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의 허실이 의도된 것이라면 이것이 일종의 부채심리 혹은 국가에의 예속이라는 억압적
장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하게된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공간을 이동하는 여정에서
인물은 매순간 자력보다 더 거대한 힘의 운명 하에 놓인다. 이를 조력이라고 폄하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드라마적 장치로서 인물의 회복을 예비한다는 맥락을 인정함에서 연유한다.
외피적으로도 전쟁의 정점에서 가정조차 구제하지 못한 남성의 재혼 서사가 필요할 정도로
후방에서 국가 헐리우드는 집단의 무의식화된 발기 불능의 위축을 수술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프닝에서 시계추와 두 개의 진자 그리고 6시라는 퇴근 시계 등의 남근성은 정신 병원극의
관습적 장르성으로 현실/환상의 경계를 혼종시키지 않는다. 단 한번의 깨어남을 제외하면
본편은 어떤 환타지의 표지도 흩뿌리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전술한 인물의
이동성인데, 그는 공습의 대피소를 포함한 추적의 방식을 통해 자신이 서 있어야하는 자임을
증명하려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끊임없이 흔들림으로서 인물은 비로소 직립하는 자가 된다.
중반 혹은 결말의 암흑은 이같은 궁지의 흔적에 대한 표현주의의 자장인데, 이를 파괴함은
결코 인물의 자력에 허가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여성 혹은 국가가 해제한다는 지점은
인물의 남근이 외부와의 관계 하에서만 허락됨을 진술한다. 뒤집자면, 유폐라는 고립에서
전투 해도라는 이동의 극비사항을 보안하는 수행성만으로도 인물은 이미 일종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최종적인 장소가 건물의 옥상이라는 관례가 이번에는 추락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평 : 국가가 허락한 남근
본편의 허실이 의도된 것이라면 이것이 일종의 부채심리 혹은 국가에의 예속이라는 억압적
장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하게된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공간을 이동하는 여정에서
인물은 매순간 자력보다 더 거대한 힘의 운명 하에 놓인다. 이를 조력이라고 폄하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드라마적 장치로서 인물의 회복을 예비한다는 맥락을 인정함에서 연유한다.
외피적으로도 전쟁의 정점에서 가정조차 구제하지 못한 남성의 재혼 서사가 필요할 정도로
후방에서 국가 헐리우드는 집단의 무의식화된 발기 불능의 위축을 수술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프닝에서 시계추와 두 개의 진자 그리고 6시라는 퇴근 시계 등의 남근성은 정신 병원극의
관습적 장르성으로 현실/환상의 경계를 혼종시키지 않는다. 단 한번의 깨어남을 제외하면
본편은 어떤 환타지의 표지도 흩뿌리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전술한 인물의
이동성인데, 그는 공습의 대피소를 포함한 추적의 방식을 통해 자신이 서 있어야하는 자임을
증명하려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끊임없이 흔들림으로서 인물은 비로소 직립하는 자가 된다.
중반 혹은 결말의 암흑은 이같은 궁지의 흔적에 대한 표현주의의 자장인데, 이를 파괴함은
결코 인물의 자력에 허가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여성 혹은 국가가 해제한다는 지점은
인물의 남근이 외부와의 관계 하에서만 허락됨을 진술한다. 뒤집자면, 유폐라는 고립에서
전투 해도라는 이동의 극비사항을 보안하는 수행성만으로도 인물은 이미 일종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최종적인 장소가 건물의 옥상이라는 관례가 이번에는 추락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