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클라리스 리뷰

드라마 이야기

드라마 클라리스 리뷰

3 쉐도엘프 0 746 1

*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하였으나, 글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내용 누설이 있으니 온전하게 극을 감상하고 싶으시면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30년 전 추억의 맛집이었던 사골집 사장 아들이 돈까스집을 오픈하다?



- 서론


드라마 클라리스는 딱 30년 된 명작 영화 '양들의 침묵'의 스핀오프다. 동명의 소설들을 각각 원작으로 한 '레드 드래곤', '양들의 침묵', '한니발', '한니발 라이징'이 같은 세계관과 캐릭터를 공유하는 한 시리즈이지만 여기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언급을 피하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본 적은 없지만, 이 영화 시리즈의 팬이며, 한니발 렉터라는 살인마 캐릭터에 매우 깊게 심취했었다. 또한 이 작품과 캐릭터의 팬덤 또한 제법 크다. 흔히들 컨텐츠에서 접하게 되는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전형을 영화 '싸이코'가 만들어 냈다면, 양들의 침묵은 그런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신세계(?)를 보여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한니발의 출연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주인공인 클라리스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남겼고 사실상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양들의 침묵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클라리스가 아닌 한니발인데, 한니발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이미 예전에 제작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클라리스를 주인공으로 분량 한번 뽑아보자 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드라마 클라리스인 것 같다.


그런데 판권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되지가 않은 모양이다. 드라마 제작 시 한니발 캐릭터를 아예 넣지 못하고, 이름 언급 조차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클라리스라는 존재는 한니발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은 클라리스지만, 이 영화의 임팩트는 바로 클라리스와 한니발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는 물론이고, 클라리스 자체의 캐릭터성조차 한니발이 없으면 아예 논할 수가 없는 수준으로 영향력이 큰데, 그 주인공으로 만드는 스핀오프에서 한니발이 완전히 지워지다니!


그러나 이런 사전 정보는 내가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대놓고 양들의 침묵 팬덤을 노리고 만든 드라마인데 내가 안 걸려들 순 없는 노릇이다. 마치 30년전 고향에서 자주 다녔던 유명한 사골집 사장 아들이 생뚱맞게 돈까스집을 오픈했는데, 괜히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불만도 있었지만 추억을 먹고 사는 40대 아재에게 상단에 올린 드라마 클라리스의 포스터는 정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오마쥬인가.



- 본론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마 클라리스는 내 기준에서 실패작이다. 포스터만 기억에 남기고 싶을 정도로 매우 심각하게 실패했다.


사실, 양들의 침묵은 서사가 매우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다. 특유의 분위기, (당시 기준으로) 매우 임팩트있었던 캐릭터, 스릴러와 호러를 적절히 버무린 시도, (역시 당시 기준으로)신선했던 편집 기법과 반전 등이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영화였다. 클라리스가 원탑이 되는 이 스핀오프에서는 과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내심 궁금했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장 불편했던 점은 캐릭터들의 감정과 행동에 공감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의 감정이나 행동에 부여되는 동기가 미약하고(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그런 것들이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극의 흐름이 억지스럽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예를 하나 들자면, 극의 후반에 등장하는 트렌스젠더인 줄리아라는 인물은 클라리스를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리스에게 적대심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클라리스가 양들의 침묵에서 연쇄 살인범인 '버팔로 빌'을 잡으면서 큰 유명세를 얻었는데, 범인인 버팔로 빌은 트렌스젠더 수술을 거부한 트랜스젠더(사실은 아니다. 순수하게 미친 놈이기 때문에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으며, 실제로 여친이 있었던 적도 있고, 신체나 성기에 대한 변태적인 집착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라고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감이 사회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이에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을 하고 그에 대한 정정을 미디어에 제대로 해주지 않은 클라리스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줄리아의 이런 논리는 당사자에게는 타당해 보일 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매우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심지어 줄리아는 선한 인물이며 조력자이다. 친구인 아델리아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 때문에, 상사인 폴은 과거 '버팔로 빌' 사건 때의 앙금(정식요원도 아닌 연수생이, 그것도 단독으로 버팔로 빌을 잡으러 간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물론 보고나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클라리스의 실책이지만, 1년이 지난 이 드라마의 시점에서 이걸 가지고 극의 초반에 클라리스를 잡아 먹을 듯이 구는 것은 팀장이라는 직책이나 FBI요원으로서 전혀 납득이 가는 태도가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클라리스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양들의 침묵에서 클라리스가 구했던 캐서린은 여기서도 클라리스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주변 인물들이 본인의 문제를 주인공에게 전가시켜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드라마의 전체 줄기는 클라리스 개인의 문제(양들의 침묵에서 해결했던 살인 사건의 트라우마, 부모와의 좋지 않은 기억, 직장 내에서의 좋지 않은 평판 회복 등)와 그 외 중요 주변 인물들의 개인사, 그리고 거대한 음모가 얽힌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이다. 이 모든 것들이 무언가 전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며, 그 하나 하나가 풀리는 방식도 무척이나 어설퍼 보인다.


