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함 속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

영화감상평

<레드 리버> - 장대함 속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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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부극이 그렇지는 않지만 서부극하면 떠오르는 분명한 이미지가 있다 - 광활한 하늘 아래 광막한 대지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카우보이들. 이 정석적인, 심하겐 상투적이라고도 할 이미지는 언제나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은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관객에게 역시 장대한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영화 제작자들은 이러한 관객의 심리에 보답하기 위해 역시 장대한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제작자들은 러닝타임 - 스토리의 양의 관계에서 대게 두가지 유형의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첫번째는 영화가 너무 늘어지는 경우고(러닝타임 > 스토리), 두번째는 영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이다. (러닝타임 < 스토리) 혹스의 첫번째 서부극인 <레드 리버>의 경우엔 두번째 실수를 범했다.


<레드 리버>의 스토리상의 구조는 단순하다. 메인플롯을 한줄로 요약해 보자면: 카우보이들이 소 떼를 이끌고 한쪽에서 레드 리버를 건너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정도 되겠다. 여기서 매튜(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테스(조앤 드루)와의 러브라인과, 매튜와 던슨(존 웨인)간의 대립 구도가 서브 플롯으로 끼어있다. 영화는 메인 플롯을 진행시키는데도 급급하다. 내용의 장대함을 매꾸기 위해 '책'이라는 장치를 도입해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 진행되는 영화는 역시 아쉽다. 서브 플롯은 더욱 과관이다. 매튜와 테스가 처음 만났을 때, 테스와 매튜 사이는 날 서있다고 느낄만큼 서먹한 관계였지만 7분후 관객들은 둘이 진한 키스를 하며 결혼을 다짐하는 장면을(!) 보게된다. 사랑은 첫눈에 빠지는 거라고? 영화는 이러한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 장면 하나 없이 - 그러니깐 두 인물의 클로즈업이나 숏 리버스 숏 없이 - 이루어지는 사랑은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비약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매튜와 던슨의 대립 구도는 더욱 가관이다. 둘의 대립 구도는 영화가 끝나기 무려 2분 전에 절정을 이룬다. 필자는 여기서 둘 중 한명이 죽는 비-할리우드적인 엔딩이 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역시 (안 좋은 뜻에서) 할리우드다. 방금까지 죽기 살기로 서로에게 달려들던 둘의 대립은 테스의 총알 한방에 싱겁게 끝나버린다. 여기서 프로이트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어쨌든 '여자'가 '총'을 들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의 조악한 만듬세에 이 얘기는 작가주의적인 해석 보다는 일종의 지적인 농담으로만 들릴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 영화가 터무니 없다고 - 그렇다고 설득력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공로는 이 장대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붕괴해 버리는 스토리 속에서도 이를 해쳐나가는 두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존 웨인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단지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미모 덕분에 러브 라인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런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물론 이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영화에서 웨인은 꽉막힌 아버지/소 떼 주인 역을, 클리프트는 쿨한 아들/카우보이 역을 맡았다. 둘의 배우적 이미지는 이 역할에 딱 들어맞는다. 웨인은 할리우드의 구시대를 상징하는 배우이고, 클리프트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과 함께 할리우드의 신세대를 상징하는 배우이다. 아버지 - 아들, 고용인 - 피고용인, 구세대 - 신세대,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다! 그렇다고 이를 도식적인 해석이라고 치부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이들은 명연기로 이 관계에서의 분위기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서정적인 장면 중 하나는 단연코 테스가 던슨에게 자신과 매튜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테스와 매튜의 러브라인은 자연스럽게 던슨의 과거사와 겹쳐지면서, 던슨이 짓는, 그러니깐 웨인이 짓는 그 특유의 표정은 테스와 매튜의 러브라인을 자연스럽게 '서부적인' 뭉클함으로 승화시킨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여기서 웨인의 캐릭터가 매튜를 용서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뒤에서 또다시 치고 박고 싸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어쨌든 웨인의 연기는 엉성한 영화에서 놀라울 정도로 관객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렇게 해서 앞서 지적한 러브라인의 문제점은 웨인의 명연으로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다. 엔딩 역시 클리프트의 연기로 단점이 어느정도 상쇄가 된다. 클리프트는 쿨한 카우보이이다. 그의 수려한 외모와 멋진 총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말을 복종하면서도 불의를 목격했을 땐 서슴치 않고 행동한다. 그리고 역시나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사랑에 빠진다. 클리프트의 캐릭터의 매력에 엔딩의 갑작스러운 화해는 일종의 면죄부를 얻게 돼, 관객은 도리어 여기서 위트섞인 낭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엔딩의 비약이 너무나 큰 나머지 잘 매꿔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엔딩이기에 이러한 인상 또한 금방 없어진다.


<레드 리버>는 2012년에 실시된 사이트 앤 사운드 투표에서 240위에 선정된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큰 스케일의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인 플롯의 비약은 명료하지만, 스케일의 장대함 속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멋진 연기 덕분에 그러한 인상은 쉽게 잊혀진다. 다만 이야기나 장면들보다는 캐릭터들로 기억될 영화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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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언급한 '서부적인' 뭉클함을 대강 설명해 보자면,

총잡이와 아름다운 여인이 연인 관계가 될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 속에서도 이에 절망하지 않고 수긍해내는 인물들을 보고 느끼는

뭉클함 정도로 생각한다. 필자는 포드의 <황야의 결투>의 엔딩에서 이를 절실히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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