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평 - 미치광이 삐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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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평 - 미치광이 삐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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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삐에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외자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외자들>은 두 명의 청년이 한 명의 여자(안나 카리나)를 꼬시려 범죄를 저지르게 되며 겪는 모험담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의 끝에서 고다르는 직접 이런 말을 한다. "곧 개봉될 영화로 보시게 될 겁니다.... 시네마스코프와 테크니컬러로 만든.... 오딜과 프란츠의 열대 모험 이야기를요". 이 둘, 그러니까 오딜과 프란츠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 이 영화는 즐겁고 가벼운 분위기의, 할리우드의 누아르 장르를 패러디한 범죄 영화이다. 그가 <국외자들> 촬영 당시 <미치광이 삐에로>의 기획을 공개하며 한 말은 - "그보다 훨씬 어린 여자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 그녀는 범죄 조직과 연루되어 있고, 이것은 그들을 모험으로 이끈다" - <미치광이 삐에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영화일 거라 사람들을 예상하게 했다. 하지만 <미치광이 삐에로>는 염세적이고 파괴적이고 고독한 분위기의, 그전의 고다르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나는 이 차이를 중점적으로 분석해 영화를 설명하려 한다. 


<미치광이 삐에로>의 기획은 배우 섭외에서부터 틀어졌다. 고다르는 배우 섭외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했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나이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리처드 버턴(25년생)을 남주로, 내 아내인 안나 카리나(40년생)를 여주로 섭외하고 싶네요. 우린 영어로 영화를 찍을 것입니다. 만약 버턴이 불가능하다면, 미셸 피콜리(25년생)를 생각중인데, 그렇다면 카리나는 여주역을 맡지 못할 겁니다. 그 둘은 너무나 "정상적인" 커플로 보이거든요. 그 경우엔 매우 어린 여배우가 필요할 텐데, 실비 바르탕(44년생)을 생각 중입니다". 하지만 고다르는 버턴도, 피콜리도, 바르탕도 섭외하지 못한다. 그는 결국 스타배우 장-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와 작업하게 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안나와 벨몽도를 캐스팅함으로써 바뀌었습니다. 저는 욜로에 관한 영화를 찍으려 했습니다. 롤리타나 암캐(장 르누아르 감독) 같은 커플이 아니라. 저는 최후의 로맨틱 커플, 『신엘로이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마지막 후손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미치광이 삐에로>는 고다르가 처음으로 계획했던, 와이트의 소설 『집착』의 각색 본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책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 (고다르가 벨몽도에게 한 말이다)가 되어갔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 외적인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영화가 제작된 1965년엔 고다르에게 큰 영향을 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베트남전에서의 미국의 참전이다. 고다르는 할리우드와 애증의 관계에 있다. <네 멋대로 해라>, <국외자들>, <알파빌>에서 볼 수 있듯 고다르는 할리우드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동시에 마오주의자였으며, 후에는 지가 베르토프 그룹에서 영화 활동을 함으로써 한때 상업영화와는 결별을 택하기도 한 급진적인 인물이다. 베트남전은 그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주었다. <네 멋대로 해라>, <국외자들>에서 보여졌던 ‘멋’은 <미치광이 삐에로>에서 한 편의 연극을 통해 우스운 것으로 풍자된다. (연극은 “마오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고다르는 더 이상 할리우드를 패러디할 만큼의 애정을 품고 있지 않게 됐다. 고다르에게 큰 영향을 준 두 번째 사건은 안나 카리나와의 이혼이다. 그들은 영화가 촬영 중이던 5월과 6월 사이에 이혼했다. 고다르는 당초에 로맨틱한 영화를 생각했지만, 그의 뮤즈였던 카리나와의 결별은 사랑에 대한 회의감 또한 남겨 놓았다.


