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를 유랑하는 샤미센의 비가 aka. Ballad of Orin

영화감상평

군국주의를 유랑하는 샤미센의 비가 <はなれ瞽女おりん, 1977> aka. Ballad of Orin

13 리시츠키 0 26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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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결말을 포함합니다 * * *
 












USA                        Ballad of Orin
USA (alternative title)     Banished
USA (alternative title)     Melody in Gray

Directed by Masahiro Shinoda    
Writers        Keiji Hasebe(screenplay) Tsutomu Minakami(author-story) Masahiro Shinoda(screenplay)
Cinematography by Kazuo Miyagawa    
Music by Tôru Takemitsu    
Stars        Shima Iwashita Yoshio Harada



<하나레 고제 오린>은, 일본어 명사형인 듯 한 はなれ가 말하듯, 오린의 유랑을 그린다. 이는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이고, 바꿔 말하면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고제 공동체 (여성들)와 자연에서 멀어지고,

군국주의 공동체 (남성들)와 문명에 가까워진, 즉, 의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의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공간으로의

이행을 말한다.

내러티브는 오린의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오가며, 그녀와 그녀의 연인의 험난한 여정이 20세기초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전개된다. 6세에 버려진 오린의 고제 공동체의 수련 시절에서, 21세에 고제 공동체로부터 떠나는 오린의 유랑은, 전전戰前의

평화로운 시절에서, 군국주의에서 침략주의로 발화하는 시기와 명확히 일치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개인의 삶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공간의 미쟝센과 몽타주로서 서늘하게 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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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의 오프닝, 6세에 엄마에게 버려진 오린이 버려진 폐가에 앉아있다. 걱정하는 마을사람들 사이로, 오린의 독백이 이어진다.

"난 부모를 본 적이 없어요" 바로 이 쇼트의 카메라의 시점은 기이한데, 그것은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점쇼트이다.

그러나 그 시점이 누군가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플래시백 속 실내의 마을사람 누군가의 시점도 아니며, 어린시절부터 메쿠라인

오린의 물리적 시점도 아니다. 어쩌면 시제를 달리해서, 영화 후반부 오린이 알던 모든 사람이 죽고 홀로 남겨진 그녀가 고향을

찾아와 바라본, 미래시제의 그녀의 심리적 시점이거나, 오린의 성장과 불행의 순간에 언제나 나타나는 검은고양이의 시점으로

보는게 오히려 타당할수도 있다. 그 시점 속의 오린의 고향은, 마치 감옥과 같은 완전한 어둠의 실내로서, 그곳에서 실외로 난 창(?)을

통해 바라본 롱렌즈의 바깥은, 온통 거대한 파도 혹은 거대한 해일이 실내를 집어삼킬듯 일렁인다. 따라서, 이 익명의 시점과

오린의 보이스오버가 충돌하는 이 기이한 쇼트를 통해, 오린의 훗날의 비극은 예비된다.

다시 컷이 바뀌고, 오린의 독백은 계속된다 "제 고향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어요" 실외에서 부감으로 포착된 그녀의 마을은,

전경의 앙상한 철조망같은 나무가지들과 프레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후경의 거친 파도의 중간에 갖혀있다. 아름다운

고향이었다고 믿고싶은, 메쿠라인 그녀가 고향을 볼 수 없다는 건, 상상만으로만 볼 수 있다는 건, 다행인가 불행인가.

보이지 않기에 불행하고, 보인다해도 그녀가 믿는 고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불행일 것이다. 이와같은 이중의 불행은,

상상(믿음)과 현실의 어긋남을 근거로 하는데, 이는 메쿠라인 오린의 현실적 조건만을 말하는게 아닐 것이다. 이는 당대를

사는 일본 사람들의 믿음(상상), 즉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국뽕과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그들의 믿음(상상)이

현실의 침략주의를 통해 어떻게 모두의 불행으로 나타나는지를 영화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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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과거 시제로 커팅되면, 21세에 고제 공동체에서 독립한 오린이 첫 연주를 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군에 징집 되는 어느 부자집 아들의 환송회장이다. 21세 성인이 된 오린의 세상밖으로의 첫 발을 내딪는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침략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거대한 저택의 입구에는 일장기와 욱일기가 선명하게 펄럭인다. 국뽕이 휘날리는 가운데,

