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냥의 단도와 낭인 그리고

영화감상평

백만냥의 단도와 낭인 그리고 <고우치야마소슌, 河内山宗俊,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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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밤 새워 마신 널부러진 스포일러들과 꺾여진 성냥개비들













야마나카 사다오



무언가 잃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개입하고 이를 통해 당대의 사회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고우치야마 소슌 36>은

<백만냥의 항아리 35>와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그러나 <항아리>가 서민들 간의 우의와 낙천성의 긍정적 결말을 보여주었다면,

<쇼슌>은 서민들과 지배계급 간의 모략과 긴장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 그 정조와 결말은 판이하게 달리한다.

오나미 (하라 세츠코)의 동생인 히로가 지배계급의 보물인 단도를 홈치는데서 플롯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는 <항아리>에서처럼

우연으로서 잃어버린게 아니라, 사춘기 소년의 철없는 행동이긴 하나, 의도적인 절도이고 히로는 그 태도에 있어 아무 거리낌이 없다.

그 절도품은 쇼군의 하사품이다. 이 절도 행위로부터, 플롯은 히로를 돕는 서민 집단과 이들에 적대적인 지배 집단이 교차하며

서사가 진행된다. 그러므로써 영화는 정치적 텍스트로 자리메김 하고, 결말에서의 비참한 죽음과 탈출은 불가피하게된다.

영화 속 서민들은 모두 가난한 자들이고, 이들를 착취하는 모리타 두목(작은 영주?)가 있고, 그 정점에 쇼군이 있다. 그 일사불란한

지배체제 속에, 영주들은 서민들을 갈취하고, 여자들을 사고판다. 따라서 히로의 절도는, 폭력적이고 부도덕한 그 시대의 정치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된다. 주요인물인 땡중 쇼슌과 낭인 사무라이 가네코는 히로의 절도를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히로의 목숨과 누나(하라세츠코)의 몸값인 600냥 혹은 인신매매를 위해 싸운다. 말하자면, 도덕이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조건이

문제인 것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재밌는건, 사무라이라는 존재 혹은 그들의 정체성이 시대의 요구와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낭인이 되어버린 사무라이 가네코는, 그래서 영화 속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항아리>의 탄게 사젠처럼

가네코 역시, 섬길 주인도 없고 전쟁도 없는 평화시대에 그저 생활인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스레 서민들과 함께

시장판에서 생활하며 그들과 동화된다. 실은 사랑 때문에. 그러므로써 그는, 그의 정치적 역할인 막부 체제를 위한 칼에서,

서민들을 위한 칼로서 자신의 역할 역시 바뀌게 된다. 말하자면 그의 삶의 조건이 바뀌자, 그의 태도 역시 바뀌는 것이다.

땡중 고치야마 쇼슌 역시, 낭인 사무라이 가네코와 함께 반영웅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체제 수호의 앞장이인데 반해, 쇼슌은 그러한 역할에서 완전히 비껴간 인물이다. 사기꾼을 사기치는 타짜이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호인이며, 생활 능력은 전혀 없으면서도 대책없이 호탕한 술고래이자, 내일은 없는 오늘만 사는 한량이자 보헤미안이다.

그의 이러한 성정은 핍박받는 하라 세츠코를 위해 다이묘의 금을 사기치기에 이르고, 그 역시 필연적으로 체제에 의해 죽게된다.

말하자면 그 역시 땡중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승려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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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한량 예찬!!, 보헤미안 예찬!!, 혹은 속인(俗人) 예찬!!한다는 듯, 쇼슌과 낭인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 중반까지 내내

술을 마신다. 방탕한 호탕한 그들의 술마시기는 체제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비생산적 행위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서민들

간의 우정과 연대를 만들고, 나아가 체제에 구멍을 만들는 저항이 된다. 쇼슌과 낭인은, <항아리>의 주인공들과 같이, 본디

호방하지만 허세 가득한 정많고 낙천적인 인물들인데, 바로 그러한 성격 때문에 그들은 체제의 모순과 충돌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필연적인것이 된다. 그리고 쇼군의 보물인 단도를 홈친 히로는, 서민들의 싸구려 단도로서 모리타

두목을 죽이고 (단 두 컷의 간접화법으로 표현된다), 누나를 애타게 찾아 뛰어가며 영화는 끝이난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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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히로가 도망치는 마지막 쇼트의 미장센은 상당히 기이하면서도 비관적이다. 클라이막스에서의 원인과 목적이 누나(하라 세츠코)를

찾는 것이었음에도, 감독은 마지막 쇼트에서 누나와 재회하는 장면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누나는 상징적으로 죽은 셈이 된다.

