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랜만이네요.
24번째 번역작입니다.
감독: 킹 비더 King Vidor
각색: 킹 비더, 로렌스 스탈링스 Laurence Stallings
프로듀서: 어빙 탤버그, 킹 비더
음악: 윌리엄 액트, 칼 데이비스 (1988년도 버전)
출연: 존 길버트 John Gilbert, 르네 아도레 Renée Adorée, 호버트 보스워스 Hobart Bosworth,
클레어 맥도웰 Claire McDowell, 톰 브라이언 Tom O'Brien, 칼 데인 Karl Dane
https://drive.google.com/file/d/1lGgpEJE0yME30t2cBSBWTzDBCZi4yKmt/view?usp=sharing
추후에 계속해서 좋은 영화 올릴 수 있도록
힘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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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평 : 저 멀리 아득히.....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에 한정해서 말해야겠다. 만일 <군중>, <마천루>에 이어 본편을 접했다면 모순과 연쇄,
어느 쪽이든 단정할 수 있었겠지만, 경로의 폐쇄성은 파편적인 감상으로 본편을 예외성으로 지정한다.
가령, 미국 도심의 건축 중인 고층 빌딩의 오프닝과 프랑스의 농촌 언덕의 엔딩의 대립 위에
두 노동자는 사망하고 부르조아의 아들은 상이군인으로 귀향함을 중첩시킬 때 해석은 고립된다.
인물의 첫 등장에서 면도를 받는 움직이지 않음이 종반의 다리 절단과 관련되지 않기는 어렵다.
철저한 이분법 하에서 인물과 배경은 내부와 외부를 육체와 국가로 반목시키고, 모더니즘의 냉기가
일직선으로 전진하면서 짚단처럼 쓰러지는 병사들의 프레임으로 능지처참될 때 영화는 단순히
비정치성의 반전 의식 따위로 제한되지 않는다. 밖이라는 실전의 공간은 잘려지지 않는 케이크를
통해 안의 실체를 통찰시키고, 자신이 가장 작은 조각을 먹어야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체득한다.
병사들은 쉴 새 없이 장교를 걷어차거나, 헌병들의 표식들을 탈취함으로서 밖의 반역을 가중시킨다.
거의 절반으로 동강낼 수 있는 구조 이후에 전쟁터는 장르의 익숙한 전투와는 완전히 차별화하는
대열 구조의 일방적인 전진의 총격 대상화는 이 공간 자체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노골화한다.
익스트림 롱 숏의 거대한 행렬은 이미 회귀하는 미래형과의 현재적 조우를 통해 시간을 압축시키고,
보이지 않는 군상층부는 그 공간의 정의적 실체성을 부정한다. 거기에는 침뱉기의 운명론과 같은
허무주의만 난무할 뿐이다. 엔딩에서의 머나먼 언덕 위의 작은 형상이 던지는 왜소함을 인지할 수
있는 관객과 불가해한 가능성을 향하는 인물간의 동일시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