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전 라이커(Sergeant Ry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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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전 라이커(Sergeant Ry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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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미국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2차대전 또는 베트남 전쟁과 비교한다면 미국의 전쟁 중 이만큼 영화적으로 홀대를 받는 경우는 

아마도 1898년 미국이 치른 스페인과의 전쟁, 미서전쟁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미국에 미친 영향이나 파장은 작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지요. 무엇보다 한국전쟁은 2차대전 후 냉전의 본격화를 알린 전쟁이고,

한편으론 종전 후 미국의 패권적 지위로의 부상을 상기시키는 전쟁이었습니다.


1953년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방부는 이 전쟁으로 사망한 미국인의 수를 5만4천여 명으로 발표했습니다.

1986년 이 숫자는 미국방부에 의해 3만6천여 명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변경의 부연설명이 딱히 없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는 5만8천여 명입니다.

이 전쟁에서 200만 명 이상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우리로서는 조족지혈의 숫자이지만 미국으로서는 다르겠지요.

미국 영토에서 벌어진 전쟁은 아니었지만 미국 전역에서 매일처럼 아들이거나 형이거나 오빠, 동생의 전사통지서가 배달되었을 테니,

뒷날 베트남전쟁에서처럼 사회적 파장이 작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국 영화는 비상할 정도로 이 전쟁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역시 

할리우드가 매카시즘의 직격탄을 맞아 초토화된 이유를 들 수 있겠고

더불어 한국전쟁이 냉전 최초의 전쟁으로 극단적 이념 전쟁의 무대였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미국 영화가, 그것도 반공주의의 광기가 지배하던 당대의 미국에서

쉽게 소환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전후맥락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한국전쟁이란 이념 전쟁의 한가운데에는 전쟁 포로(POW)가 있었습니다.


2차대전 후 등장한 1949년 제네바 협약은 '전쟁포로의 무조건 송환'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2차대전 등의 이전 전쟁에서 심각한 폐해를 경험한 결과입니다.

전쟁은 극단적인 노동력의 상실을 초래하고 따라서 승전국은 이를 전쟁포로에서 벌충하려는 강력한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 한 예가 소련입니다.

소련에 억류된 독일군과 일본군 포로들이 종전 후 최장 20여 년이 지나서야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전쟁으로 초토화된 소련의 전후복구 사업에 동원됐던 거지요.

소련 뿐 아니라 이전 전쟁에서 전쟁포로를 이런 식으로 활용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전쟁포로의 무조건 송환'은 이 비인간적인 행태를 종전 후까지 연장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규정되었습니다.

무조건 송환은 이유를 따지지 말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전쟁포로는 극단적으로 무기력한 존재이고 포로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억압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억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단어가 '무조건'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이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선택적 송환이 이루어졌죠.

제네바 협약은 무시당했지만 애초 미국은 1949년 협약의 비준을 거부했었습니다.


냉전 최초의 전쟁에서 허접한 인민군을 상대로 인천상륙작전 후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미군은 

역시 허접한 군사력의 중국이 참전한 후 후퇴합니다.(1951년 국공내전 직후의 중국입니다.) 

장진호에서 도륙된 미해병대가 상징하듯 굴욕적인 후퇴였죠. 

전선은 고착되고 미국은 도대체 이 전쟁에서 내세울 거리를 찾기 어려워진 것은 물론 냉전의 주도권 조차 의심스러워집니다.


한편 1950년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내려온 인민군은 인천상륙작전 후 퇴로가 끊기면서 대부분 포로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인민군 포로가 발생했고 이후 중국군 포로까지 포함해 최종적으로 

인민군 15만 중국군 2만 등 17만여 명이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를 채우게 됩니다.

휴전협상의 최대 핵심의제는 바로 이 포로문제였습니다. 

무조건 포로 송환과 선택적 포로 송환이 평행선을 긋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흐릅니다.

그러는 동안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는 전쟁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포로간 살육전이 대규모로 벌어집니다. 

반공포로의 등장입니다.

포로수용소가 전쟁의 최전선이 되었던 겁니다. 이게 저절로 이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한편 수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전선 이북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유엔군 포로수용소이고 국군과 미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중 미군은 7,517명입니다.

휴전협상이 시작된 후 미군포로들 중에서도 변절자가 속출하고 역시 이념 전쟁에 동원됩니다.


자, 영화로 돌아가보지요. 몇 편 되지도 않는 한국전쟁 소재의 알려진 미국 영화 중

정통 전쟁영화는 <원한의 도곡리 다리>, <포크 촙 힐>, <지옥의 철수작전>과

극한의 저예산 영화이지만 오히려 더 볼만한 

사무엘 퓰러의 <철모(Steel Helmet)>, <총검(Fixed Bayonets)>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뭐랄까 '다른' 영화들인데,

그 중 한 편이 법정 영화로 지금 이 영화 <써전 라이커>이고

다른 두 편을 들자면 포로 문제를 다룬 <더랙(The Rack)>과 <타임 리미트(Time Limit)>입니다.

이 세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념을 변주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영화들입니다.


<더랙>에서 폴뉴먼은 <7월4일생>이 그려낸 톰 크루즈의 원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흥미롭게도 상흔의 원천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포로수용소에서의 '변절'입니다.

<타임 리미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중 카길 소령이 감내하고 있는 트라우마는 

전쟁이 아니라 포로수용소에서의 변절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상의 비극입니다.


<써전 라이커>는 정통 법정 영화입니다. 포로수용소가 개입하지는 않지만

군사 법정의 피고는 변절 혐의를 받고 있는 리 마빈, 극 중 라이커 상사입니다.

영화는 법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도전하는 라이커 상사를 통해 체제에 대한 비난까지도 불사하면서

앞의 두 영화가 보이고 있는 순화적 유약함에 선을 긋습니다. 

60년대 말에 이르러 비로소 매카시즘의 자장에서 벗어난 한국전쟁을 시도한 미국 영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미국의 한국전쟁 영화는 사실상 1968년의 이 영화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영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1970년대의 <매쉬> 조차도 실제론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던 영화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즐감하세요.


** 긴 글이 됐는데 자막은 하나이지만 영화 셋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셋 모두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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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감사드립니다.
와 이런 한국 전쟁 영화가 있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철모, 총검, 도곡리 다리, 포크 촙 힐 4편 말고는 모르는 것들이네요.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