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프카피 (Topkapi,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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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프카피 (Topkapi,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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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만 맞췄습니다. 

 

Comments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35 Grushenka
고맙습니다.
47 CaMillo
감사합니다.^^*
31 구름뫼
고맙습니다
7 포경선장
감사합니다.

추카추카 34 Lucky Point!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감사합니다.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GIVE 3 MP 20 빠깡
고맙습니다
28 언제나
고맙습니다.
37 Rookie
감사합니다
27 궁금맨
고맙습니다.
27 ll레온
고맙습니다.
39 범부
감사합니다
21 Enuf
고맙습니다 

추카추카 31 Lucky Point!

37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GIVE 3 MP 42 신동휘
고생하셨습니다.
3 다무시
잘 볼게요.고맙습니다.

추카추카 4 Lucky Point!

48 RainBow
수고하셨습니다! ^^

추카추카 20 Lucky Point!

S BJCool
갑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2024. 3. 21. 감상

단 평 : 시선을 돌린다는 것

모든 개별적인 영화 작품은 그 내부에 무의식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의견을 내재한다. 줄스 다신의 경우,
이같은 맥락이 외피로 노출된 경우를 <잔인한 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후 감독은 이데올로기의 위치에서
서사를 일상과 신화를 혼종시키며 발언을 지속했다. 본편은 MGM 표시에서도 드러나듯이 상업영화로서
복귀이면서 동시에 전술한 메타 영화적 시선을 유흥적인 측면으로 포장한 20년전 전작 사례로 되돌아간다.
인물의 관객에 대한 해설 프롤로그가 빛의 광채, 보석, 야외 순회공연단 등으로 구성될 때 이는 선명해진다.

머니 환타지와 탈취가 장르의 매혹으로 대중에게 주체로서의 이입 만족을 부여할 때, 관객은 본편 내에서
자신이 구성원 다수로 분신되는 쾌감도 흡수하게 된다. 즉, 만능으로서의 자본주의 이탈에 대한 욕망이
목적론이라는 직진성과 결합되어 할리우드는 출구로서의 보수성을 지속했다. 본편 역시 그같은 고전적
영화의 지론에 동의하는 장르의 외피를 착용하면서 감독의 10년전 <리피피>에서의 프랑스적 감수성을
탈색시키고 그 반대편에서 미국의 욕망을 전시한다. 하지만, 장소는 그리스에서 터키로의 안전성을 취한다.

전술한 바처럼, 본편이 유흥지적 장소에서 출발하면서 동시에 <일요일은 참으세요>에서의 여성 인물을
소환시킨 듯한 기획자로서의 주체로 설정하고 공범자 전원과 신체 접촉을 하거나 남근성 회복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전시하거나, 빛을 조절하는 등대를 통제할 때 영화는 여성 영웅을 현장에 투입하지 않고도
후면의 지배력을 배정시킨다. 본편이 진술하는 영화의 오랜 정체성은 시선의 마취적 몰입으로서 국가는
축제 레슬링의 육체성에 임무를 망각하거니와 정보 수장은 최종적으로 색안경을 벗음으로서 자신이
결코 시선 돌리기로서의 영화에 현실에서 배제되지 않음을 표시한다. 완수된 보석 강탈이 계획 밖
돌입한 작은 새의 착지로 발각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튜디오 내 엔딩 촬영은 이를 확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