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홍상수)

영화감상평

<북촌방향>(2011, 홍상수)

4 엑스트라 1 313 0

- 속물근성의 미화 


나의 홍상수에 대한 애정함은 오롯이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기원한다. 사실 홍상수가 쏟아내는 많은 작품들은 이 <돼지가...>의 변주라고 해도 크게 틀림이 없다. <돼지가...>는 인간의 역겹고, 천박하고, 고약한 속물근성을 탁월한 센스와 연출력으로 폭로한다. 그 폭로가 너무나 진실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나 자신, 그러니까 홍상수 자신에 대한 '자폭'과 같은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상수의 '속물근성의 자폭'은 이후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때론 더욱 적나라하게, 때론 은근하게 표출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가 더욱 좁아지고 그래서 옹고집에 세지고 결국에는 자기변명의 삶으로 귀착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인진데, 아쉽게 홍상수도 여기서 예외가 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예외 없이 국외의 영화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것은 홍상수의 영화 방법론에 대한 예찬인 경우가 많고, 여전히 비릿한 냄새를 피우는 인간 속내에 대한 자기 폭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홍상수의 최근 영화들이 얼마나 <돼지가...>에서 점점 탈각해 나가고 있는지는 모르는 듯하다. 


<북촌방향>은 최근 영화라고 하기에는 벌써 만든 지 10년이 넘은 영화지만 여기서도 인간의 속물성에 대한 예리한 자기비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뭐랄까? 어쩌면 '속물근성의 미화'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속물근성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진실성'이 담겨 있기도 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물론 이것이 어쩌면 인간에 대한 보다 정직한 묘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어디 그렇게 속물적이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북촌방향>은 일주일도 안돼서 모든 촬영을 해치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홍상수의 매력은 기실 뿌리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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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34 Cannabiss  
홍상수 영화 괜찮게 보셨나 보군요
전 다 별로였습니다 욕이 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