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부 투파키의 위선, 혹은 국세청으로부터

영화감상평

죠부 투파키의 위선, 혹은 국세청으로부터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13 리시츠키 2 427 0

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4941_3192.jpg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4941_4392.jpg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4941_6723.jpg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4941_7668.jpg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5735_236.jpg0ef447561dd17dac8a20038bab62214d_1684655735_0962.jpg

 *  * 결말을 포함합니다 *  *










지옥의 베이글, 그건 단지 조이의 좌절과 책임감, 그리고 허무를, 더 나아가 가족 간 사랑이라는 추상적 관념의 메타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검은 베이글이 공중에서 회전한다. 극 중 양자경의 대사처럼 "일하고 세금내고, 일하고 세금내고..."

무한히 반복된다. 이는 인간의 모든 삶과 관계를 규정하는 정언명령이며,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인물들은 거기에 빨려들어가며,

폭력이 동반된다. 말하자면, 지옥의 베이글이란 디제시스의 무대이며, 디제시스의 모든 것이며, 구체적 현실인 국세청인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와 영화 내내 나오는 원형의 이미지는 이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국세청이란, 단지 세금만을 걷는 수탈기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타의 다른 국가기구들처럼, 폭력을 위한 전단계이며,

모든 인물들의 삶과 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정치기구인 것이다. 조이의 섹슈얼리티란 당연히 그 정언명령의 위반이다. 통치의 단

하나의 원리이자, 서사의 숨겨진 근본적인 단 하나의 원리인 "일하고 세금 내라"라는 -일과 세금이 환유하는 통제되고 규율화된

그러면서 물질적 가치의 내면화한 현대사회의 원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이질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사의 갈등은 마치 양자경과 남편과의 사랑의 불충실함, 조이와의 세대갈등인양 서술된다. 서사의 주인공인 양자경이 가족을

소홀히 하며 중산층을 향한 욕망에 충실하면 할수록, 가족 간의 갈등의 격차는 더욱 커지는 것인데, 양자경 역시 피해자임은 물론이다.

세탁소를 드나드는 모든 주변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묘사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쇼트들은 대단히 탁월하다. 그러나 2장 후반부터의

되지도 않는 지루한 설교는 정말이지 고문에 가깝다. 물론 가장 큰 갈등은 양자경과 조이의 관계이며, 이는 앞서 말했듯, 세대갈등이나

사랑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다. 가난한 이민 1세대의 중산층을 향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가족 간의 소홀을 필요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극 중 대립세력인 제이미 리 커티스는 물론이고, 국세청 직원들 모두 그러하다. 결국 모든 등장 인물들의 고통, 고난, 갈등의 양상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근본 모순은 동일하다. 국세청의 도덕명령인 것이다. 모든 인물은 그 거대한 원 안에서 헛바퀴를, 챗바퀴를 돌 뿐이다.

결국 디제시스 모든 곳을 관장하는 그 거대한 둥근 원, 지옥의 베이글은, 국세청을 넘어 세탁소를 넘어 미국의 모든 곳에서,

피해자와 피해자들 사이, 오해와 오도된 사랑이 투쟁하는 정치의 장이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그러나 영화제목에서

서술어가 부재하는데서 알 수 있듯, 감독의 정치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감독은 이런 세상에 허를 찌르고, 의심의 시선을 던지지만,

클라이막스에서는 아카데미 영화제스런 가족서사로 안전하게 봉합해 버리고 영화를 끝마치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쇼트에서 양자경을 향하는

트랙-인과 사운드-인을 통해, 그녀는 다시 멀티버스라는 21세기 새로운 구멍으로의 탈주를 꿈꾸지만, 그건 그저 장르적 유희에 걸맞는

클리셰로 보일 뿐이다. 양자경과 조이는 화해를 하고, 제이미 리 커티스와도 화해를 한다. 동성애를 허용하고, 동양인 이민자를 사랑과 이해로

끌어안는다는 미국식 자유주의의 위대함으로써. 그러나 미국의 실상은 과연 그러한가. 백인과 유색 인종간의 불평등이며, 리오그란데 강과 사막 앞

미-멕시코 장벽과, 남미의 가난은 어떠한가.

미드 시트콤 아래, 이안 초기 영화들과 와호장룡, 왕가위의 무드, 타란티노, 매트릭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주성치와 일본 아니메 등의 성과를

화려한 미장센과 몽타주로서 집대성한다한들 이는 얄팍한 미국식 이데올로기의 성찬일뿐이며, 미국식 진보와 가족애를 지겹도록 그럼에도 너무나도

잘 팔아먹는 아카데미의 전략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패러디와 키취라는 방패로서 비판을 봉쇄하는 교묘함까지.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위선의

죠부 투파키다 *LMDb 4.9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2 Comments
17 oO지온Oo  
정말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영화라서 타인의 평점이 아무리 높아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바뀌질 않더군요.
개인 취향이란 정말 참.. ㅎㅎ
13 리시츠키  
엊그제 봤는데 저는 매우 재밌게 봤습니다.
주연 조연 할거없이 배우들 모두 훌룡했고, 연출과 편집도 눈돌아가게 훌룡했구요.

다만, 인물들의 관계와 사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랄지, 날카로운 비판까지 바란건 아니지만,
이 단순한 서사에 대단히 나이브한 봉합으로 마무리 하면서, 감독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어떤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듯이 폼 잡는게
영 미덥지 못하겠더라구요. 특히 평론가들의 평이 다들 그렇더라구요.
암튼 제생각에는, 정말 이렇게 과대평가 받은 영화는 또 참 오랜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