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앙 뒤비비에 (Julien Duvivier) 감독의 프랑스 고전 영화입니다.
미셸 시몽 (Michel Simon)과 비비안느 로망스 (Viviane Romance)가 남, 녀 주인공을 맡아 열연합니다.
범죄, 사랑에 대한 욕망, 거짓 소문, 광기,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되는 영화입니다.
시네스트에 한글 자막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고전 영화로 꼭 한번 보실 만한 영화입니다.
자막 수정은 언제나 환영하고요. 배포는 시네스트의 규칙을 따라주세요.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 이 영화가 imdb에는 1946년 작품이라고 나오는데, 시네스트 검색에는 1947년 작품이라고 나오네요.
Criterion, Blu-ray, 크라이테리언, 한글자막, Panic
너무 어렵지 않고 상업적이면서도 몰입감좋은...
로맨스..드라마..범죄스릴러..코미디까지 거의 전장르를 주무르시는 거장..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수정했습니다.
단 평 : 놀이공원이 멈출 때
이쯤되면 일자(一者)를 논해야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부정당한다고 해도 관객은 감독의 세계 내
하나의 본질주의를 진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절대일 수도 없거니와, 자/타의에 의해
처형되거나( <망향>, <공황>), 관찰자로서 시공간 내부에서 연계된다고 해도(<무도회의 수첩>,
<운명의 향연>) 세계는 유일자로서 그의 시선 아래 놓인다. 본편에서 인물이 소멸되기 전에 그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위태롭게 바라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라 세상으로서의 '위태' 다.
서부극적 입장에서 누군가 외부로부터 이입되었을 때 그것은 실재와의 강제화된 대면을 초래한다.
문제는 마주봄의 자기 내부의 타자성이 파국을 경유한 이후에도 여전히 정화는 불가능할 때의 공포다.
본편은 이같은 공황을 놀이공원-카니발리즘으로 전원을 온오프시킨다. 그 곳은 배제의 권력을
시선과 운동으로 마비시키는 보체의 환영이 있다. 본편이 거의 수미상관으로 마을에 놀이공원을
배정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완전히 그것이 설치되기 전에 관객이 목도하는 장면은
빈곤과 시신이다. 그리고, 인물은 그 가난의 실재적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할 수 있는 능력자이다.
바로 그것이 인물이 소멸되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신비주의자는 마을의 스승이 되지 못한다면
거부당해야만한다. 시공간적으로 모든 것을 인지한다는 것은, 게다가 완력도 자기방어적이라면
그는 구별됨으로서 희생양으로 특정된다. 본편의 제작 시기를 상정한다면 제의 논리 내부에 있는
공동체의 분노 혹은 비윤리는 전쟁의 상흔을 부정함과 연결된다. 파시즘의 우민화는 초인의 힘을
부정하거나 숭배해야한다. 여기서 가능성의 외부인이 내부의 거부와 결탁할 때 무게는 소거쪽으로
기운다. 놀이공원은 멈추고 진정한 인신 공양은 재래한다. 사진-영화는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