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2024)
에이리언: 로물루스 (2024)
https://www.imdb.com/title/tt18412256/
줄거리와 비주얼과 인물 설정과 갈등 구조 면에서 이전 에이리언 시리즈와 구별되는 점들이 거의 없다. 감정이 개입하는 인간과 냉철하게 합리적인 판단만 내리는 인공지능 간의 대립이 유일하게 새롭다. 시내 나간 김에 괜찮은 영화관에서 보려했는데 구석 자리만 남아서 사는 동네의 후진 영화관에서 보았더니 화질도 시원찮았다. 스피커 시스템은 괜찮은 편이었는지 음향효과는 인상적이었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불허당한 광산 노동자들이 대놓고 비어있는 우주선에 탑승하고 - 그러니까 거대 기업의 광산이 자리잡은 외계 행성 지역에 아무나 탈 수 있는 우주선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다는 설정은 놀랍다. 아무리 바닥층이라고 한들 에이리언의 산성 혈액이 우주선을 순식간에 구멍낸다는 설정도 놀랍다. 보통 우주선은 경량이기는 해도 아주 강한 재질의 금속을 사용해 제조하지 않나?
합리성의 기준은 보통 '다수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이다. 그것은 이익을 제일 중요시하는 기업의 기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기업으로부터 그 합리성을 강제당한다. 주인공을 비롯해 감정적이기도 한 인간들은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존 확률을 크게 떨어뜨리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고자 한다. 인간들에게 최대다수의 생존은 무조건 최고의 가치가, 따라서 합리성이 아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합리성은 합리성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의 가치인 상황이 분명히 있다.
그 상황에서는 최대다수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철저한 분업의 논리가 지배할 수 밖에 없다. 곧 폭발하게 될 우주선에서 에이리언 무리들을 뚫고 한 무리의 인간들이 탈출 포드가 위치한 곳으로 재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하자.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이는 가장 위험한 미끼 역할에만 배정될 수 있다. 다만 이 상황도 전적으로 투명하지는 않다. 미끼 역할을 배정받은 이가 그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역할을 강제한 이들에게 앙심을 품고 다 같이 죽자 모드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감정이 무작정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