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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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한 기억

21 마차푸차레 10 376 1 0

아래에 있는 게시물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서 검문검색하고 있는 홍콩'을 보고
제 기억 속의 홍콩을 조금 꺼내 봅니다.


제게 홍콩은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로 정의되고 있네요.


몇 년 전에 혼자서 홍콩섬 남부의 스탠리에 갔던 적이 있네요.


그때 제가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 있다가 갑자기 가게 되는 바람에 여행 준비도 못 했고요.
그래도 오~래 전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으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센트럴 버스터미널에서 스탠리행 버스를 탔어요.
스탠리가 종점이니까, 창밖 구경이나 하다가
사람들이 다 내릴 때 맨 뒤에 따라 내리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스탠리에 가까이 가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겼어요.
과연 여기가 종점인가 아닌가, 헷갈리는 곳에 버스가 선 거예요.
차내 스크린에는 스탠리 어쩌구,라고 써 있고요.


몇 사람이 내렸어요.
저도 내렸지요.
아니더군요.


근처에 맥도날드가 보여서 배도 고픈 김에 일단 들어갔어요.
햄버거와 콜라를 사 가지고 출입구쪽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그곳에서 청소 일을 하시는,
검정 유니폼을 입은 할머님이 가까이 오셨어요.


제가 짧은 영어로
"여기서 스탠리까지 얼마나 되나요?" 하고 물었는데
그 할머님이 어찌나 난감?미안?해 하시던지
그 표정이..


그 분은 그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이 똥노"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한껏 웃으면서 "땡큐, 땡큐"라고만 몇 번을..


그렇게 서로 미안해 하는 얼굴로 몇 번의 인사를 나누고
그분은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셨어요.


그 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엄마 같네.
체구도 자그마하니 비슷하고, 살짝 구부정해진 모습도 그렇고.
연세 드셔서도 계속 일하시고."


스탠리까지 얼마나 먼가,는
주문 받는 직원에게 물어봐야겠네, 하며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5분 정도 지나서 할머님이 다시 나타나셨어요.
젊은 여성 직원을 대동하고요.


당신께서 영어를 모르셔서
외국인의 질문에 답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에요.


그 직원과는 서로 별 표정 없이 짧게 질문과 답변을 마쳤어요.
바닷가를 따라서 500 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할머님과는 다시 웃으면서 두세 번 인사를 나눴어요.


햄버거를 다 먹고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 분은 안 보이더군요.


그 후로도 홍콩에 갈 때마다 거의 스탠리를 갔고
그 맥도날드에도 여러 번 다시 갔는데
그 분을 다시 뵙진 못 했어요.


홍콩 사람들 그렇게 친절했어요.

길을 물으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알려준 사람들도 여럿 있었어요.
그 중에는, 가까운 곳이긴 한데 거기가 좀 복잡하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면서 나서준 사람도 있고요.


홍콩!
야경도 좋고, 음식도 좋지요.
질서도 잘 지키고요. 시내버스는 물론 엘리베이터도 줄서서 타더라고요.
아, 장국영도 좋고, 주윤발도 좋고요.
 
그래도 제게는 홍콩은 그 할머님이에요.
그 할머님이 홍콩이에요.
이제는 얼굴도 잘 그려지지 않지만요.
건강하시길!


그리고 거리에 나선 시민과 학생들도 큰 희생 없이
뜻한 바를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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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1 o지온o  
훈훈..
21 마차푸차레  
많은 분들의 글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시는 o지온o 님의 마음처럼..
S 푸른강산하  
여행길, 그 소중한 기억이 마차푸차레님 가슴에 진하게 새겨진 듯합니다.^^*
21 마차푸차레  
네에~ 저는 제가 겪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 나라를 기억하는데,
예기치 못한 너무도 따뜻한 마음을 받아서요..^^
그리고.. 홍콩에도 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ㅎ
21 simonlee  
맞아요! 홍콩분들 좋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영어가 잘 안 통합니다! ^^
Toilet이란 쉬운 영어도 잘 안 통해서 공중화장실이란 뜻의 '꽁치'를 외우고 다녔던기억이!
21 마차푸차레  
홍콩에서 '꽁치'가 그런 뜻이군요..ㅎ
저도 언제부터인가 낯선 곳에 가면
화장실 위치 파악부터 하네요.
세월이 야속해요!
16 umma55  
커피숍이 잘 안 보이는 거도 특징이지요,
그 사람들은 커피보단 차를 마시니까요.
근데 허드레 음식 파는 사람들은 진짜 무뚝뚝하더라구요.^^
21 마차푸차레  
침사추이쪽은 안 떠오르지만,
커피 파는 곳은 제법 보이던걸요.
아, 제 입이 좀 저렴하긴 해요..ㅎ
5 오징어야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 90년대의 홍콩은 더욱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절함도 그렇고, 에티켓도 그렇고..
90년대 보다는 2000년대에 좀 더 각박해 졌고, 올해 5월에 다녀왔을 때는 꽤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영어 익숙치 않은 사람이 더 많은 듯 싶더군요.
주관적 경험에 근거해 말씀드렸는데.. 정치, 사회적 환경의 변화 때문에라도 예전 같을 수는 없겠지요.
21 마차푸차레  
저도 90년대에 처음 홍콩에 갔던 '너무 옛날 사람'입니다..^^
가이드북도 없이, 어떤 분이 '여기 여기 가봐라' 하며 적어주신 쪽지 한 장만 달랑 들고 가서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던 기억이 있네요.

오징어야 님의 말씀처럼
홍콩이 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원인을 다룬,
작년에 읽었던 기사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미친 집값 못 견뎌"..홍콩 떠나는 젊은이 사상 최고치 (2018.08.18. 연합뉴스)
https://news.v.daum.net/v/2018081814393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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