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명작, GATTACA

영화감상평

다시 보는 명작, GATT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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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낳는 데, standard option으로 우선 씩씩한 아들래미를 갖고 싶고, IQ는 150을 넘게 하며, 키는 180cm정도, 눈 색깔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은 아주 약간 곱슬, 그리고 좋은 운동신경을 갖추도록 할 수 있다면… 아! 물론, 부르기도 어려운 이상한 유전병은 당연히 없어야 하며, 나이들어서 머리가 벗겨지지도 않아야 하며, 여러 가지 외부의 질병요인에 대한 강한 면역성은 default option 으로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또한, 돈많고 세심한 부모들을 위한 advanced option이 유전공학 맞춤아기 전문가에 의해 홍보될 것이다. “장차 아드님이 커서 여자친구들에게 아주 사랑받을 조건을 갖추게 되는 데, 지금 1억원은 아주 훌륭한 투자입니다. 아, 부모가 가슴 확대 유전자를 주문안해줬는 데, 어떤 아가씨가 그 이유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제 비관 자살했다는 뉴스 못들으셨어요? 어, 혹시 나중에 확대수술 같은 거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시겠지요?그거 얼마나 부작용이 많은 지 잘 아실 만한 부모님 같아 보이는 데?”

이런 세상이 올까? 영화 GATTACA를 보면, 그 단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난 이 영화 ‘GATTACA”를 “one of the best SF film ever”로 꼽는다. SF 영화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인, 과학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영화전반에 보여준다는 데에 큰 호감을 받았다. 물론 단지 그것뿐이라면 부족하지만, 이 영화는 과학을 배경도구로 삼아 더 중요한 것을 얘기하고 있다. 누구나 다 중요하다고 믿는 ‘인간의 정신’이, 미래의 발전된 과학이 지배하는 어떻게 보면 암울한 세상에서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지, 흥미있는 줄거리로 보여준다.

우선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DNA의 네개의 염기, A(Adenine), C(Cytosine), G(Guanine), T(Thymine) 의 머리글자로만 만들어진 단어이다. 미래에 유전공학에 대한 영화라는 단지 그 정보만 가지고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친구에게 “어.. 저 제목 혹시 염기이름으로만 만들어진 단어 아닐까?” 라고 말했다가 헛소리로 규정당하고, 나중에야 진실을 규명하고 우쭐해 했던 적이 있다. 저런 일본어 같은 단어 밖엔 안나오나? 하는 생각에, ACGT 네개의 알파벳을 가지고 나름대로 그럴 듯한 단어를 만들어 볼려고 한 나의 노력은, GACT(객트?)가 나의 언어적 능력의 극한이라는 가슴아픈 사실만 입증해주었다. 처음에 감독은 “The Eighth Day”라는 제목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듯이, 신께서 6일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에는 쉬셨는 데, 그 하루 후 8일째에 인간이 생명을 신의 수준에서 다루는 날이 왔음을 뜻하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처음 제목도 철학적, 문학적 의미가 짙은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른 영화에 많이 붙여졌음을 불만으로 여긴 탓에 GATTACA로 바꾸게 된 것으로, 개인적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The Eighth Day라는 제목은, 여전히 영화속에서 유전공학 맞춤아기를 제조(?)하는 센터의 명칭으로 붙여져 남아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삭제되었다)