영화를 찍는 동안 고다르가 겪은 개인적인, 영화적인, 사상적인 혼란은 그의 인터뷰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다른 영화를 찍을 때면 전 히치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신한테 던졌습니다. 그러나 <미치광이 삐에로>를 찍을 땐 그가 ‘네가 알아서 해라’ 의외의 답변은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미치광이 삐에로>를 찍기 일주일 전, 저는 완전히 겁에 질렸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죠. 책에 따라서, 우린 촬영지들을 모두 선정했고 사람들을 고용했죠 ... 그리고 난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당초의 계획들이 모두 엎어진 그는 무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치광이 삐에로>는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다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 영화가 되었다. 고다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후에 이어질 질문은 당연하게도, 고다르가 창조해낸 새로운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일 거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또다시 그의 말을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시나리오와 주제는 ... 발타자르 클라즈가 『미지의 걸작』에서 하던 일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발타자르 클라즈는 발자크의 소설 『절대의 탐구』에서 등장하는, 자연의 비밀을 밝히려는 연금술사로 결국은 아내의 죽음, 파산, 사회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는 인물이다. 『미지의 걸작』은 자신의 그린 그림이 미술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믿는 화가가 작품에 대한 친구의 비판을 듣고 자살한다는 내용의 또 다른 발자크의 책이다. 그러니 “발타자르 클라즈가 『미지의 걸작』에서 하던 일”은 독선적인 창작가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얘기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로는 펠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고다르는 펠리니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펠리니가 창작의 영감을 그의 과거에서 찾았다면 고다르는 현재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기에 펠리니의 영화는 과거 진행형이고 고다르의 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 이 말인즉슨 고다르의 영화에서 관객은 연기된(재현된)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아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직접 ’느낀‘ 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미치광이 삐에로>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영화는 전쟁과 같다. 그 안에는 사랑, 증오, 액션, 폭력, 그리고 죽음이 있다. 한마디로, 영화는 감정이다.” 기존의 극 영화에서 관객은 진행된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에 ‘공감’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반면에 그는 진행 ‘중인‘ 이야기 속에 관객을 던져 놓고, 그 감정을 ’느낄‘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치광이 삐에로>는 공감(이해)하는 영화가 아닌 느끼는 영화이다. 말 그대로 새로운 영화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그것을 해냈는가가 다음 질문이다. 여기서부턴 텍스트로는 의미 전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설명을 하겠다. 고다르는 기존 영화의 내러티브를 해체했다. 그렇다고 <지난해 마리앙바드> 같은 영화를 떠올려선 안 된다. 차이점은 내러티브가 선형적으로 존재는 하지만 점프 컷, 제4의 벽을 깨는 연출들을 통해 직접 방해를 한다는 점이다. 브레히트 소격 효과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선 소격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러티브와의 소격은 일어나지만, 그 ’감정’과의 소격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의 극 영화에서 소격 효과가 일어나면 관객과 내러티브와의 소격이 일어나 극의 감정선과의 소격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내러티브를 해체한 <미치광이 삐에로>에서의 그 ‘소격 효과’는 오히려 관객의 ‘포용’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고다르는 콜라주를 사용했다. 그는 자기의 머릿속에 떠오른 예술 작품들을 - 시에서부터 음악까지, 고전 예술에서부터 팝 아트까지 - 그의 영화와 콜라주 했다. 이도 앞서 말한 소격 효과의 연장선에 있지만, 콜라주는 더 능동적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대본 없는 즉흥적인 촬영과 소격 효과로 내러티브를 해체한 후에 콜라주를 통해 영화를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 채우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라는,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의 실험은 고다르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 예술의 본질적인 한계를 시험하며 고다르는 영화계의 벨라스케즈가, 조이스가 되려고 했다. 단순한 감정의 재현이 아닌, 감정의 체험되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시도였지만 그는 성공했고, <미치광이 삐에로>라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과 놀라운 형식적 실험을 겸비한 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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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S 한움  
정성스런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 이 영화 미뤄두었는데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