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게 읽기(4) - 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영화이야기

<블러드 심플.> 꼼꼼하게 읽기(4) - 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12 하스미시계있고 10 506 1 0

컴퓨터가 고장나서 중단 된 연재를 다른 컴퓨터를 사용해서 다시 이어갑니다.

읽으시는 분은 몇 안되지만 이왕 시작한 것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할 것 같아서 계속 쓰게 되네요.

다음 편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5회로 마무리를 하고 싶네요.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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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람막이 점퍼와 바다코끼리 저금통(windbreaker & walrus penny bank)

 

마티를 생매장하고 돌아온 레이는 애비의 임시 거처에 들러 잠이 들고

이때 일어난 애비가 레이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끼면서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주의 깊게 볼 부분이 있다.

 

레이는 갑자기 아파트가 너무 춥다고 하면서 자신의 바람막이 점퍼를 찾기 시작한다.

그의 점퍼 행방은 어떻게 된 것일까?

레이는 잊고 있지만 관객은 알고 있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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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의 사무실에서 흘러내린 피를 자신의 바람막이로 닦고 가게 앞 소각로에 점퍼를 버렸다는 사실.

레이는 살인을 저지른 후 머리가 단순해져 자신이 버린 옷을 찾는 중이다(다시 한번 이 영화의 제목을 음미해보라).

 

레이뿐만 아니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소지품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비셔는 라이터를, 애비는 38구경 리볼버와 화장품 컴팩트를, 그리고 레이는 점퍼를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마티는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마티는 아내를, 즉 사랑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반문, 아내인 애비는 소지품이 아니라고?

마티는 애비를 소지품처럼 생각한 의처증 환자였다는 점을 환기하자.

 

더 희한한 것은 이 영화에는 소지품과 관련된 이상한 룰이 있다.

즉 물건을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자는 모두 죽게 된다는 죽음의 규칙.

오직 애비만 잃어버린 두 가지 물건, 즉 리볼버와 컴팩트(지난 편에 말한 무기!)를 되찾는데 한번 복기를 해보자.

비셔가 살인 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훔친 권총은 현장을 방문한 레이가 애비에게 가져다준다.

현실에서 비셔에 손 안에 있는 컴팩트는 애비의 꿈속에 방문한 남편 마티가 그녀에게 던져주고 간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권총과 조개 모양의 화장품이 돌고 돌아 애비에게 돌아오면 그녀는 살아남고 게임은 끝이 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 명의 남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애비만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권총과 화장품은 애초에 애비의 가방에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한다면, 권총과 화장품이 애비의 성욕을 의미하는 것이고 가방은 성욕을 억누르고 있던 초자아와 같은 것일 게다.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면, 애비는 두 소지품을 되찾지만 소지품을 찾아준 두 남자를 잃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분실자에 해당한다.

아마 애비는 총과 컴팩트를 다시 가방에서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남은 삶은 욕망이 없는 죽은 자의 삶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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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코끼리 저금통은 위에서 말한 것과 전혀 다른 계열의 소지품이다.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 저금통이 영화에서 세 번(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처음은 애비가 집에 들러 가져갈 물건을 챙길 때, 세면대에 놓여 있었다.

그다음은 애비의 임시 아파트의 테이블에, 마지막은 비셔가 총에 맞아 쓰러진 레이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둔기로 나온다.

 

저금통은 애비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녀랑 같이 있던 것이다.

애비가 저금통까지 챙겨서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집안에서 경제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비의 처지는 (인형의 집이 아니라) 박제된 집에 갇힌 박제와 같았을 것이다.

 

남편 마티는 돈에 대해 인색한 사람이었다.

술집의 흑인 종업원 모리스와의 대화를 통해 볼 때,

마티는 레이의 2주치 주급을 주지 않고 레이를 끝장내고 싶었다.

마티의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레이와 마티를 살해한 후, 레이가 밀린 주급을 받기 위해 금고의 돈을 가지고 튀었다고 뒤집어씌우려고 한 것.

 

바다코끼리 저금통에는 애비의 꿈과 미래가 초라하게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마저 레이를 죽이기 위해 비셔가 깨부셔버렸을 때 그녀의 미래는 끝장나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두 개의 욕망은 돌아와 봉인되고, 미래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 영화 참 잔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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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3 암수  
오늘도 재밌게 보고 갑니다...
늘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이영화는 몇번을 보시고 이리도 꼼꼼히 장면장면을 포착해 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몇 번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랜 세월을 두고 보고 있습니다^^
9 Harrum  
시계님 글을 영상으로 옮기면 더 좋겠다 생각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영상을 보는 듯한 생생하게 글을 써야하는데 제가 필력이 딸리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5 o지온o  
오늘의 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냥 마음에 걸리는 점은 [레이의 바람막이 점퍼] 뿐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뭔가를 닦기 위해서 [바람막이 점퍼]를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얇은데다가 방수인 [바람막이 점퍼]를 걸.레.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것이죠.
혹시나 방수가 아니라서 액체를 흡수할 수 있다 치더라도 얇디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걸.레.로 사용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걸.레. 대용으로 사용하려면 [바람막이 점퍼]를 사용하기 보다는 그냥 [삼각 빤쮸] 한 장이 더 효과적으로 보이기 때문이겠죠.
일반적인 천으로 된 액체를 흡수할 수 있는 점퍼를 사용했더라도 별반 문제는 없었을 텐데..
굳이 [바람막이 점퍼]를 사용한 이유는 뭘까 엄청 궁금해지는군요. ㅋㅋㅋㅋ

그래서 핏물을 [바람막이 점퍼]로 닦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대로 닦이기는 했을지 의문입니다.
제대로 닦는데 성공했다면 진심 인간승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 큰바구  
전 영화 한번 보면 끝인데.
도대체 몇번을 봐야 이 처럼 소도구의 역할까지 읽어낼수 있는거죠? ㅎㅎ
하스미님 글 너무 재밌네요, 소도구의 역할과 영화의 줄거리와 엮어 본다면 어느영화고 다 재밌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변변치 못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7 umma55  
감독이 짱박아 논 걸 콕콕 찝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전 내용 이해하기도 바쁜데....^^
다음 편도 기대됩니다.
다 읽고 나서 기억하고 영화볼 수 있을런지는 의문입니다만....^^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