방 안에는 일장기와 히로히토의 사진을 걸어놓고 마을 사람들은 그게 애국인양 징집되는 사내를 축하한다. 오린이 샤미센을

천진난만하게 연주를 하는 가운데, 군복을 입은 남자의 시선과 양복을 입은 남자의 시선, 전통복장을 입은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포위한다. 말하자면 군국주의, 명치유신, 그리고 가부장제라는 전범들이 그녀를 둥글게 패닝하는 것이다. 패닝은 정확히

일장기 앞에서 멈춘다. 그녀의 가장 큰 불행은 그녀가 메쿠라인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 전쟁으로 휘말려들어갈수밖에 없는

시대적 운명에 있는 것이다 (물론 전전戰前의 일본 사회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한 사회였다는 말이 아니다. 내러티브 구조가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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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과거시제, 6세 때 입양된 오린의 고제 공동체에서의 생활과 성장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묘사된다. (물론 이곳에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기어들어오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이 고양이의 존재는 훗날 오린의 성장과 불행을 암시하는 다층적인

의미로 작용하게 된다). 오린이 고제가 되는 과정은 계절의 바뀜으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그녀의 심리와

정서를 생생한 자연의 모습으로 비유하는 시퀀스의 편집은 주목할만하다. 감독의 전작인 <벗나무 아래, 1975>의 너무나도

엉성한 연출과 너무나도 앙상한 편집과 비교되는, 빠르게 전개되는 이 시퀀스의 아름다운 몽타주와 몽환적인 외재음악은,  

오린의 성장마저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고, 전전의 고제 무리들과 마을사람들 간 평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서사의 전개에도

더없이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러한 몽타주가 오린의 성장과 관련해, 너무나 의도적이고 노골적이고 뻔한 상징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영화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관되게 삽입된 이러한 몽타주 컷들로 인해, 영화는 단단하게 구조화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오린의

감정과 시대적 함의마저 풍부하게 포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그 속의 인물들의 감정마저 놓치는 법이

없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시간가는줄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감독의 대부분의 지루한 전작들과도 비교되는

<오린의 발라드, 1977>는, <마른 꽃, 1964>과 함께, 감독 자신에게조차 새로운 경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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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시퀀스에는, 마을 사람들의 집과 집을 이동하는 고제 무리들의 이동을 무척 많이 할애해서 보여준다. 오린의 감정을

포착할 때 접사로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의 이동과 연주 장면은 매우 양식적으로 연출된다. 그들은 롱샷 혹은 풀샷으로

수평으로 공간을 횡단하고, 연주장면에서는 평면적인 와이드 샷이 붙는다. 숏은 90도 회전해서 붙는다. 더구나 1.33:1의 프레임

사이즈는 이러한 양식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앵글이나 렌즈의 변화로서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을 과장하는 법이 없기에, 이러한

평면적인 샷들의 연속은 그 자체의 리듬으로 내적인 유머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그곳 공간의 정서와 관계를 과장없이 전달되게

된다.

이러한 양식미로 표출되는 공간의 정서는, 영화 중반 이후 오린이 고난을 겪게되는 도시 공간과 극명하게 대비하게 한다. 고제

무리들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데, 그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역시 모두 가난한 자들이다. 고제들의 연주와 노래는, 적적한

삶을 노래로서 위무하여 쌀 한봉지를 받고, 임종 직전의 노인 앞에서 노래르 불러주어 흉년이라 쌀 대신 짚신을 받고, 마을 회관의

모인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 식사를 대접받는다. 여기에는 여성의 대상화나, 어떤 남성적 시선도 없다.고제들은 단지 동냥(보시)를

위해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인이면서 동시에 마을 사람들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맨발에

짚신을 신고 끊임없이 눈발을 걸어도 그들은 발시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산과 들 그리고 계절과 자연을 이동하는 고제 무리들의

