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본 가장 아름다운 섹스 씬과 자동차 씬이 있는 영화

영화이야기

올 해 본 가장 아름다운 섹스 씬과 자동차 씬이 있는 영화

15 하스미시계있고 8 952 5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서재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앨범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런 두더쥐 똥 같은 게 내 집에 다 있네'라고 중얼거렸다는 글이 기억난다. 

재밌는 비유이긴 한데, 하루키씨의 작품도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두더쥐 배설물과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겨울, 부산 시네마테크 기획전으로 <클레르 드니 & 카트린 브레야 걸작선>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설치류의 분비물과 관련된 쪽은 카트린 브레야다.

나는 지금도 두 작가가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고 여기며, 전혀 연관성이 없는 작가를 억지로 연결시켜 기획한 것 자체가 프로그래머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촌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두더쥐 똥 중에서도 유난히 예뻐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똥이 아니라 거름으로 여겨질 것 같은 특정 씬이 기획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아른거렸다.


최근에 정식 극장 개봉되어 다시 한번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다름 아닌 <라스트 썸머>다. 아마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 오랫동안 영화를 꾸준히 본 사람도 '무시해도 될 만큼 평범한 영화'로 취급하는 것을 봤다. 나 역시 이 영화를 굳이 목청 높여 지지할 생각은 없다. 

다만, 폴 슈레이더 감독이 2023년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으로 이 작품을 뽑았을 때, 빙그레 웃음이 났다. 슈레이더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본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포르노그래피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녀의 영화는 일반 영화와 포르노의 선을 밟으며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영화가 독특하게 보이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외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트 썸머>는 의붓 아들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자 변호사의 이야기다. (이제는 낡은 표현이지만) 조금 젠 척하고 말한다면, 이 영화는 상징적 질서 안에서 상상적 세계로 일탈을 꿈꾸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나를 감탄하게 한 것은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브레야가 공들여 찍은 섹스 씬이다. 섹스 장면은 세 번 나오는데 다 잘 찍은 건 아니고, 두 번째 섹스 씬이 압권이다.

의붓 아들이 여자의 성기에 얼굴을 묻고 '나 이제 많이 능숙해졌죠?'하고 묻는다. 여자가 '그렇네'하고 수긍을 한 뒤 본격적인 성행위가 진행되는데 카메라는 여자의 흥분된 얼굴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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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함이 지나버린 머리카락과 살결은 빛바랜 침대 시트와 같은 컬러 톤을 유지하며, 늙음이 주름과 기미로 인해 그대로 드러나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그 육체에 따라 구겨지는 침대의 주름..

이 씬에서 젊은 남자의 육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격렬한 흥분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카메라는 더운 숨을 쉬는 여자의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다.

이 장면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젊음을 수혈 받은 뒤 다시 재생하는 생명의 두근거림이라고 할까? 지나간 줄 알았던 청춘의 끝자락을 잡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이라 해야 할까? 무슨 말이 적절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장면 그 자체가 입이 딱 벌어지게 할만큼 아름답다는 것 밖에는...


이 영화의 두 번째 경탄할 지점은 자동차 씬이다. 여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벤츠 컨버터블을 이 영화는 자동차 앞에서 찍고 있다. 고다르나 다르덴 형제 같으면 차 안이나 차 뒤쪽에서 찍을 것 같은 장면을 고집스럽게 앞에서 찍는데, 여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자동차의 빈 좌석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영화가 진행되고 앞 장면을 비교한 뒤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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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 아들과 여주인공, 그리고 그녀가 입양한 동양계 여자 아이 둘, 이렇게 넷이서 물놀이를 하러 갈 때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있다. 물놀이를 끝나고 집으로 귀가 할 때 두 아이는 지쳐서 뒷 좌석에 이미 잠들어 있는데 집에 도착하면, 여자와 의붓 아들이 아이를 하나 씩 안고 집으로 들어선다. 이 장면은 그 때까지 사고만 치던 의붓 아들이 가족으로서 잘 동화된 것처럼 보여주며, 집에 도착 후 아이를 하나 씩 안고 차에서 내릴 때 쯤이면 두 사람이 커플처럼 보이게 연출을 했다.


의붓 아들과의 관계가 여동생에게 탄로나자 여주인공은 그를 멀리하게 된다. 이에 화가 난 의붓 아들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폭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뒤, 아버지와 단 둘이서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마음이 불안해진 여주인공이 두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올 때, 그 때서야 '아, 이 장면 때문에 계속 정면에서 자동차를 찍고 있었구나'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데, 구글 검색을 해도 관련 사진이 없어서 못 올리는게 아쉽다.


배경으로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흐르고 그녀의 자동차에는 두 딸도 의붓 아들도 없고, 그녀 혼자 만이다. 잠시나마 만들어졌던 평안한 가정의 모습은 이미 깨어졌고, 그녀에게 앞으로 큰 불행이 다가올 것이다. 그녀는 지금 그 불행을 바라보며 차를 몰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불안한 얼굴로 운전하는 모습이, 위에 소개된 자동차 씬과 정확하게 반대로 찍혔음을 확인하면서, 카트린 브레야의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카트린 브레야의 신작은 적어도 두더쥐 똥 같은 영화는 아니며, 오히려 눈 여겨 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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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12 Lowchain232  
그러고보니 존 워터스도 이 영화를 베스트로 꼽았죠. 사실 저도 처음 내용만 듣고서는 그렇게 흥미가 없었는데 이렇게 분석하신 글을 읽다 보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존 워터스가 베스트로 뽑은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스토리는 야동인데 걸출한 장면 때문에 볼만한 작품입니다.^^
1 omega13  
작년에 나온 영화 중 가장 재밌게 봤습니다. 소닉유스 팬이라면 더욱 추천합니다. 각오 없는 욕망은 시시한 것 같다는 모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13 쪼으니까  
제목은 들어 본 것 같아요
언젠가 기회를 봐서 감상 해야겠네요
17 oO지온Oo  
이런 류의 영화는 전혀 취향이 아닙니다.
다만, 하스미 님의 글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영화를 볼 생각은 없지만, 글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14 막된장  
저도 기억에 남은 영화네요 ^^.
10 에버렛  
뜻밖의 수작이었어요. 원작보다 좋더라구요.
24 Hsbum  
'장면'을 강조하시니 호기심은 생기는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