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밥하고…‘제2의 집’에서 홀로서기 배우는 장애인들

최미랑 기자

시설의 ‘수용’ 거부하고 모여살기 택한 세 사람

지난달 19일 서울 강동구의 집에서 이동희, 박병준, 배준호씨(왼쪽부터)가 ‘주거코치’ 유선분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달 19일 서울 강동구의 집에서 이동희, 박병준, 배준호씨(왼쪽부터)가 ‘주거코치’ 유선분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자체에서 파견한 ‘주거코치’
주 4일 숙직하며 생활 전반 도와

자폐성·발달 장애 있는 세 사람
월~금요일 집 떠나 공동 생활
9개월 만에 ‘내집’으로 여기게 돼

자녀 독립시킨 세 사람의 어머니
‘나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비슷한 고민 후 내보내기로 결심

장애인 거주 시설 대부분 외곽에
서울에 집 구하는 데 대출 등 장애
장애인 이유로 계약 파기하기도
더 다양한 형태의 지원 정책 필요

이동희(33), 배준호(30), 박병준(33)씨는 한집에 산다. 동희·준호씨는 자폐성 장애가, 병준씨는 발달장애가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부모 집을 떠나 ‘독립’했다. 성격도 지능도 취향도 다 제각각인 세 사람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을까.

지난달 19일 이들이 모여 사는 서울 강동구의 빌라를 방문했다. 원가족과 주말을 보내고 친구들과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월요일 오후는 모두가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각자의 일터에서 돌아오면 일주일 치 장을 함께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으면서 한 주의 첫날을 마무리한다.

■ 시설이 아닌 ‘내 집’에서 함께 살기

집에서는 오후 4시부터 ‘주거코치’ 유선분씨(61)가 세 사람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제일 먼저 병준씨가 집에 들어와 ‘손님’들을 발견하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했다. 다른 사람과 손을 마주치는 걸 좋아하는 병준씨는 손님들에게 한 번씩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속속 도착한 세 사람은 “마트에 가자”는 유씨 말에 따라 장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이 집의 살림을 실질적으로 챙기는 건 주거코치 유씨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다 7년 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뒤 장애인 활동지원을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에 출근해 숙직하고 아침에 퇴근한다.

집안일은 혼자 하지 않는다. 세 사람에게 일을 나눠주고 방법을 일러주는 게 유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줄곧 엄마가 모든 것을 챙기는 집에서 살아온 세 사람에게 생활규칙을 만들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리는 엄마와 함께 살면서 많이 해본 동희씨가 거의 전담한다. 집에서 부엌을 기웃거려본 적 없던 나머지 두 사람도 하나둘 배워가고 있다. 상을 닦고 수저를 얹는 것, 설거지할 그릇에 거품을 묻히는 것은 준호씨 몫이다.

이들이 함께 살게 된 이유는 홀로서기를 위해서다. 이들 부모들은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잠시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동희·준호·병준씨는 지금처럼 가정에서 가족의 보호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내보내기로 결단한 부모들의 배경은 다 비슷했다. 동희씨 어머니 최한숙씨(54)는 2년 전 건강검진에서 신장 기능이 정상인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상태가 나빠지면 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주변을 보니 장애아를 길러낸 어머니들 중에 투석을 받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내 몸도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답을 찾아 나섰다. 준호씨 어머니 채명숙씨(58)는 남편이 쓰러져 사업을 접고 쉬게 되자 고민 끝에 결심을 했다.

정미자씨(60)는 이미 병준씨를 시설에 보내본 경험이 있었다. 10년 전 도저히 병준씨를 돌볼 여력이 없어 경기 이천의 한 장애인시설에 보냈다. 5개월 만에 면회를 가던 길에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돌아다니고 구경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사방에 집 한 채 안 보이는 외딴곳에 어떻게 살았을까’ 싶었다고 했다. 그 주말에 아이를 데려와 집에서 재웠더니 어려서도 싸지 않던 오줌을 쌌다. 집에서 하루 2알 반 먹던 정신과 약을 15알까지 늘린 부작용이었다. 시설에 항의하자 “소리를 질러 어쩔 수 없다. 다른 아이들은 한 줌씩 먹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병준씨를 집에 데려온 후 다시는 시설에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세 사람의 아이들은 이곳을 온전히 ‘집’으로 여긴다. 주말에 부모가 있는 가정에 돌아가면 “집에 가고 싶다”며 가방을 챙길 정도다.

