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왜 일본도를 들고 있나?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서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보입니다.
네, 엄청나게 큰 장검을 들고 계신데 당시 환도를 패용하던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검이죠.
그럼, 이건 고증 오류인걸까요?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민승기 저)
-쌍수도 편-
조선에서는 쌍수검법만이 쌍수도, 평검, 용검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는 "오늘날에는 쌍수도의 제도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요도로써 대신 연습니다. 단지 그 이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라고 했다.
-왜검 편-
일본의 왜검은 조선에 대량으로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조형적 특징은 조선 후기의 환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무예도보통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직후부터 왜검 제작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1596년 1월에 갑사 송한이 배 위에서 왜검 두 자루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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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순신 장군의 장검은 전쟁중 자체제작한 왜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왜검만 애용했던 걸까요?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유물로서 검은 생전에 네 자루, 사후에 네 자루가 추가되어
총 여덟 자루가 전해져 왔습니다.
현충사에 보관중인 거환도 두자루(왜검)
엔하위키 기록 : 의장용 검이다. 태구련 등을 생포한 뒤에 이들이 대장장이라는 증언을 확인할 겸해서 만든 물건. 길이 때문에 쌍수도라 칭하는 경우가 꽤 있으나, 그와는 전혀 다른 규격의 물건이다.
충렬사에 소장된 네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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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자루는 병조판서 심상규, 한자루는 아산에 사는 어떤 이가 가지고 있었음.
3.1811년 박종경이 두자루의 쌍룡검을 얻음.
4.이후 친위부가 소유하게 되었다가 궁내부 박물관 소유로 이동.
5.1912년 이후 행적이 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