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인 캠피온

영화감상평

<파워 오브 도그> -2021, 제인 캠피온

4 엑스트라 0 239 0

제인 캠피온(Jane Campion) 감독의 2021년 영화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는 아마도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수작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이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수수께끼가 거기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살짝 내비치듯이 "파워 오브 도그"라는 말 자체는 구약성서 시편 22편 20절에서 따온 말이다.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물론 여기서 개는 악의 세력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놀랄만한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코디 스밋 맥피(Kodi Smit-McPhee)가 연기한 피터는 동성애자이다. 그의 모든 면모가 명백하게 이를 드러낸다. 나약하고 섬세하고 여성적인 특성은 전혀 거리낌 없이 표현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냉혈에 가까운 차가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괴롭혀 결국 알코올 중독자에 이르게 한 필(Phil,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을 살해하는 복수의 과정은 관객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정교한 계획으로 진행된다. 그가 얼마나 냉정한 인물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가능하다. 피터는 나약함 속에 숨겨진 칼날 같은 예리함과 단호함을 가지고 있다. 결국 시편의 "내 유일한 것"은 자신의 어머니이며 "개"는 필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피터의 냉정한 복수보다는 필의 고뇌와 좌절이 더 중요하다.


피터가 여성성을 가진 동성애자라면 필은 남성성을 가진 동성애자이다. 그러나 그는 남성적인 문화가 완전히 지배하는 카우보이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단단히 감추고 있다. 필은 동성애자인 피터에게 혐오감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성정체성을 더욱 철저하게 붙들어 맨다. 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삶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내면적인 고뇌로 이끌며,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성정체성은 서서히 피터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전혀 모른 채. 필의 입장에서 보아도 개는 역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개는 악의 세력이기보다는 숨죽여 포효하는 고통의 상징이다.


이는 영화에서 두 번에 걸쳐 보여주는 멀리 보이는 산 언덕을 통해 표현된다. 그 언덕에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림자가 드리워져 포효하는 개의 형상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은 전혀 그것을 보지 못하지만 필만은 그것을 볼 수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 역시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필 이외에 유일하게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피터였다. 이를 통해 그들 사이에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공감대가 드러난다. 이렇게 본다면 "파워 오브 도그"는 단순한 악의 세력이 아니라 갈가리 찢기고 오로지 아픔만으로 간직되는 감정, 욕망, 사랑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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