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지다 (乱れる, Yearning, 1964) 나루세 미키오

자막자료실

흐트러지다 (乱れる, Yearning, 1964) 나루세 미키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411609

044049da433f9862787e2ebbfbc56f32_1585640098_8954.jpg

044049da433f9862787e2ebbfbc56f32_1585640107_1739.jpg

 

보신분들은 다 보셨을 작품인데 이상하게(?) 자료실에 없어서 올립니다

혹시나 못보신 분들이 계시거나 좋은 화질로 재감상 하실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번역 : 하루 - blog.daum.net/haruda


번역이 워낙 훌륭해서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루 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루세 베스트 투표를 하면 세 손가락에는 무조건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으로 저에게는 1위인 작품입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s://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S 줄리아노
감사 감사 또 감사요!!
S 컷과송
2021. 6. 12. 재감상

단 평 : 길건너에 화장품 상점이 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왜 그 기차는 그토록 오랫동안 밤과 낮을 경유해서 가야만 하는 것일까?
혹은 기어이 잠든 남성을 보고 여성은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일까? 뒷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확증 편향은 고약하게도 다른 조짐들을 생존시키지 않는다. 본편 이후에 더 이상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가 없을 것처럼, 혹은 유작인 <흐트러진 구름>이 그저 본편의 부연에 불과한처럼 간주함이다.
험프리 보가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가 사라진 이후의 1960년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흐트러짐에는 다사다난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본, 근친 등의 소품은 이미 감독의 세계 내에서
유통된 바 있거니와 그것은 흩뿌려진 안개와도 같다. 오히려 흐트러짐이 필요했다고 과언함이 옳다.
이는 도무지 시선화할 수 없는 그 먼 거리의 반지를 통찰해야만하는 안간힘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물은 자꾸만 희생의 시간과 시대의 다름을 말하고, 영정 사진을 엎어서 가방 안에 보관하고자 한다.
길 건너에는 아직 화장품 상점이 있지만, 카메라는 그 너머보다는 소매점의 통로 안에 인물을 가둔다.

인물은 결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의 프리즈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정지시켜 버린다.
재혼을 하지도, 슈퍼마켓으로 전환하지도 못한 채 과거의 잔영으로 근친의 금기를 중첩시키는 모호한
모순 하에서 결국 기차는 시간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한다. 아직도 혹은 젊은 누군가 오래된 소매상을
연모해주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오토바이와 점원이 떠나버린 자리에 자전거를 놓거나 술을 판매한다는
백수와 미망인의 자리에는 '슈퍼 세일'의 가치는 공존될 수 없다. 2층은 아직 거기 있지만 이제 잔인하다.
1 문화동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