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William Shakespeare\'s Julius Caesar,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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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William Shakespeare's Julius Caesar,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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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 BJCool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3. 12. 21. 감상

단 평 : 죽음의 승리

세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제외하기는 불가능하다. 배우들은 만반의 태세로 자신의 역량이 원작자의 기세에 눌리지 않도록
본편이 그저 연극을 촬영한 필름에 불과하다는듯이 무대에 서서 군중에게 연설한다. 이는 오프닝에서 곧바로 확인된다.
원작의 혹은 할리우드의 인민 혐오적 태도는 파시즘, 매카시즘 등의 명확한 역사적 기반을 은유하기보다는 연설하는
지성-감성에 휘둘리는 무력한 비주체로의 지정에 가깝다. 청자 집단을 대표하는 몇몇 단역들의 단발성 대사와 눈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실제로 당시 지배층이자 지식인에 대해 어떤 폭력적인 영향력을 감행할 수 있었는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편은 원작의 정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시저에 대한 암살,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 이후 종극으로
치닫는 단락에서 60년대의 화려한 색감과 규모의 전투에는 그다지 치중하지 않는다. 그저 자결하는 사유가 필요하고
패자의 잔영을 승자의 거만과 대비시키고자 하는 연극적 과잉이 존재할 뿐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두 연설의 승패는
<이브의 모든 것> 이후 지속된 연극으로서의 영화라는 배반과 달리 시체 운반이라는 동적 이미지 등에서 갈린다.
이는 연극이 어떻게 영화에 패배하는가라는 구술과 다르지 않다. 언어는 언제나 언어를 실제하게한 물질에 종속된다.

이같은 맥락을 보강하기 위해 본편은 굳이 시저의 유령을 삽입시킨다. 타인들은 감지할 수 없고, 오직 브루투스에게만
사청되는 유령은 마치 그가 왜 안토니우스의 연설에 패배했는지 입증하고자 소환된 것처럼 보인다. 그 반대편에 연설은
승리했지만, 결국 시저의 동상 곁에 머무는 안토니우스에 비해 적어도 브루투스는 자신의 패인을 성찰할 수 있다.
원작의 틀을 수정하지 않은 본편은 감독 세계 내 여성 인물이 부재하고, 전작 <다섯 손가락>의 제임스 메이슨의
목적적 행위를 승계하면서 재차 남성의 허무로 추락한다. <이브의 모든 것> 이후부터 주체는 결코 자립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