마지막 쇼트 다음에 붙을 숏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즉 생략편집이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오히려

누나의 생사는 더더욱 미궁 속에 빠지는 것이 된다. 결말을 알려주지 않음으로서 비정함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미장센으로 나타난 히로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다. 쇼슌과 낭인의 희생을 통해 겨우 탈출한 그는, 프레임 왼쪽에서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프레임-인하고, 단렌즈의 원근감이 만들어낸 텅 빈 소실점을 향해 다시 절박하게 뛰어간다. 더구나 앵글은 부감이다. 시간도 공간도

알 수 없는 무감각하고 침울한 하늘 아래, 육중한 판자집들이 히로의 양 옆에 프레임 가득 무정하게 서 있고, 사람들은 모두 증발된듯

인기척조차 없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육중한 미로에 빠진듯, 그 좁다란 길을 따라 히로는 누나가 납치된 사가미 여관을 향해 앞으로 뛰어가며,

외화면에서는 모리타 두목의 부하들이 뒤를 쫓는다. 말하자면, 이러한 미장센으로부터, 죽을 운명으로부터, 히로는 간절히 도망친다.

그러나 누나의 생사도 알 길이 없듯, 히로의 생사 역시 알 길이 없다. 감독은 여기서 영화를 끝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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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쇼트의 이러한 생략편집은, <항아리>에 이어 <소슌>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영화의 거의 매 씬의 서사에서 결말은

생략된다. 그리고 다음 씬에서의 쳣 쇼트는 앞서의 생략된 쇼트와 충돌을 일으키며, 웃음과 불안을 만들어낸다. 내용을 생략함으로써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리타 두목의 부하 우시는 소슌과 사기 장기를 두지만, 소슌은 속아주는 척하며 되려 큰 돈을 따는 장면은 생략된다. 그리고

다음 씬의 첫 쇼트는 우시가 두목에게 혼나는 숏이 붙는다. 히로가 소슌과 술을 마시다, 오랜만에 게이샤가 된 어릴적 동네 친구 오미츠를

만나고 함께 도망치는 장면은 생략되고, 다음 씬에서 낭인 가네코는 두목의 부하에게 그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몇 개의 씬이 전개된 이후,

히로와 게이샤는 어느새 강둑에 와서 서로의 안부를 걱정한다. 영화는 줄곳 타이트한 리듬의 밀도 높은 숏으로 전개되지만, 이 씬의 쇼트들은

대단히 서정적인 몽타쥬로 그려낸다. 그리고 동반자살하는 숏은 간접화법으로만 보여진다.

소위 문법이라 일컬어지는 헐리우드 고전문법이 아직 이입이 안됐는지, 감독은 되려 창의적인 연출과 편집으로서 자신만의 문법과

리듬을 창안해낸다. 가능하면 대부분의 고전문법을 거스르는 방법으로서. 씬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기-서-결에서 결이 생략되는걸

넘어, 씬의 결이 생략됨과 동시에 다음 씬의 기 마저 생략되고 바로 중간부터의 스토리를 이어붙인다. 당연히 설정샷은 무시되고,

씬과 씬 사이의 간극은 순간적으로 접합된다. 이로써 헐리우드 고전문법이 지향하는 시공간의 일치나 연속성은 감독에 의해 새롭게

수정된다. 더구나 씬을 구성하는 규격화된 숏의 사이즈는 일관되게 무시되고, 고전문법의 핵심인 180도 가상선은 수시로 넘나든다.

숏과 숏의 봉합은 거칠게 툭툭 끊어지고, 심지어는 인물의 대사가 끊나기도 전에 숏은 종결된다. 그럼에도 감독은, 인물들의 감정적

반응은 놓치지 않고 드라마를 쌓아간다. 서사의 혼란은 커녕, 속도감과 리듬감만 증가한다.

영화 초반, "달짝 사케집"을 운영하는 오나미(하라 세츠코)를 둘러싼 고치야마 소슌과 낭인 사무라이 가네코의 삼각관계 시퀀스는,

마스터샷과 커버리지만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숏의 배치이지만, 감독 특유의 거친 편집과 리듬으로서 상반되지만 유사한 두 사내를

유머러스하게 잘 보여주고있다. 수 개의 쇼트들로 구성된 시퀀스이지만, 중요한 쇼트들만 임의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낭인 가네코와

땡중 쇼슌 둘 다 오나미를 짝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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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낭인 가네코가 사케집에 수금하러와서 오나미를 만나고 간다. 투샷. 객관적샷. 2. 오나미의 시선은 소슌을 향한다. 원샷. 미디엄샷.

시점샷은 생략된다. 이 샷을 통해, 오나미는 가네코보다 소슌을 더 좋아한다는게 밝혀진다. 가네코는 오나미에게 영화 내내 한번도

이런 시선을 받아본적이 없다. 3. 소슌이 입장한다. 객관적샷. 풀샷. 4. 소슌이 시선은 오나미를 향한다. 원샷. 미디엄샷. 샷/역샷의

구조는 아니지만, 소슌을 단독샷으로 잡아 그의 마음을 전한다. 5. 소슌과 오나미의 투샷이지만, 소슌의 시선은 담보된다. 6. 카메라는

180가상선을 넘어 전경의 소슌과 오나미의 투샷을 프레이밍하고, 가네코가 중경에서  프레임-인 한다. 쓰리샷. 질투를 느낀 가네코는

소슌에게 시비를 건다. 7. 다시 카메라는 제자리로 오고 객관적샷. 대결을 위해 가네코와 소슌은 왼쪽으로 프레임-아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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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장 뒷골목으로 가네코와 소슌이 왼쪽으로부터 프레임-인한다. 롱샷. 9. 가네코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하자 동시에 소슌은 대결 대신

