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황산벌(줄거리(영화내용)없음)

영화감상평

[감상] 황산벌(줄거리(영화내용)없음)

G 운향 10 3114 0
거시기가 뭘까? 무슨 뜻일까? 아무튼 여러 뜻 일 것이다.
오늘 극장에서 황산벌을 보았다. 5점 만점에 3점짜리 영화였다.
일단 황산벌은 M자형 인 것 같다. 처음부분에서는 유쾌한 개그를 선보이다가 가운데까지 지루하였고 그 다음은 전투씬으로 인해 볼거리는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한 황산벌 처음 부분에 '악의 축'이 나오는데 이것이 왜 거론되는지 잘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그것에 대한 풍자적인 내용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또한 신라군 진영에 투입된 2명의 첩자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도통 모르겠다. 목숨 걸고 공을 세워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전쟁의 참상?? 이런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지루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장면인거 같다. 그리고 황산벌 전투시 백제병사와 신라병사의 욕을 듣고 웃을 수 있었지만 특히 백제병사의 욕 중에서 아주 비인격적인 욕들이 있어 뒷 맛을 개운하게 하지 못하였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므로써 꽤 웃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장기에서는 약자의 서러움과 각오를 다졌고 후에 이어지는 전쟁의 참혹함(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와 할리우드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할리우드 였다면 라이언일병 구하기 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기술력(인간장기 표현 등)이 안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연출력은 거의 할리우드와 맞먹는 실력을 보여줘서 우리나라 영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박중훈(계백)의 멋진 눈빛과 장진영(김유신)의 "전쟁은 미친사람이 하는거야"라는 대사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상봉은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끝으로 아쉬웠던 것은 계백장군이 마치 의자왕 개인만을 위해서 싸운 것 처럼 느껴졌다. 백제 말 의자왕의 사치와 끝없는 향락(대표적으로 삼천궁녀)으로 백제가 도탄과 파탄으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가게 만드는 왕을 보며 아무리 충성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환멸을 느꼇을 것이다. 하물며 계백장군 같은 분이....필자의 생각으로는 계백장군은 의자왕 개인이 아닌 백제라는 나라전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처자식을 죽여가는 각오를 보이여 싸운것 같았다.

P.S 계백의 아들 연기는 훌륭했는데 반해 딸들의 연기는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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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G 운향  
  오타, 태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1 권동희  
  사실 의자왕에 관한 것은 다른 말도 있습니다. 신라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였기에 의자왕에 대해 가급적이면 안 좋은 면만을 부각시켜서 기술했다는 설도 있으니까요. 사실 김유신도 따지고 보면 신분에 대한 콤풀렉스로 자신의 누이동생을 친구에게 넘겨 버렸으니까요. 여하간 황산벌..보러가야지요..ㅋㅋㅋ
1 배재훈  
  해동 증자라는 말은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죠. 신라가 백제를 친 것은 강화된 왕권과 정비된 국가체계를 바탕으로 한 신라 공격에 신라의 지배층이 위기 의식을 느낀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왕 이후의 강력한 군사력 정비와 의자왕대의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신라에 대한 백제의 군사적 정치적 우위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백제의 강화는 신라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구요.
1 배재훈  
  7세기 전쟁은 신라로서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1 배재훈  
  그들이 당나라에 대해 비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생존을 위한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라의 백제 침공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타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갈아먹는 것이 아닌 백제의 멸망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장기전이 아닌 신라의 제한적 군사력의 보조와 당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한 단기전으로 백제의 본토를 향한 전투입니다. 즉, 백제와 신라 국경의 수많은 백제의 성곽과 대규모 군사주둔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도성을 침공한 유목민들의 전쟁수행에서나 나올 법한 작전이었죠.
1 배재훈  
  기본적으로 백제의 후방에 침투한 압도적인 숫자의 당군과의 조우가 없었다면 침투한 5만 신라군은 백제군의 후방 교란과 주력군의 이동에 의해 격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7세기의 전장상황에서 전장의 후방에 기습침공한 10만이 넘는 대군의 존재는 저항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1 배재훈  
  또한 황산벌의 5000군사는 백제로서는 신속대응군에 속하는 기동군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기동군을 백제는 최소한 2만 가량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수는 의직의 지휘하에 기벌포로 향하고 5000가량은 계백의 지휘로 황산벌로 향합니다. 당시의 군사적 관념에 있어서 주전선 후방에 2만가량의 군사력을 항시 보유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군사력이 상비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휴전선근방의 주전력을 제외하고 2군 지역의 군사력은 그야말로 소수입니다. 그것보 거점 방어 병력이 대다수 이므로 2만의 신속기동군은 엄청난 숫자라고 보아야 할겁니다. 물론, 주공의 방향이 두 갈래였고, 너무나도 엄청난 전력차가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방어선의 후방에 대한 기습침공이었다는 점에서 백제의 붕괴는 이들로서는 막아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1 배재훈  
  또한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군은 의직과 계백의 패배 이후 왕의 친솔로 저항을 지속하나 멸망당합니다. 영화에서 처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 배재훈  
  2만정도의 숫자는 신라군의 주력을 어느정도 방어 하여 각 지역의 분산된 군사력이 정비될 때까지 적을 견제 하는 것에는 충분한 전력이었을 것입니다. 전의 후방에 십만이 넘는 대군을 투입하는 등의 작전은 신라정도의 국가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므로 백제가 속수무책이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있습니다.
1 배재훈  
  영화 전면에 흐르는 비굴한 전쟁 계획이라는 점의 강조와 어거지에 가까운 전투에 마지못해 나서야 하는 비장함이 서려 있음을 주목할 만 할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역량이 아닌 외세의 역량을 도입해서 7세기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은 비난을 면치 못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결국 전쟁 상황은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의 진압,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그리고 당과의 투쟁에 걸쳐 30년간이나 지속됩니다. 이 30년간의 긴 전쟁상황의 지속이 얼마나 많은 인명적, 문화적, 경제적 손실을 입혔을 지는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반쪽 짜리 통일이 완수되는 것이죠. 애처롭게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