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 부인 (Madame Curie, 1943)

자막자료실

퀴리 부인 (Madame Curie,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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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sub 추출 한/영 자막.




그리어 가슨 최고의 작품은 <마음의 행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미니버 부인>도 좋고 <굿바이 미스터 칩스>에서도 멋졌지요.

<퀴리 부인>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로자먼드 파이크 주연의 2019년 작 <마리 퀴리>와 비교하며 보시면 재밌을 듯. 



혹자는 타이틀 롤인 그리어 가슨보다 

월터 피전에 더 열광하시지만요. 응? (누구신지 밝히진 않겠음 ㅋ)

'월터 피전은 미모에다가 목소리가 살 떨린다'라는 사심 가득 감상평을... 




DVD를 제공해주신 영잘알 지인의 <퀴리 부인> 뒷얘기 :


"딸이 쓴 퀴리부인 전기가 원작이라는데, 원작이 꽤 튼실했나 봅니다. 


영화 내레이터가 의외의 인물인데 <굿바이 미스터 칩스>, <마음의 행로>, <잃어버린 지평선> 원작 소설과 <미니버 부인> 극본을 쓴 제임스 힐턴. 그리어 가슨, 로널드 콜먼 덕후였나 봅니다. ^^


피에르 퀴리 사후 후일담으로 퀴리 부인이 죽은 남편의 제자와 연애를 했대요. 그냥 연애였어도 보수적인 학계에서 힘들었을 텐데 바람둥이 유부남이어서 그 와이프가 폭로하는 바람에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두번째 노벨상을 거부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나네요."



이 멋진 고전 영화 덕후님께 감사를 전하며

요즘 정신 없어서 뒷얘기는 이 정도로 줄이고

오늘도 뻔뻔하게 뒷일을 부탁 드리며 저는 이만 자러 갑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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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두번이나 수상하셨다는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카추카 14 Lucky Point!

2021. 2. 27. 감상

단 평 : 아름다움을 허하지 말라


'무엇을'을 중시한 철지난 사회학적 비평의 맥락을 소환하여 상업화된 할리우드의 전략성을
비난하자면 본편은 두 배우(그리아 가슨, 월터 피전)에게는 찬란한 소비의 시간으로 요약된다.
2차 대전 하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소개된 바 있고, 그 중 중산층적
전략이자 전쟁 하 상흔의 회복이라는 목적의 점잖고 부드러운 여성성 활용은 본편을 비롯한
세 편의 부인 연작에서 완벽하게 설파된다. 비록 세 편이 각기 다른 감독의 연출이라해도 동일하다.

본편 위에 실제 마리 퀴리의 생애를 중첩시켜 페미니즘적 다시 읽기를 수행할 경우에도 이같은
그늘은 쉽게 해체되지 않는다. 가령, 남편을 비롯 남성들에게 아름다움을 언어로 찬미받음에도
정작 드레스라는 기호를 무대 위에 올리려는 순간에 도래하는 죽음은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여전히 가부장제의 폐쇄성의 시선으로 제약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오프닝이 여성의 굶주림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실제의 영화적 선택이라는 점에서도 곱씹어져야만 하는 기이한 좌절이다.

그럼에도 본편을 비롯 세 편의 부인 시리즈에서 여성은 일종의 인류적 책임감으로 부여/억압받아
그 안으로 들어서는 존재다. 본편에서 두 인물이 처음 만날 때 초인종을 누르는 과정에서 서로의
위치는 교환되고 문은 여성 쪽으로 내부에서 개방됨은 남성의 마지막 외출에서 결코 그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포착하지 않는 것과 비견된다. 해당 프레임은 오직 여성이 문을 열고 말하는
모습으로만 대체된다. 문을 열고 열리는 동작의 순간에 포함되는 인물이 모두 전시되는가의 문제는
의외로 본편의 무수한 문열기에서도 초점이 된다. 이는 노골적으로 본편이 별, 원소,촛불의 찬양으로
빛=영화의 우월을 제국주의의 선전으로 고양하는 나태로 연결된다. 여기 아름다운은 허가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