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영화감상평

방랑자

1 마멜 2 528 0

방랑자를 보다 한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모나'를 돌봐주던 여교수는 그녀를 떨쳐버리듯 차에서 내리게 한 후에 집에 와서 제자를 맞이합니다. 여교수는 아직 준비가 채 끝나지 않았으므로 제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화면에서 사라지고 제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 화장실에 가보니 여교수가 전구를 만져 감전된 상태로 있습니다. 그녀를 부축하고 소파에 눕힌 그는 걱정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봅니다. 그 때 여교수가 그에게 말합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니 삶의 이미지들이 나를 스쳐간다. 나는 이미지 조각들과 싸웠다." 

 

 이 장면은 영화의 서사를 구축하는데 불필요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사실 영화 방랑자 자체가 서사랑 거리가 먼 영화기도 합니다. 주인공 모나의 죽음으로 시작되서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모나가 방랑하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건들이 서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거나 느슨하게 연결됩니다. 시퀸스와 시퀸스 사이에는 인과가 없고 파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나에겐 어떤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은 반反목적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음에 임박한 순간, 카메라가 모나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찍을 때 그녀는 죽음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여교수가 말한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이미지 조각과 싸우는 것처럼. 

 

 여기에서 저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삶에 그토록 애정이 없는 그녀가 왜 죽음에 저항하는가? 이것에 대답하기 위해서 바르다의 카메라가 모나를 어떻게 촬영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나처럼 보이지만 카메라는 그녀를 끊임없이 밀어냅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씬은 모나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모나를 촬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처음 화면에는 그녀가 없고 카메라가 트래킹하는 순간 모나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모나를 지나쳐갑니다. 모나가 부지런히 따라가보지만 카메라는 냉담하게 그녀를 떨쳐버립니다. 결국 화면이 끝나는 지점들은 대게 보잘 것 없는 풍경들 - 정리되지 않는 나뭇가지들이나 더럽혀진 벽, 마른 풀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거리 등 - 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삶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그리고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즉, 그녀는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지만 삶은 그녀를 끊임없이 밀쳐냅니다. 어떤 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고 타인의 선의를 당연시하거나 무시하는 그녀의 행동은 어쩌면 앞의 과정들에 지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삶의 형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녀가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지내는 시퀀스를 보면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모나가 노동자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그녀는 그의 방을 훑어봅니다. 방은 정리가 되지 않아 더럽고 그는 위험해보이지만 오히려 모나는 그것에 안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종의 동질성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녀 역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가 돌아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할께 생활할 수 없다고 얘기하자 모나는 다른 이들에게 버림받았을 때와는 다르게 격하게 반응합니다. 

 이 장면들은 어쩌면 모나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마음을 주고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외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항상 밀려난 것이고 바르다의 카메라는 그 어떤 설명 없이 카메라로 그녀를 촬영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프레임 안으로 끝내 들어가려는 그녀와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려는 카메라. 이 반복적인 운동은 그녀가 죽고 나서야 끝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까지 그녀는 이미지의 조각들과 끝끝내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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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3 리시츠키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도 안나지만~ㅋ,
모나에 대한 바르다의 카메라의 논리가 설명하신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데,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흥미로운 분석 잘 읽었습니다. 다음 영화평도 기대됩니다~ 자주 글 올려주세요~ ^^

P.s. 영화 원제와 제작년도도 적어주시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
1 마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도 추가해서 작성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