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It's not your fault..."

영화감상평

굿 윌 헌팅. "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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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성공에 있어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잘못' 해석되어 전해져 왔다. 발명왕 에디슨이 이 말을 하면서 의도한 진짜 뜻은 '아무리 99%의 노력이 있더라도 1%의 영감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1%의 번뜩이는 영감, 직관력, 이런것들을 갖춘 사람이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접해 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성공하는데 있어서 이런 영감이나 직관력이1%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대부분, 아니 100%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천재라 부른다.


영화의 주인공인 윌(맷 데이먼)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천재이다.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그는 정식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음에도 랭보 교수가 낸 수학 문제를 간단하게 풀어버린다. 여자친구인 스카일라에게 그는 문제를 보면 머리속에서 '저절로' 문제가 풀린다고 말한다.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마치 숨을 쉬듯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그는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성격장애. 그는 친구들 몇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극도로 배타적이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커녕 제대로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것 조차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고 소위 '나쁜 짓'을 하면서 방황하는 '양아치'이다.결국 윌은 감옥에 갈 처지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윌의 천재성에 놀란 랭보 교수는 윌에게 '자신과 수학 공부를 할 것'과 '심리 치료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윌이 풀려나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처럼 윌은 심리 치료를 거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참다 못한 랭보 교수는 대학 동창인 숀(로빈 윌리암스)에게 윌을 '치료'해 줄 것을 부탁한다. 역시나 치료는 쉽지 않다. 숀과 윌의 첫 만남은 부터 트러블로 끝난다. 그러던 중, 숀은 윌이 매우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그 때문에 폐쇄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윌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윌의 타고난 천재성. 그 천재성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천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천재성, 그것은 그냥 '타고난' 것일 뿐이다. 천재성을 가진 자가 그 천재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랭보와 쇼는 논쟁을 벌인다. 랭보는 윌의 천재성을 극도로 발휘시키기 위해 어떻게든 취직시키고, 그 천재성이 수학계에 놀라운 공헌을 하기를 바란다. 윌의 천재성을 썩히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천재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도록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은 윌의 자유 의지에 간섭하지 말고, 단지 잘못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윌이 타고난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것에 대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숀은 윌에게 말한다. 아무도 윌에게 자신의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윌의 불우한 가정 환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단지 그의 천재성에만 감탄할 뿐이었다. 한 인간에 대한 관심,진로 교육의 부재. 그렇기에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 중간에 숀과 랭보 교수가 논쟁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인슈타인과 테드 카진스키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둘다 타고난 천재였지만 한 사람은 위대한 물리학자로, 다른 한 사람은 폭탄 테러범으로 성장했다는 사례는, 천재성 자체는 타고날 수 있어도 그 천재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정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윌 역시 숀의 관심이 없었다면 또 다른 테드 카진스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 한가지. 영화를 보고 나니 학생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는(혹은 예정인) 영재 교육, 수월성 교육이 생각났다. 상위 몇%의 학생들을 모아 잠재적인 능력을 이끌어내자는 계획과 취지는 그럴듯 하다. 그러나 그런 특별 교육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능력을 단순히 이끌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는지는 궁금하다. 숀의 생각과 같은 확고한 교육철학이 없이 단지 능력 개발에만 신경을 쓴다면, 결과적으로 또 다른 윌이나 테드 카진스키가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부디 교육의 형식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그 내면, 본질을 생각하는 교육정책이 시행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도 있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게 많은 이 나라에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당연한 일이다.
 

과연 윌의 상처는 모두 치료되었을까? 비록 영화에 불과하지만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수 많은 '윌'의 상처 또한 치료되기를 바란다. 직접 각본을 쓰고 멋진 연기도 보여준 맷 데이먼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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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감상자  
  오우.. 저도 멋진 감상평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부럽습니다. 작필력이....
1 맛스타  
  멋진 감상문 잘 봤습니다. 굿 윌 헌팅 저도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요.
영화에도 테드 카진스키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사람 정말 그냥 폭탄 테러범으로 넘길 수는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폭탄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데까지 이르렇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현대 산업사회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예견한 인물이 될지도 모르죠.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를 읽어보면 더더욱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