이동을 통해, 그곳의 공간은 침략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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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 공동체의 동료인 츠기코가 무리에서 쫓겨난다. 연애는 공동체 윤리규범의 위반이다. 수녀원처럼 엄격한 이 규범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예인으로서의 그들 자신의 존재 규범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이기도 하다. 이 규범과

성적 열망이 부딪힐 때, 오린 역시 독립을 택한다. 혹은 쫓겨난다. 이는 더이상 공동체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는 오린이 일생의 연인 '센조 츠루가와'을 만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츠기코가 건널목을 건너는 장면의 공간의 미쟝센은, 그녀의 운이 전환하는 교차점이 된다. 롱샷의 프레임 한 가운데 그녀는 철로

앞에 조그맣게 서있고, 그 앞으로 거대한 기차가 화면의 대부분을 가리며 통과한다. 앵글은 90도 이동하고, 그녀는 철도 건널목을

횡단한다. 이로서 그녀는 고제 공동체(여성들)과 평화와 자연의 공간에서, 군국주의(남성들)과 전쟁과 문명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기차는 군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실어나른다. 기차는 침략의 발판이다.

다음 장면에서 바로, 그녀는 군인들을 맞닿들인다. 바로 전 장면의 씬이 그대로 반복된다. 기차는 군인으로 치환된다. 롱샷의 프레임

구석에서 그녀는 후경에서부터 걸어오고, 전경의 거대한 군인들이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 다시 역샷으로 전환되어, 전경의 그녀를

향해 군인들은 노골적인 구도로서 수직강하한다. 20세기 <기차의 도착>. 이제는 철도 건널목조차 없다. 다시 샷은 90도 회전하고,

그녀는 군인들을 피하려다 넘어진다. 프레임을 가득 채운 거대한 군인무리들은 마치 기차가 그녀를 유린하듯 수평으로 횡단한다.

츠기코는 직사각형의 프레임에 완전히 갖힌다. 철도가 놓인다는 것은 물자와 군인들이 이동된다는 뜻이며, 자본주의와 침략주의가

이동된다는 뜻이다. 이제 도시의 공간은 군인들이 점유한 공간이 된다. 이처럼 대단히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공간의 전환은, 그녀의

삶도 사랑도 자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된다는 것을 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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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몸을 내주어야했던 오린의 과거 이야기는, 사내의 트라우마로 연결된다. 현재시점과 오린의 과거시점이 교차되는

가운데, 오린의 보이스오버는 사내의 과거시점으로 전환된다. 그의 홀어미 역시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했던 그의 불우했던

트라우마가 오린의 과거와 공명하는 것이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사내는 오린과 잠시 헤어지게 되고, 다시 만난 둘은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들은 폭력의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가 정착하기로 한다. 오린과 사내는 고향으로 가면 안전하고 행복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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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장면의 숏을 통해 둘의 도피는 다시 한번 좌절된다. 폭우 속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내와 오린 앞으로, 한 무리의

패잔병들이 화면가득 수평으로 그들을 지나친다. 그리고 씬이 전환되는 첫 숏의 장면은, 거대한 기차의 바퀴가 화면 가득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달린다. 다음 숏은, 오린과 사내가 달구지를 끌고 마을로 걸어가는 장면이 붙는다. 말하자면 군인들의 이동은 기차의

이동으로 바뀌는 것이고, 거대한 기차 바퀴의 클로즈업과 굉음은, 군국주의가 오린의 어린 시절 고향마저 침범하고, 나아가 오린과

사내를 뒤쫓는다는 것이다. 감독은 설명하나 없이, 단 몇 개의 쇼트로, 공간의 변화와 인물의 운명까지 암시한다.

마침내 오린과 사내는, 오린의 어린 시절 고향의 바다 앞에 도착한다. 사내는 오린에게, 모든 바다의 파도 소리는 똑같은데, 어떻게

고향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오린은 여전히 자신은 고향의 파도 소리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린이 듣는건, 어릴적 파도 소리가

아니라, 칼을 차고 그들을 추적하는 경찰들의 쇠소리와 발자국 소리였다 (사내의 플래시백에서 드러난 트라우마에서 그의 어깨를

치고간 순사와 겹쳐진다).