잘린 나무에 걸터 앉으며 그를 오히려 걱정한다. 10. 가네코는 칼을 뽑으며 또 넘어진다. 11. 오나미가 달려온다. 12. 가네코가 다시 칼을

뽑자, 오나미의 손가락이 살짝 베인다. 바스트샷. 13. 소슌의 단독샷. 바스트샷. 감독은 숏과 숏의 배치를 통해 계속해서 소슌과 오나미를

연결시켜 준다. 14. 싸움은 중지된다. 풀샷. 15. 달짝 사케집. 3샷. 가네코와 소슌은 술친구가 된다. 이 샷을 통해, 훗날 가네코는 죽고,

소슌도 죽고, 오나미는 실종된다.

허세의 가네코와 점잖은 소슌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가운데, 감독은 미장센과 편집으로서 소슌과 오나미를 은밀히 연결시켜주고 있다.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철 지난 총잡이처럼, 가네코는 짝다리로 인해 칼싸움조차 힘들고, 되레 쇼슌이 점잖게 그를 걱정할

지경이다. 사무라이의 본령인 전투와 주군에 대한 충성을, 감독은 이처럼 코믹하게 전복시키는 것이다. 소슌이 칼뽑는 솜씨를 칭찬하자,

가네코는 "석달 전에 사서 오늘 처음 뽑아본 칼"이라면서 스스로를 희화화한다. 그러나 가네코는 클라이막스에서,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서민들의 편에 서서 그의 전투본능을 다시 회복한다. 가네코와 소슌의 사랑 싸움은, 클라이막스에서 지배권력과의 싸움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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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이 전환되는, 누나가 600냥에 팔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리듬은 매우 이례적이다. 경건한 외재음악이 흘러나오고 이미지의

몽타주만으로 누나의 감정을 그려낸다. 절제된 숏들이 이어지고,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꼬마가 (인정종이) 풍선을 사러온다. 누나의

접사가 붙고, 카메라는 꼬마를 따라 눈 내리는 골목을 조용히 관조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이미지만으로 그녀의 감정을 말해주고있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그녀의 내면을 보게되는, 언어 너머의, 시네마의 순간이다.

이후 영화는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치닫는다. 결말에서의 싸움은 생략없이 담겨진다. 선한 자는 모두 죽고, 그렇게 역사는 흘러간다.

걸작 *LMDb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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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omments
20 umma55  
감탄스러운 글입니다!!! 물론 감탄스러운 영화고요.
13 리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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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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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리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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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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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리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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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리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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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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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리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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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에릭카트먼  
역시나 멋진 분석 글입니다
엄청 인상깊은 작품이셨나 보네요 또 9.8 ㄷㄷ

저는 엔딩 때문인지 <인정 종이풍선>의 프리퀄(?) 느낌도 나던데 ㅎㅎ
그나저나 세츠코 누님 정말 귀엽구요 ㅠㅠㅠㅠ

ps1. 그런데 혼자 영자막으로 좋은 작품 감상하지 마시고 보셨으면 번역을 해서 다함께 볼 수 있게 해주셔야죠!!! ㅋㅋㅋ

ps2. 야마나카 사다오 순위 놀이 - 항아리 >= 종이풍선 > 소슌 ㅋㅋ
20 umma55  
전 첫 정(?)이라 그런지 풍선>항아리>소슌^^
세 편 다 우열을 가리기가 민망할 정도죠.
13 리시츠키  
제가 말한 "좋은 소식"을 엄마님이 직접 해결해주셨네요^^

보통 영화가 훌룡하면 나중에 다시한번 봐야지, 하다가, 그러고 마는데,
<소슌>은 며칠전에 보고, 담날 또 보고, 다담날 또 봤습니다 ㅎㅎ

하라세츠코 누님은 영화 속에서 귀여움이 그냥 폭발하던데요ㅋㅋ
인형같이 나오셔서 '달콤 사케'를 대접해주시는데, 저도 꼭 마셔보고 싶더라구요~ㅎㅎ

모든 쇼트들이 다 훌룡했고, 결말도 굉장히 의미심장했습니다.
마지막 쇼트에서, 히로가 막 도망치는데... 거기서 終자막을 올리며 끝내버리는데,
저는, 감독이 영화 참 무섭게 끝내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ㅎㅎ

암튼 본론으로 가서, 순위놀이!! 항아리 = 소슌 >= 풍선~~입니다 ㅎㅎ
2 쪼으니까  
이 글 다 읽고나니 영화 한 편 쭈욱 본 것 같아요
대단하시네요
2 방구똥깨  
와... 전문가의 향기가 나는 글 잘봤습니다
13 리시츠키  
영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