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와인을 즐기는 방법
외국인 와인 소믈리에가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 말로는 중국, 일본, 한국에서 와인 가격을 많이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이름난 와인이라면 이 세 나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재기를 하기 때문에 와인 시세가 오른 것이라네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 세계의 부자들이 좋은 와인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와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왜냐하면 와인이라는 것이 평범한 것부터 맛을 봐가며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와인의 맛을 알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허문영 평론가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좋은 영화를 너무 쉽게 볼 수 있어서 외려 영화 보는 안목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좋은 영화만 많이 보면 영화 보는 실력이 부쩍 늘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래서 <세계 영화사> 책에 나오는 무수한 걸작만 찾아 보고 단기간에 실력 향상을 추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또는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영화들과 함께 봐야 좋은 영화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 허문영 평론가의 요지였습니다.
종종 뒤늦게 영화를 '공부'로 생각하고 대학원 영화 관련 학과로 진학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런 분들이 영화를 더럽게 재미없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여태 공부만 하다가 갑자기 영화를 전투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입시 학원에서 공부하던대로 단기간 최대 성과를 낼려고 시대별 걸작들을 추천 받고. 영화 이론서를 뒤지기 시작하죠
이런 사람의 입에는 들뢰즈와 라캉 같은 학자들의 이름이 먼저 오르내리며 그들의 관점에서 영화를 봅니다.
이미 비평에 오염되어 있어서 더 이상의 참신한 시각도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걸작 외에 다른 영화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씨네스트에는 내공이 탄탄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은 영화적 이론으로 무장된 분들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분들입니다.
이본동시관의 영화적 체험이 있는 사람, 왕우를 비롯한 홍콩 무협 영화에 대한 내공이 쌓인 사람,
유로트래쉬와 스파게티 웨스턴까지 꿰뚫고 있는 사람, 모자라는 영화 지식을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AFKN을 통해 수혈 받았던 사람...
와인은 세월이 개입하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와인의 맛을 감별할 수 있는 혀도 이 맛, 저 맛 다보면서 그 과정을 그쳐야 합니다.
걸작만 찾아 보지 말고 지극히 평범한 영화도 봐야만 합니다.
그래야 좋은 와인의 맛을 그때서야 알 듯, 좋은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씨네스트 회원님들 풍성한 영화 수확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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