홍철 없는 홍철팀 느낌의 이 드라마가 그나마 제대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지점은 흥미로운 서사 구조나 뛰어난 스토리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 지점에서 제대로 실패했다. 중반부까지의 진행은 사건의 진실이나 캐릭터들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하나둘씩 밝혀질 때마다 시원해지는 느낌은 커녕 답답해지는 느낌만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회까지 다 본 느낌은 허무함. 이런 결론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인가라는 의문만 남긴 채로 극은 끝난다. 캐릭터 설정의 실패는 최종 흑막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일으킨 동기, 그리고 선택한 방법들 모두를 알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실소가 나왔다. 특히 최초 클라리스를 비롯한 FBI팀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된 떠들썩한 연쇄 살인 사건은 결국 자기가 제 무덤 판 꼴 밖에 되지 않은 격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여기서 다 언급하기에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특히 인종, 성차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 등 단순히 재미로만 접근하기에는 무거운 주제들을 다룬다. 물론 이것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한 그릇에 담으려고 욕심을 낸 데다가 그걸 풀어내는 방식마저 엉망이니, 제대로 전달이 될 리가 없다.


결국, 위에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이 드라마는 정처없이 여기저기를 떠돈다. 뻔한 반전(특히 동료나 친구의 배신 등)이 없다는 건 차라리 칭찬할 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썩은 나무판 위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 같은 모양새다. 막상 까보면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앞에서 무게 잡고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가벼움이라고는 단 한 줌도 없이, 시종일관 무겁게 진행되는 극 분위기와 맞물려 망가진 캐릭터, 엉망인 서사구조, 중구난방으로 풀어가는 메시지 등은 이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기가 힘들게 한다. 그 힘듦을 참고 그동안 꼬아놓은 미스터리의 해결을 보려고 꾸역꾸역 참고 보았던 시간을 허무하게 만드는 엔딩이라니. 그렇다. 솔직히 이 글은 화가 나서 쓴 리뷰다. 억울해서. 기존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 드라마는 나오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나는 보지 않는 것이 나았다.



- 결론


역시 사골집 사장 아들의 돈까스는 맛이 없었다. 아버지가 사골 맛집을 운영했다고 해서, 아들의 돈까스가 맛있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가지다니 전적인 내 실수다. 


이 드라마는 기존 양들의 침묵 팬덤을 만족시키기도 힘들 것 같고, 메시지를 전하는 데도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재미를 주는 데도 실패한 총체적 난국이다. 게다가 배우들이 엄청나게 잘 생기거나 예쁜 것도 아니고, 액션신이 화려하지도 않으며, 이야기 구조가 치밀하거나, 웃음 포인트도 없다. 킬링 타임용으로 추천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심각한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차라리 다른 걸 보라고 권하고 싶다. 굳이 찾을 수 있는 관전 포인트라면...


시간 낭비 하고 싶으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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