비교적 오래 전 영화라서 스포일러로 지탄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짤막히 줄거리를 짚어본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우성형질의 아기를 맞춤으로 낳을 수도 있고, 유전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대. 자연적인 방법으로 태어나 열성 유전자를 가진 부적격자(Invalid) Vincent Freeman (Ethan Hawke)는 우주선 조종사가 되고자 하는, 유전형질상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Vincent의 열정은, 유전조작을 통해 우성형질을 지니고 있지만 사고를 당해 꿈을 접은 적격자(Valid) Jerome Eugene Morrow (Jude Law)의 정체와 유전자를 빌리는 계획을 세우게까지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우주선 발사 센터인 GATTACA의 직원이 되는 데 성공하지만, 알 수 없는 살인사건으로 인해 한층 강화된 신원확인과 수사팀의 추적으로 난관을 겪는다. 그 와중에서 비슷한 처지의 Irene Cassini (Uma Thurman)와의 사랑이 싹트며, 적격자인 동생과의 수영시합에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유전자가 규정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이젠 자기 편이 된 운명의 도움으로 Vincent는 무사히 토성궤도를 향해 출발하고, Jerome은 자신을 꿈의 대신 이루어줄 친구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뉴질랜드 태생의 Andrew Niccol 이라는 감독은, 정말이지 놀랍게도 1997년작인 이 영화가 데뷰작으로서 각본을 쓰고 감독을 했다. 그 후 98년에 Trueman Show의 각본을 쓰고, 2002년에 S1m0ne을 쓰고 감독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재미와 철학을 잘 조화시킨 작품들로 평가한다.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나온다면 감독의 이름 하나로 7달러 아낌없이 쓰리라. Ethan Hawke와 Jude Law는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멋진 배우들이다. 영화속에서의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에도 사연이 많다. Vincent는 Freeman 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데, 주어진 운명에서 자유를 쟁취한 자에게 어울리는 느낌이라면 오버한걸까? Jerome Eugene Morrow 는 영화의 과학적인 배경에서 나온 이름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Jerome 은 그리스말로 ‘잘 태어난 (우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middle name인 Eugene은 Jerome의 영어 단어이다. 그리고 학문중에 Eugenics (우생학) 이라는 분야도 있다. Uma Thurman의 극중 이름은 Irene Cassini인데, Cassini라는 성은 토성의 고리와 위성을 발견한 17세기 천문학자 Jean Dominique Cassini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그 토성은 영화속에서 Vincent가 우주선을 타고 가게 될 행성이다.

영화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인 유전자에 대해, 감독과 제작진들은 진지한 고려와 성실한 고찰을 했다라는 것이 느껴진다. 흔히들 SF 영화라고 주장하는 영화들은 많지만, 그 기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정말 그와 같은 세상이 올까하는 데에 대한 판단은 과학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며, 영화의 범위에서도 벗어난다. 단지 만약 그런 세상이 왔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점에서는 흥미롭게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전공학적으로 맞춤 주문 생산 되는 아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전자 감식 장비들, 열성유전자를 가진 이들에 대한 차별, 데이트 상대의 머리카락으로 자신에게 맞는 상대인가를 판단하는 아가씨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Jerome의 집에 있는 계단마저도 DNA의 구조인 나선형 계단으로 배치한 것에 제작진의 재치가 눈에 띈다.

영화는 관객에게, 만능처럼 생각되는 유전자도 어찌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1: “There is no gene for the human spirit” 영화 GATTACA의 tag line (영화를 홍보하거나 설명하는 짧은 문구)이다. 2: “There is no gene for fate” 영화 속에서 Vincent (Ethan Hawke)가 사고를 당한 Jerome (Jude Law) 을 처음 소개 받는 장면에서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대사이다. 위의 두 문장에서 나타난 대로, 그 중 하나는 인간의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운명이다. 전자는 Ethan Hawke가 연기한 Vincent Freeman에게서 볼 수 있듯이, 비록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지만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정신을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졌던 유전자는 극복하는 희망적인 모습이다. 그런 반면에, 후자는 Jude Law가 연기한 Jerome Eugene Morrow에게서 볼 수 있듯이,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할 지라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운명)에 의해 사고를 당하고 꿈을 접어야 하는 절망적인 모습이다.

