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 Across the Table (1935, 한글제목 미정)

자막자료실

Hands Across the Table (1935, 한글제목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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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롬바드, 프레드 맥머레이 콤비가 출연한 프리코드 스크류볼 로맨스 영화입니다

자막 상태가 좀 이상해서 20분까지는 딱 1.3초 빠르게 해놓고 보니까 맞더라구요. 20분 지나서는 다시 싱크 초기화해서 보시면 됩니다.



줄거리


레지 알렌(캐롤 롬바드)은 가난하게 자라 사랑을 믿지않고 부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호텔 매니큐어사다. 그녀의 새로운 고객이자 부자 알렌 맥클린(랄프 벨라미)은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친구가 된다.

그의 펜트하우스에서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있는 남자와 마주치고 남자가 같이 할 것을 권유하지만 거절한다. 하지만 그가 손톱 관리 예약을 잡고나서야 레지는 그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가문의 후예인 시어도어 드류 3세(프레드 맥머레이)인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드류 가문은 대공황으로 파산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레지는 그의 저녁 약속을 수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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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2 인향
감사합니다.
28 언제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첼 라이슨 감독의 영화를 2019년에 시네마테크에서 처음 봤습니다. <이지 리빙>(37), <미드나이트>(39), <그 밤을 기억하라>(40)가 그것입니다. 보는 순간 이 감독의 영화에 매혹되었습니다. 미첼 라이슨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영광의 길을 내어준 감독입니다. 미술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해서 그런지 세트 디자인과 무대 의상을 눈여겨 볼만한 감독입니다. 세실 B 드밀 감독 밑에서도 일을 했고 본격적으로 감독에 입봉했을 때는 에른스트 루비치와 조셉 폰 스턴버그라는 거대한 인물이 파라마운트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는 이 두 감독에게 다 갔고 그는 그저그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영화를 시작하던 30년대에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마이너한 장인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30년대 초반과 40년대 초반에 걸쳐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위의 착품 외에도 <스윙 하이, 스윙 로우>(1937)가 그의 경력을 대표할만한 작품입니다.
40년대 후반부터 라이슨의 서서히 쇠락해지자 그의 자리를 차지한 감독이 그에게 시나리오를 제공하던 빌리 와일더와 프레스톤 스터지스였지요. 그의 전성기는 매우 짧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보여줬던 감독입니다. 올려주신 영화 감사하며.. 이 감독의 다른 영화도 많이 소개되길 바랍니다. (_ _)
37 Rookie
감사합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20 엽전
감사합니다
GIVE 5 MP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GIVE 5 MP 7 LIitz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감사드립니다.
14 푸른눈
수고하셨습니다
10 천리무봉
감사합니다
6 shhong70
고맙습니다.
30 하얀벽돌
자막 번역 감사합니다.
S 기린군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2. 2. 10. 감상

단  평 : 사용가치로서의 초월성


원제를 본편 내 직업인 매니큐어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탁자 위로 건네진 손' 정도로 좁혀진다.
이는 손톱 등 손질을 위한 사용가치적인 맥락에 한정된 것이지만, 인물들이 자백하듯이 그 손'들'은
오롯이 촉감으로서의 영화적 무감각을 위해서 배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할리우드적인
교환 가치로서의 가능성인 자본가와의 만남의 경로로 사용된다. 즉, 돌려말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손은 성적 교감의 출입구인데, 그래서인지 본편은 손의 작업에 대해 클로즈업을 범하지 않는다.

이는 천박함으로부터의 부르조아적 회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리에 캐롤 롬바드의 얼굴이 전혀
등식화되지 않는 '돈' 타령과 연결될 때의 부담을 축소시키는 면모도 장착한다. 이 저급함으로의
노골적인 탈주야말로 할리우드의 오랜 위장된 로맨스의 공식이기도 하다. 신데렐라 무비가 재차
러브 스토리로 변환됨으로서 인간의 품격을 정좌시키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여기서 손의 작업은
다시 사용가치로서 복귀하는데, 손을 넘어선 초월성으로서 자본주의의 진공에 대한 장갑이 된다.

흥미롭게도 본편에서 경쟁자로서의 자본가는 하반신 불구로서 휠체어와 하인의 조력을 받는다.
이 지점은 위 진실한 사랑에 대해 자본 거세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허명 뿐인 자본가의 무능함과
대비된다. 게다가 매니큐어사는 자신의 직업적 능력에서 허실을 드러낸다. 즉, 두 인물은 모두
자본 밖에 위치되는데, 이것이 무르나우의 <일출>의 엔딩을 비미학적으로 포장한 본편의 엔딩과
비견되면서 비록 잠시지만 자본주의 도로를 마비시키는 환타지로 상승한다. 그들은 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