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감상평

<안드레이 루블료프> - 1966,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미학을 구축한 예술영화 감독을 한 명 꼽는다면, 아마도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54세에 암으로 타계하기 전에 오직 7편의 장편영화를 남겼을 뿐이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75년의 <거울>, 1983년의 <노스탤지아>, 1986년의 <희생>은 마니아나 전문적인 영화인이 아니라면 쉽게 감상하기 어려운 영화 문법을 가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작품 중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편의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1966년의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비교적 쉽게 감상하면서 타르코프스키의 면모를 충분히 체험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철학적,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구원’이라는 매우 붙잡기 힘든 내용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15세기 전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유명한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을 추적한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도 예외는 아니다. 이콘화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와 12명의 사도, 성모 마리아, 성인들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이후 서방의 성화가 세속화된 것에 반해 러시아의 이콘화는 철저히 종교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이콘화에 대한 애정은 매우 각별하여 영화 <희생>에서도 이콘화 도록을 감상하는 장면을 1분 이상 보여준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일반적인 전기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루블료프는 많은 에피소드에서 전면에 등장하기보다는 관찰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기묘하게도 루블료프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오직 루블료프가 어떻게 ‘인간의 구원’을 진심으로 희구하는 위대한 이콘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는지 그의 고민과 체험을 추적할 뿐이다.


이콘화를 그리는 수도사인 루블료프는 권력을 조롱하는 민중들의 광대놀이를 목격하는데 그의 동료 중 한 명이 이를 고발하여 광대가 군인들에 의해 붙잡혀 가게 된다.


루블료프는 저명한 그리스인 이콘화가의 요청으로 그와 결합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들의 질투와 분노를 사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죄인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며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재연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루블료프는 여전히 자신의 신앙심과 예술을 결합시키지 못하여 붓을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 숲에서 벌어지는 이교도들의 축제를 목격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붙잡혀 대들보에 묶이지만 한 여성에 의해서 풀려나게 된다. 다음 날 루블료프는 이교도들이 군인들에 의해 붙잡히고 박해받는 장면을 보게 된다.


루블료프는 교회의 벽화 작업을 맡게 되지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벽은 여전히 흰색으로 덮여있을 뿐이다. 그런 중 그의 다른 동료들이 권력자들의 시기심 때문에 병사들의 습격을 받고 눈이 뽑히게 되는 사건을 전해 듣고 루블료프는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


권력자들의 경쟁과 적대감으로 타타르인들의 침공을 받아 대학살극이 벌어지며 교회는 폐허가 된다. 그 와중에 루블료프는 같은 러시아인에 의해 강간당하려는 한 벙어리 백치 여인을 구하려다 그 러시아 병사를 죽인다.


루블료프는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살인을 속죄하기 위해 침묵 서약을 한다. 그러던 중 루블료프가 강간당하는 것을 구해준 백치 여인은 타타르인의 노리갯감이 되고 그녀 스스로 그들이 주는 투구와 담요를 두르고 그들을 따라간다.


영화의 웅장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권력자를 위한 거대한 종을 만드는 장면이다. 죽은 아버지의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속여 종 만드는 일을 맡은 소년은 정열적으로 종을 제작한다. 루블로프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며 그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마침내 종이 완성된다. 소년은 종이 제대로 만들어졌을지 모르기에 두려움에 떤다. 마침내 종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소년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아무런 비법도 전수받지 못했다고 루블로프에게 털어놓는다. 루블로프는 비로소 입을 열어 그 소년을 위로하고 이콘화를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영화는 무려 8분 동안 루블료프가 남긴 이콘화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마지막 이콘화를 보여주기 위해 3시간가량 루블료프의 지나온 길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타르코프스키에게 이콘화는 교회의 장식물이나 종교적 표현물을 넘어서서 인간의 삶 전체를 속속들이 드러내 인간의 구원이라는 영적인 기원으로 승화시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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