이는, 어촌마을 고향의 풍경과 파도 소리는 그대로이되, 그 공간의 성격은 전혀 다르게 변질된 것을 말해주고있다. 오린과 사내가

체포된 것은 그들을 쫓는 경찰과 군인에 의해서가 아니다. 바로 어린시절 고아인 오린을 걱정하던 마을 사람의 신고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신고한 마을 사람은, 고아이자 메쿠라인 오린과 가난한 탈영병인 사내보다야, 처지가 낫겠지만, 그렇다해도 오린과 사내보다

그리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하층민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린과 사내에게 가해자가 된다. 믿었던, 의지할 곳은 고향밖에 없었던 오린에게,

그 고향 사람이 바로 신고자였다는 건 시대의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말에서 오린이 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군국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동안 국뽕과 집단주의를 세뇌받고,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조차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전쟁협력자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도피하는 자들을 사냥케 하는 것, 그리고

 그들조차 침략주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된다는 것. 거대한 시스템은 건재하고, 가난한 자들만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혹은 늙어버리거나.

그렇게 변해버린 고향, 고향은 더이상 고향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 간의 정과 우애는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모든 가치관과 삶의 방식들이

변해버린,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더이상 이 공간에서 살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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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 공동체 숙소를 찾아간 오린은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아무 기척도 없다. 감옥에서 사내가 일본 헌병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인서트 된다 (헌병대장의 배우가 꼭 미시마 유키오를 닮았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거 같다). 숙소로 들어가지만 아무도 없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 오린은 그녀들을 애도하듯 마지막 연주를 한다. 이때 오린의 모습은 어둠

속에 묻혀있는데, 자신마저 곧 사라질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예전과 다름없는 논밭을 홀로 수평으로 이동한다, 익.롱샷. 이어지는 샷,

오린이 텅빈 마을로 프레임-인 한다. 옷은 다 헤지고, 오린은 넋이 나간듯 걷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거 같다. 후경에는 '짙푸르게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힌 산'이 보인다. 이제 오린의 행방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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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검은 프레임에서 카메라가 트랙-아웃하면, 오른쪽 프레임에 토지 측량 기계가 우뚝 서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철도

공무원들이 걸어나온다. 이어지는 숏은, 오린이 죽으러 간 '짙푸르게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힌 산', 그곳마저 철도 터널 공사로

진압당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군국주의라는 검은 프레임, 그리고 오린이 죽은 산, 그곳을 기차가 종단한다는 것.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진압당한, 완전한 절망. 절망의 공간화. 죽음의 공간(들). 군국주의는 기차로 치환되고 모든 공간은 침탈당한다. 그리고

감독은 애도한다. 오린의 고향 바다에 조용히 해가 붉게 진다. 그리고 죽은자들의 어두운 세상, 곧게 솟은 갈대밭 위로 처연한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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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일본의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일본의 60년대 정치담론 속에서 이야기 될 수 밖에 없는데, 시노다 마사히로의

60년대 영화들 역시 그러하다. <메마른 호수, 64>는 가장 직접적인 투쟁을 그렸고, <암살, 64>과 <사무라이 스파이, 65>에서는 시대극을

통해 시스템에 대한 의심과 전복을 알레고리화 했다면, <마른 꽃, 64>에서는 야쿠자를 통해 당대에 대한 개인의 가치판단의 실종과 허무를

그렸다. 영화 결말에서 주인공이 늘 죽는다. 비극이되, (다른 감독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영화 밖에서는 여전히

투쟁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린의 발라드, 1977>의 절망적인 엔딩은 전혀 다른 맥락을 반영한다. 70년대초 이후 투쟁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다. 오린이 죽은 산을,

측량하여 기차길을 놓는 철도공무원들의 쇼트는, 이제는 완전히 진압당한 60년대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트들, 잔잔한 바다

아래로 붉게 지는 해, 죽은자들의 어두운 하늘 위로 떠있는 달은, 어떤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말하고 있다. *LMDb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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