 '이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가당착적 논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하기 때문에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씨네님의 좋은 글이 제가 지적한 한줄때문에 빛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가 '이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가당착적 논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하기 때문에 지적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