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번영

영화감상평

악덕의 번영 <Mademoiselle, 1966>

13 리시츠키 3 7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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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moiselle (1966)

Directed by Tony Richardson    
Writing Credits Marguerite Duras, Jean Genet
Cinematography by David Watkin
Stars    Jeanne Moreau



검은드레스에 검은 모자, 검은 힐, 검은 장갑을 낀 마드모아젤은 마을 수로의 문을 연다.  카톨릭 사제와 신도들의 마을 행진이 교차편집된다. 터져나온 거친 물살은 온 마을을 집어삼킨다. 유유히 범죄 현장을 빠져나와 꽃으로 만든 관을 쓰자, 숲 속 노인은 말한다 "그것은 신부의 꽃이다. 너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할것이다" 그녀는 들판을 지나다 새 둥지 앞에 멈춰선다. 그녀는 한 손에 새 알 네 개를 쥐고 스스럼없이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으깨버린다.

노인의 언표는, 에로티시즘을 질식시키는 카톨릭 사회의 질서이다. 그녀는 상복을 입고, 그 문명이라는 카톨릭 질서에, 홍수로서 익사시키고 화염으로서 질식시킨다. 왜 절도나 살인이 아닌가. 그건 개인적인 범죄고 인간적인 범죄일 뿐이다. 신만이 인간 문명을 멸살할 능력이 있다면, 그녀는 신이 되어야했다. 혹은 카톨릭 문명이 배제한 자연이 되어야했다. 그러니 그것의 종말은, 홍수와 화염으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카톨릭이 지배하는 프랑스 어느 시골마을. 이곳은 중세인가 스머프 마을인가. 사제와 마을사람들, 단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정교일치. 종교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며 노동이며 경제이며 정치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산다. 종교가 정확히 그 반대의 것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신성하고 깨끗한 것이된다.

그러나 신성함과 깨끗함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종교의 신성함과 깨끗함은 7가지 죄를 배제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7가지 죄만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종교는 비속하며 더러운 것이다. 신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따먹으라는 얘기이다. 이로서 인간은 죄를 짓는다. 종교에서 말하는 죄는 이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죄의 반대급부로서 선이라는 항이 만들어지고, 선은 신의 것이 된다. 이제 신은 인간을 심판하는 도덕적 절대성의 위치에 오른다. 7가지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죄들을 인위적으로 만듦으로써, 종교는 그것들로부터 구성된다. 따라서 종교는 비속하고 더럽다. 본편은 이러한 종교적 도그마의 이면을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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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녀에게는 이름이 없다. 단지 마드모아젤이라 불릴 뿐이다. 따라서 처녀라는 기표로서의 그녀는 가장 완고한 모습으로서의 카톨릭주의자이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녀는 가장 극렬한 반카톨릭주의자가 된다. 이처럼 이중적으로 분열된 그녀는, 마드모아젤이라는 이름으로 카톨릭 사회에 안전하게 위장하고, (이름없음)이라는 그녀로서 반카톨릭주의를 수행한다. 주체는 고정되지 않는다.

마누는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이태리 벌목공이다. 마을 여자들은 모두 그를 탐내는데, 그들 남편들이 가지고 있지않은 건장함과 자유로움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카톨릭이 배제하려는 외설성과 타자성의 약호이다. 따라서 그는, 원하든 않든, 카톨릭의 반대편에 위치지어진다. 그는, 훗날 마을의 남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시체는 덤블 속에 숨겨진다. 이는 카톨릭주의의 본질이 억압과 폭력 그리고 추방에 있으며, 카톨릭은 이것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마누의 건장함과 자유로움,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녀(마드모아젤)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만난다. 하나는 카톨릭주의자로서의 그녀가, 마누의 대리인인 그의 아들을 학대하는 것이다. 말대꾸를 한다거나, 반바지를 입고 등교를 한다거나, 씻지 않은 무릎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서. 다른 하나는 (이름없음)이라는 반카톨릭주의자로서, 마을에 재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강박적으로 실행된다. 마치 <드레스드 투 킬>의 마이클 케인이 여장을 하듯, 그녀는 짙은 화장을 하고 검은 힐과 검은 장갑의 복장도착자로서 자신만의 의식을 수행한다. 그건, 카톨릭이라는 문명에, 마치 재앙을 내리듯 화염과 홍수를 일으키는 것이며, 비소독으로 모든 가축을 몰살하는 것이다. 문명에 조종을 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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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복수는 외적으로 그녀의 반카톨릭주의를 수행해주지만, 내적으로는 그녀 자신을 근본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에 그녀는 분홍색의 드레스로 갈아입고, 마누를 만나러 간다. 클라이막스에서의 미장센과 편집의 몽환적인 앰비언스는 너무나도 적막한 표현주의적 제의를 동반한다.

