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공연 (The Last Performance, 1929)

자막자료실

마지막 공연 (The Last Performance,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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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콘라드 바이트 팬심 자막입니다. 

보면 볼수록 멋진 배우지만, 

역시 무성영화에 최적화된 그 표정과 동작이 이 영화에서도 일품입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줄거리는 뻔합니다. 중년 남자가 자식뻘도 안 되는 어린(심지어 여기서는 미성년자) 여자를

좋아하다가 젊은 연적에게 뺏기는 뭐 그런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최면술과 마술에 능한 사람이다 보니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림자를 이용한 흑백 화면의 미덕도 마음에 들고요.


두 가지 버전이 있어서, 유성판의 더빙은 벨라 루고시가 헝가리어로 했다고 하는데,

이 버전은 무성이고, 영어자막은 영상에 나옵니다만 자막파일은 덴마크어?판 뿐이라서

그 자막파일을 열어놓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자막을 번역해서 집어넣었습니다.

이 러시아 자막파일은 블루레이 용으로 되어 있으나,

영상은 BDRip입니다.


감독은 페외시 팔이라는 헝가리 계 미국인입니다.


영화의 교훈? 내 여자를 다른 남자가 넘보는 상황을 만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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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감사합니다~~~
22 인향
감사합니다.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9 언제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2 happyandmerry
수고하셨습니다
S dreammaker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2. 7. 12. 감상

단  평 : 법 앞에서 환상은 금지된다

호기로운 선언문은 비극을 예시하지만, 이어지는 오프닝은 충분히 과시적이다. 그 자체로
무대 공연의 다큐성을 담보하고 싶은 욕망이 범람하는 서두는 그것이 세계를 매혹하게 할
정도로 충분한 노동력으로 구성된 것임을 보증받으려한다. 오버랩과 편집의 매끄럽고자 한
이음매는 거기에 어떤 빈틈도 없이 관객을 장악할 수 있음을 적시한다. 물론, 이 엄중한
통제력은 내재적인 반역으로서 상황이 뒤집히기를 외려 준비하는 분주함과도 같은 것이다.

본편의 유력한 질문은 엔딩까지 혹은 엔딩에서 왜 최면술은 발휘되지 않는 것인가에 있다.
영화의 백미인 초반부 무대에서의 귀족 계급에 대한 환타지 주입의 영능력은 무대에서만
실현될 뿐, 관객의 기대와 배반되게 이후 전혀 재현되지 않는다. 꺼꾸로 말하자면, 이는
그같은 시공간의 환상성은 어디까지나 공연에서만 실행되어야함을 진술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질서로서의 법정이라는 마지막 무대에서 감히 최면의 마력은 침범될 수 없을 것이다.

<칼리가리>, <올락의 손>, <웃는 남자>에서 연쇄되는 배우의 전력이 본편에서 시선으로서의
눈으로 집중될 때, 이는 마술 공연이라는 장치와 중첩되며 일종의 패배감으로 고립화된다.
막을 걷은 후 관계의 폭로를 목도할 때 그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장면화의 어법에도
불구하고 엔딩은 예술이 실재에 어떻게 복속되어야하는지를 아버지의 자결로 인증한다.
하지만, 적어도 '재판은 끝났다'라는 종결의 자격을 예술의 시선에 부여하는 예의는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