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제 질문에 대답했네요.
익무에서 봉감독 인터뷰 전에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 제가 한 질문이 선정되었네요.
기분이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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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단편영화 <지리멸렬>의 첫 번째 에피소드 첫 장면에서도 교수가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계단이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기생충>의 기본 구조가 그때부터 발전되어 온 건 아닌가 싶다.
그 계단 씬을 왜 찍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음대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딱히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건 아니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에서 백일몽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그 영화를 영상자료원에서 복원을 한다고 해서 최근에 다시 봤는데 되게 이상한 영화더라. ‘왜 이런 걸 찍었지?’ 싶은... (다들 웃음)
몽롱한 분위기의 도입부가 지난 뒤에 교수가 조교를 자기 교수실로 심부름 보내놓고선, 거기에 도색잡지를 펼쳐놓은 걸 뒤늦게 깨닫고 광란의 질주를 한다. 거기서도 계단을 막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찍을 때 계단에 대한 특별한 접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기생충>은 우리끼리 애초부터 명확하게 ‘계단 영화’라고 부를 정도였다. 송강호 선배와 이야기할 때 우스갯소리로 “이 영화를 기택의 관점에서 거칠게 압축하면 계단을 올라가려 했던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간 아빠에 대해 기우는 “계단만 올라오면 된다. 이 집을 사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 영화 전체에서 계단이 보이는 샷이 몇 개인지 정확히 세어보이지는 않았는데, 확인해보면 재밌을 거다. 아마도 상당히 많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