1.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히 서있는 오솔길의 롱샷. 오른쪽 중경에서 그녀는 마누를 기다리며 서성인다. 왼쪽의 중경에서 마누가 휘파람을 불며 내려온다. 그녀의 측면얼굴이 접사로 인서트 되며, 외화면의 휘파람과 연결된다. 다시 롱샷으로 컷백되어, 오솔길에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휘파람도 멈춘다. 다시 마누가 휘파람을 불며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의 접사가 인서트된다. 다시 롱샷, 그녀의 긴장과 설렘은 프레임 내 숲 속 가득 숨막히게 퍼저나간다 (평각, 롱샷).
2. 그리고 마누가 갑자기 "쩍"하고 거대한 나무를 도끼로 내리찍는다. 나무 등이 부서져내린다 (평각, 접사).

3. 역광의 나무, 두마리의 새가 투명한 하늘로 솟구친다 (앙각, 접사).

4. 마누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한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평각, 접사).

이때까지의 롱테이크 롱샷의 숨막힐듯한 고요 속 긴장을, 접사 3컷을 순간적으로 연달아 붙임으로써,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씬은 둘만의 우주로 전이한다. 전위 한다. (인서트컷을 제외하고) 단 4컷만으로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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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내들의 추적이 교차편집된다. 둘은 귀신조차 존재할 수 없는 태고적 그들만의 에덴동산에 있다. 이곳에서는 시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강렬한 1점조명 아래 오직 빛과 어둠 뿐이다. 이곳에서는 언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형언할 수 없는 침묵과 휘파람 소리 뿐이다. 그녀는, 마누의 긴 그림자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멀리서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 어떠한 억압도 소외도 없이, 둘은 거룩한 죄를 수행한다. 신성모독은 가장 타락한 방식의 에로티시즘으로서 수행된다. 그리고, 그녀는 장갑을 불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LMDb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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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3 소서러  
리시츠키님의 숏바이숏 분석과
심층적인 분석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네요.
글 읽는 고도의 집중력에 월간칼럼 얘기가 안 나올 수가....^^
근래에도 밝혀지는 가톨릭계가 자행한 여러 가지 흑역사들을 보면
영화가 더욱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색채가 세개로 나눠진 포스터 볼 때 (한쪽이 보라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던 걸 구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프랑스 국기가 떠올랐는데 나라의 허약한 내실을 폭로하려는 것인가 싶기도 했네요.
태어나서부터 나이 들면서 버림, 부랑, 범죄 등 산전수전 다 겪으며
비정한 세상과 살아온 원작자의 시선을 감독이 센치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양극단의 부조리함에다가 중간자가 있는 걸 마을에서 그려내는 걸 보면
라스 폰 트리에의 최고작 "도그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 몇 달전에 소개해주신 피터 셀러스의 청승가련 코믹소동극 <성의 전투>도
인상깊게 보고 나서 리뷰 재밌게 잘 읽었어요. 우리가 등골 빠지게 각박하게 살아왔는데
신임받는 후배가 올라타는 웃픈 조직 서열은 낯선 주제가 아닌데(ㅠㅠㅠ)
오프닝씬부터 엔딩씬까지 그걸 기이하게 풀어냈더라구요.
포스터만 보면 숙적끼리 서로 핡키고 난동부리는 남녀 영화일 줄 알았는데(ㅋㅋ)
어쨌든 그런 전화위복과 혼자 삭히는 개인의 처지를 전복해서 묘사하는 게 특이했어요.
13 리시츠키  
저야말로 영자막으로 띄엄띄엄 이해하며 봤던 영화를,
덕분에 한글자막으로 완전히 감상할수있었네요.

숲속에서 마누와 사랑을 나누는 클라이막스 전에, 영자막으로 볼 때는 대충 뭉뚱그려서 이해했었는데,
잔느가 교실에서 애들 모아놓고 일장연설하는, 실은 자신의 범죄를 자백하는, 장면도 쇼킹했습니다.
교실 밖에서 종소리와 함께 카톨릭이 주재하는 장례식이 열리고,
잔느가 "국가(공무원)는 방화범이자 아동유괴범이며, 여왕은 구데기이다. 나는 전사이며 성자다. 나는 잔다르크다" 하는 장면요.

60년대 영화들이 대부분 체제 비판적이며 우상파괴적인데,
이 영화는 비판을 넘어 압전히 말살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거 같더라고요.
촬영도 대단하고, 장 주네에게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받았는지 잔느는 자신의 배역을 완벽히 이해한듯 하더라구요.
영화 속 잉여의 숏이 참 많은데,  잔느가 그 표정과 행동으로서 완벽하게 연기하는거 같았습니다.
원작이며, 배우, 촬영, 감독 모두 최고의 역량이 발휘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폰 트리에 영화 저도 참 좋아하는데, 도그빌도 그렇고 그의 영화들이 다 무시무시하죠.
암튼 덕분에 저야말로 영화 잘 봤습니다.^^
17 바앙패  
이런영화도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