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부인 (Dodsworth, 1936) - 윌리엄 와일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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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 (Dodsworth, 1936) - 윌리엄 와일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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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도스워드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인 샘 도스워스(Sam Dodsworth: 월터 휴스턴 분)는 미국 굴지의 사업가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 속에서 중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어느날, 아내 프랜(Fran Dodsworth: 루스 채터톤 분)의 청으로 은퇴할 것을 결심한다.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 인생을 시작하자는 아내의 소망에 따른 것이다.   샘과 프랜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2의 인생에 대한 희망으로 유럽 여행을 떠난다. 뉴욕항에서 이들을 배웅하는 친구들과 갓 결혼한 딸 에밀리(Emily: 캐서린 마로 분) 부부. 런던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프랜에게 첫 눈에 반한 아놀드(Arnold Iselin: 폴 루카스 분)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프랜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프랜도 20년동안 나무랄데 없는 남편이었던 샘 대신 아놀드를 자신의 변화된 삶 속에 어울리는 동반자로 여기게 된다. 역시 배 안에서 만난 이혼녀 에디뜨(Edith Cortright: 매리 애스터 분)와 함께 샘, 프랜 그리고 아놀드는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아내 프랜과는 달리 계속되는 여행과 파티에 싫증을 내고 있던 샘은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결국 혼자 돌아가게 된다.   친구들과 딸의 환영 속에서도 아내가 없는 집은 더 이상 자신의 보금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샘은 프랜을 설득하기 위해 다시 한번 유럽행을 결심한다. 아내의 변화가 사라져가는 젊음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때문이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아놀드와 함께 스위스에 머무르던 프랜은 남편의 도착을 알고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오지만 이들 부부는 더 이상 예전의 허물없던 사이가 아니다.   샘은 호털에서 아놀드와 말다툼을 벌이고 딸 에밀리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등 프랜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연하의 아놀드와 새로운 사랑에 빠진 프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샘에게 말한다. 유럽 전역을 돌며 혼자서 쓸쓸한 여행을 계속하던 샘은 베니스에서 우연히 에디뜨와 다시 만나게 되고, 다정하고 침착한 에디뜨와의 생활속에서 평화를 되찾는다. 한편 아놀드 어머니의 반대로 그와의 결혼이 무산된 프랜은 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곁에 와 줄 것을 부탁하고, 샘은 프랜의 청에 그녀의 곁으로 가지만 두사람의 결혼은 돌이킬 수 없다. 샘은 프랜에게 이별을 고한 후 에디뜨의 곁으로 돌아가고 프랜은 홀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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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00편, 죽기 전에 봐야할 영화 1001

뉴욕 타임즈 선정 "The Best 1,000 Movies Ever Made" 중 하나입니다.

 

여자의 나이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결혼 생활의 와해를 그리고 있으나

작가 싱클레어는 특히 연애에 관대한 유럽 문화와 미국 문화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주연 월터 휴스턴은 본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후에 그의 아들인 존 휴스턴 감독이 연출한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으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여 손녀 안젤리카 휴스턴과 함께 3대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Love has got to stop someplace short of suicide'
 

Comments

40 Daaak
감사합니다.
4 Power
3대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다니 대단하군요. 고맙습니다.
1 아지랑이
수고하십니다. 아주 오래된 고전 작품은 작업하시는 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계셨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건강하시길...
1 darthez
보고싶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2 KYOSEO
자막 고맙습니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6 hwanhoo
좋은 자료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 pupukim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2. 2. 20. 감상

단  평 : 평면에서 깊어진다는 것 혹은 멀어진다는 것



오프닝에서 카메라가 인물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원근법의 심도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스크린의 평면성이 깊이를 표출해야하는 기법의 당위에 휩싸이는 것은

회화나 사진에서도 이미 경유된 바 있으나, 본편의 오프닝에서 이 어법에 주목해야하는 것은

그것이 왜 필요한가에 좀 더 무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카메라의 초점이 원제와 동일한

회사명이나 신문으로 이동할 때 관객은 창문 밖 공장의 굴뚝까지로 이어지는 깊이를 상실한다.



동년에 발표한 전작 <이 세 사람>에 이어 본편의 출발은 종결에서 시작된다. 전작의 졸업식이

본편에서는 매각과 퇴사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이같은 심리적인 불안은 곧 인물과의 관계로의

집착 혹은 복귀로 등식화된다. 당연하게도 이 심리적 상황은 프레임 내 물리적 거리로 실현된다.

삼각관계의 인물들을 공간에서 배치할 때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위치의 점유가 복선이면서

동시에 현상적이어야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결국 멜로 장르는 거리의 좁힘과 넓힘의 쟁투다.



실내에서 딥 포커스 등의 초점 심도를 통해 모든 존재자들이 동일한 중요성을 인지받는 기법이

감독에게 중요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인물이 거리를 실현시킴에 있어 실내에서 동선을

작동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었음은 확연하다. '주교의 빛'이라는 등대불빛이 시간과 지도 등으로

명시되는 이유도 동일하다. 그 정점은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실재를 위해 거울의 반사를

이용하여 인물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위 장면에 있다. 거리를 인정하는 서사는 깊이를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