근원적인 속성상 운명이라는 존재는 이 영화에서도 양면성을 지닌다. Vincent가 열등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도록 사주했으며, Jerome에게는 사고를 당하게 방조하는 반면, Vincent가 수사관에게 적발당하지 않고 꿈을 이루게 도와주기도 하며, Jerome에게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친구에 대한 희생정신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강한 힘을 가진 운명은 자주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양면성과 결과론적인 특성 때문에,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진 못하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도 운명은 잠시 링에 올랐다가, 인간의 정신이라는 터무니없이 약하지만 매력적인 존재에 스폿라이트를 내주는 운명에 처한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전자도 운명도 아닌, 인간의 정신이다. 영화전반에 흐르는 유전자얘기는 단지 인간의 정신을 돋보이게 만들 소품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소품들은 아주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이 “GATTACA”를 좋은 영화로 꼽는 기본적인 이유이다. 이전에도 인간의 정신을 주제로 삼은 영화는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 흔해 빠진 주제가, 이 영화에서는 미래의 유전자세상을 배경삼아 탁월한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진부하지 않게 흥미를 유발하는 대중적인 오락성도 빠질 수 없는 장점이다. 사랑, 살인, 수사, 궁금, 우주, 신원도용, 추적, 경쟁, 의심등등 널리고 널린 소재들을 잘 다독이며 일관되게 끌고 나갈 수 있었던 줄거리가 무엇보다 탁월한 요소였음을 빠트릴 수는 없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여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이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받게 되는, 오래 전 조상으로부터 결정된 유전자를 바꾸려는 영역에 까지 도달했다. 역설적이게도 운명에 대한 개척은 인간에게 또 다른 운명에 대한 예속을 유발시켰다. 인간이 발달시킨 거의 모든 문명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것이 그 부연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전병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된 유전과학은,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유전자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미래에는 피부색, 성별, 고향, 국적, 이 모든 것들보다 유전자가 우선할 수도 있다. 영화 “GATTACA”에서 보여주는 그런 세상이 정말 올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난 이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인간은 언젠가는 그 기술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어떻게 쓰는 지는, 또 인간의 정신에 달려 있다. 인간이 그런 기술을 가질 때쯤에는, 현재 인간복제에 논란이 가열되고 언젠가 전인류적인 공감대를 찾을 것처럼, 그 때에는 그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 또한 우리가 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운명을 여전히 두려워 해야 하며, 자신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미래의 사회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수영할’만한 열망과 그 대상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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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박우주  
  펌만 아니라면 원츄 --b  저도 정말 감동받으며 봤던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치밀한 분석을 하시다니.. 좋은영화에서 훌륭한 교훈을 얻죠..
간접적 체험을 한다는 측면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던거 같습니다.
1 김남주  
  영화를 5번 이상 본듯 한데, 제 하드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영화입니다. 전 주인공이 사는 집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집에 보면 나선형 계단이 있죠.
전 그 계단을 보면서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제롬 머로우"가 밑층에서 그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확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영화의 주제와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장면이라고 봅니다. Valid로 태어난 제롬머로우는 그 우성 유전자가 준 세상에 대한 자신감 만큼이나 자신의 장애에 대해 좌절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형사가 집에 찾아왔을때, 그는 그러한 신체로 결국 그 계단을 올라간다는 것은 제게 그가 다시 그 자신의 의지로 그러한 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상징한다면 어떨까요? ^^; 제가 말하고도 억지스럽지만, 충분히 그건 제게 상징적인 구조물로 보였습니다. 글쓰신 메멘토님과 다른 분들의 의견을 한번 듣고 싶군요. <a href=mailto:the015b@hanmai.net>the015b@hanmai.net</a>
1 Memento  
  박우주님, 펌 아닙니다. 아니구요. 예전에 관련 자료들 좀 찾아보고 그냥 개발 새발 써놓은 거 함 올려본겁니다. 김남주님도 제롬의 집에 있던 나선 모양 계단을 눈여겨 보셨군요. 미국의 좀 큰집에 가면 흔히 있을 만한 계단의 형태인데, 이 영화에서는 소재가 유전자인만큼 제작진도 특별히 생각하고 넣은 배경일겁니다. 남주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제가 생각못했던 건데, 좋은 감상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운명에 의해 불구가 된 valid가 불굴의 의지로 DNA 나선 계단을 기어 기어 올라가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축약시켜 놓은 장면이라고 봐도 될만큼 함축성이 높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4 박하사탕  
  좋은 감상 후기네요.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