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보고 헤어질 결심을 거두다

영화감상평

<헤어질 결심>을 보고 헤어질 결심을 거두다

4 엑스트라 0 235 0

이번에도 <아가씨>처럼 왜색풍의 뒤틀린 성속을 시전하면 박찬욱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헤어질 결심>을 보러 갔지만 그 결심을 거두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 번째 살인>의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군산>의 박해일과 <지구 최후의 밤>의 탕웨이의 고품격 연기를 살려내고 맘껏 연출력을 뽐내면서도 결코 불필요한 지나침이 없는 훌륭한 연출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 감독상에 탕웨이-박해일이라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아직 2백만 관객을 넘어서지 못한 이유도 그 '훌륭함' 덕택(?) 인지도 모른다.


"불행" 혹은 탕웨이의 대사처럼 "불쌍한 여인"을 영화가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는데(본래 박찬욱은 '불쌍함'을 잘 묘사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강렬한 복수심이 그의 장기 아니던가!) 그것은 어찌 보면 중국 여인 특유의 단호함이 묻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탕웨이가 부모의 유골 가루를 산에서 박해일에게 뿌리도록 하는 장면은 '불쌍함'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었지만 관객은 탕웨이가 박해일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도록 만들어 감정이입보다는 서스펜스를 창출하고 말았다.


'마음'을 '심장'으로 자동번역기가 오역(?)하는 거라든지, "휴대폰을 아무도 못 찾게 버리라"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대체한 스토리, 그리고 탕웨이가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스스로 잠겨버리는 이야기는 잘 꿰진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그러나 조금은 어긋나고 다소 억지스러운 몇 장면이 뇌리에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상천외한 자살 방법은 실제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점(조금은 흔한 것일지라도 밀려오는 밀물 속으로 계속 걸어서 들어가는 편이 좋았을 성싶다), 박해일의 아내가 자라와 석류를 챙겨서 영화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던 직장 동료와 함께 떠나는 장면(차라리 이 장면은 없는 것이 좋았을 성싶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등장하는 탕웨이의 첫 남편의 모습이... 집에 책 한 권이 보이지 않지만 거실에 빼곡히 들어찬 LP판과 진공관 앰프를 갖추고 말러 교향곡을 즐겨 들으면서 아내를 폭행하는 그런 류의 남성상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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