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 거울 (La glace à trois faces, 1927)

자막자료실

삼면 거울 (La glace à trois faces,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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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엡슈타인 Jean Epstein의 <삼면 거울 La glace à trois faces>입니다.

 

Comments

11 라소
감사합니다
3 이면발
감사합니다~
19 까마귀
고생 많으셨습니다~
21 언제나
고맙습니다.

추카추카 1 Lucky Point!

39 無名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 파이파이
수고하셨습니다
S dreammaker
감사드립니다.
2 발타자르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9 넘조아
자막 고맙습니다. 그런데 영상 찿기가 쉽지 않네요TT

추카추카 16 Lucky Point!

S 컷과송
2021. 3. 28. 감상

단 평 : 인지의 불일치에는 실재가 없다.


영화적 기법들이 분수처럼 흩뿌려졌을 때 그것에 현혹됨 없이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가늠하는 자리가
제시된다면 관객은 비로소 캐릭터와 사건에 민감해질 수 있다. 38 분여의 중단편에서 프레임은 거의
고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고정이란 단순히 롱 테이크를 지시함이 아니라, 필름 자체가 하나의 현상을
포착함으로서 충족함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이는 곧 세계관으로서 시공의 혼종이나 중첩을 지시한다.
삼면 거울이 3차원이 아닌 4차원을 지향할 때 플래쉬백조차 활력의 전력으로 리얼리티가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지극히 친절한 신파적 엔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항복처럼 통역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1차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질주학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과 조응하자면 마냥 속도의 종횡이
던지는 미학적 낭만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무목적이라기보다 현상될 리얼리티 자체를 무화시키려는
영화의 권력이 최종 충돌로 인해 무산됨을 전시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혹은 실제적인지 의문스럽다.
관습적인 쌍방향으로서의 거울 효과도 거부한 채 예정된 유령화의 종결은 이야기의 실체를 부정한다.

어설픈 변증법을 상기시키기에는 세번째 여인의 계급적 위치나 예술적 위상이 가늠되지 않는다.
첫번째에서 두번째로 진입하는 통로가 필름의 회전과도 같은 360도 운전인 것과 반대로 두번째에서
세번째로 가는 경로는 직선주로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앞선 두 지점이 절합되고 있다는 테마는
서사적으로 허락될 필요조차 없다. 첫번째의 강인함과 두번째의 연약함 혹은 야외와 실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세번째의 일치할 수 없음의 퍼포먼스들은 영화가 1/24 너머에 안착할 수 없는 질주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