■ 어울려 살고 싶은 장애인들

정미자, 최한숙, 채명숙씨(왼쪽부터)가 지난달 19일 서울 강동구의 아들들 집에 모여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고 독립시킨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정미자, 최한숙, 채명숙씨(왼쪽부터)가 지난달 19일 서울 강동구의 아들들 집에 모여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고 독립시킨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지금은 안정을 찾고 있지만, 같이 살자는 뜻을 이루기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공공이 운영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은 비싼 땅값과 주민 기피 현상 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나 있다. 실제로 서울시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45곳 가운데 18곳이 강원 철원 등 지방에 있다.

애초 채씨는 장애인 가족들이 모여 만드는 안산의 공동거주공간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를 최씨가 붙잡았다. “한곳에 오래 살면 동네 사람들이 아이의 길잡이가 되어줘요.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아이가 이 동네에서 살면 아이는 ‘누구의 아들’이 되잖아요. 혼자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그냥 ‘남들이 싫어하는 장애인’이 되는 거예요.”

집 구하기부터 난관이었다. 서로 가족이 아니다 보니 같이 살 집을 구할 때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세대출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세 가정이 자금을 분담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장애인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막판에 뒤집는 경우도 많았다.

집을 알아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구청과 복지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수소문한 끝에 서울시에서 발달·지적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남구의 발달장애전문복지관인 충현복지관은 주거코치를 채용해 이 집에 파견하고, 사회복지사인 주거매니저가 주 1회 방문해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밤 시간 응급상황에 대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모들 의견을 받아들여 주거코치는 주 4일 숙직하도록 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이지만, 아들들을 내보내자 생활이 많이 변했다. 채씨는 지난달 몸을 회복한 남편과 처음으로 해외 장기여행을 다녀왔다. 평생 길어야 이틀, 활동지원사나 지인에게 준호씨를 맡겨야 겨우 어딘가로 떠날 수 있었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밥 한번 못 먹던 생활이었는데 이제는 저녁 약속도 가끔 잡는다. 최씨는 ‘내 몸 상태가 좀 나빠져도 괜찮겠구나’ 하고 “맘편히 아플 수가 있다”고 했다.

전화거는 것을 좋아하는 병준씨는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자 수시로 전화를 한다고 했다. 병준씨가 수화기 너머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다른 엄마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동희씨와 준호씨는 전화상으로는 의사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응급상황 때는 병준씨가 전화를 하게끔 교육시키고 있다. 동희씨는 병준씨와 함께 살면서 말이 전보다 늘었다. 전에는 “사과”라고만 말하던 것에서 이제는 “주세요”를 붙일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준호씨는 원가정에 돌아가서도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잽싸게 행주를 빨아와 식탁을 닦는다고 했다.

■ ‘독립’해야 하는 장애인

“우리집 동희의 형이 ‘엄마, 나중에 제가 동희 데리고 살면 돼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동희는 내가 꼭 제 나름대로 살도록 할게. 너는 그냥 비장애 형제와 하는 정도의 교류만 할 수 있도록 할 테니 걱정 말아라’라고 해요.” 최씨는 이렇게 앞날을 걱정하고 계획했다.

준호씨에게는 누나가, 병준씨에게는 여동생이 있다. 엄마들은 여자 형제들에게 쏠릴 부담도 걱정이 된다. 주변에서 장애가 있는 형제 때문에 파혼된 사례도 여럿 봤다고 했다.

엄마들은 지금도 이웃에서 ‘장애인들이 모여산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걱정과 달리 아랫집 할아버지는 과일을 챙겨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꾸 세상에 나와 어울리는 게 엄마들 바람이다.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세 엄마도 잘 안다. 제각각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독립시킬 방법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더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유연한 정책을 만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최씨가 말했다. “부모가 죽고 나면 아이들이 아프고 지능도 떨어지고 우울해진대요. 그래서 더 빨리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떨어져 있어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아니까. 그럼 엄마가 쭉 없어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어요. 이 사업이 정말 잘돼서 많은 장애인들이 자기 집에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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