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Finis terræ,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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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Finis terræ,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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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엡슈타인 Jean Epstein의 <세계의 끝 Finis terræ>입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주로 '엡스탱'으로 표기되는데 Epstein의 발음은 [ɛp. ʃtajn]입니다. 엡스탱과는 전혀 다르죠. 

하루 빨리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도 정상적으로 표기되길 바랍니다.

 

Comments

39 無名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 파이파이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고맙습니다.
2 발타자르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9 넘조아
고맙습니다.
1 옆집남자
자막 감사드립니다..
S 컷과송
2021. 4. 1 감상

단 평 : (부서지는 파도 뒤에) 사람이 있다


전작 <삼면 거울>의 이형환위에 비하자면 이토록 고요한 프레임이라는 엇나간 언사가 발설된다.
수미의 프레임은 자연과 대상을 응시하는 태도로서의 카메라라는 당연하고도 자연적인 자리가
도두라지며 빈곤한 서사에는 어떠한 사기도 없이 잔잔하면서도 직선적으로 관계를 지향한다.
기이한 것은 왜 두 가족의 불화를 전제하고, 오해와 공존이라는 갸날픈 사연을 삽입했는가인데
영화사적인 혹은 고전적인 흐름 하에서의 응답은 영화가 선택한 이미지를 위해 소비된 서사다.

등대 내부의 거대한 조명등, 등대를 위시한 빛의 산란, 땅과의 접촉면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얼굴을 배제하고 부분적인 신체에 각인되려는듯한 클로즈업, 파편화된 조각으로의 느린 화면 등이
반복되는 동안 인물의 손 안에 감춰진 유리날의 상처는 거의 희생양이 된 캐릭터로 급강하한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초가 태워지고 그것이 상품화되는 것과도 같이 캐릭터와 서사는 롱 숏과
클로즈업 사이를 오가며 대상을 미학적으로 상상하기 위해 스스로를 미니멀리즘의 신화가 된다.

성자로서의 의사 배역은 전반부의 고립된 섬과 바다를 봉합하기 위해 마련된 좌표에 배석한다.
그는 세계의 끝을 바라볼 수 있는 등대에서의 망원경과 어린이들과 동감할 수 있는 시선 그리고
성인을 독려할 수 있는 지도력을 모두 겸비한 자로서 엔딩에서 굳이 재확인되지 않더라도 그 자신
영화의 초상임을 잠시 잠이든 상황에서의 프레임과 대중의 침묵에서도 드러난다. 두 척의 선박이
어떻게 안개 속에서 그토록 간단히 조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객으로서의 응답은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