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묘지에서

영화감상평

태양의 묘지에서 <기러기 절 (雁の寺,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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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절 Temple Of The Wild Geese, 雁の寺, 1962


Director    Yûzô Kawashima
Stars    Ayako Wakao



교토, 고봉암 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인물의 이야기는, 20세기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명백한 알레고리다.

영화는 동자승 지넨의 시점으로 본 그 시간, 그 곳에서의 가혹한 성장기이다.

지넨은, 주지의 불법(佛法)을 가장한 권력관계에 순종을 강요받고,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그리고 출생의 비밀, 그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묵묵히 복종을 수행한다.

그런 주지와 지넨의 관계 속에, 아야코가 개입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운명처럼,

불교에서 금지하는 분노, 살생, 애욕, 거짓말과 살인의 죄를 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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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가 주지를 그리고 동자승 지넨을 만나는 첫 시퀀스부터 불온한 에너지는 프레임 가득 들끓는다.

감독은, 주관적샷과 객관적샷을 오가며 이들 세 인물 간 갈등과 성적 긴장을 가장 정확한 카메라로 담아낸다.

시선과 시선이 오고가며, 공간과 공간은 막히며 이어진다.

따라서 감독의 카메라 시점에 따라, 감정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샷의 반응샷으로서, 대사 한마디 없이, 지넨의 심리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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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생을 위해 중학교 교련교육을 거부한 그에게, 주지의 사디즘은 더욱 가혹해진다.

이어 지넨의 출생의 비밀이 폭로되고, 그는 불살생의 금기를 위반한다. 연못의 잉어를 살생한다.

단 4컷으로 표현된 이 장면 역시, 감독은 대사 하나없이 이미지만으로 그의 분노를 조용히 그러나 깊은 심연의 냉정함으로 담아낸다.

1. 부감 : 그는 정원의 연못으로 뛰어간다. 마치 그의 마음인듯, 햇빛과 물결이 잔잔하게 너울거린다.

2. 부감 : 유유히 수영하는 잉어의 등에 칼이 꽂힌다.

3. 앙각 : 지넨은 프레임 모서리에 붙어서서, 자신의 마음 속 일렁이는 물거품 소리를 듣는다.

4. 앙각 : 잉어 한 마리가 왼쪽 밑으로 추락하고, 피흘림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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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넨의 과거가 플래시백 된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가난한 지넨이 입양간다.

아야코는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지넨에 대한 측은함과,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죄책감으로 그를 찾아간다.

지넨은 또다시 금기를 위반한다. 절망과 색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절망과 살인 역시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는 구원을 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신의 손에 의한 야소교식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라는게 붓다의 가르침이다. 그는 깨닫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거나 혹은 하나같이 모두 타락한 자들이다.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통속적 의미에서) 가장 도덕적이라는 주지는,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국주의를 환유한다).

죄인들의 세상. 지넨은 죄를 선택한다. 이는 실존에 대한 은유이다. 그는 주지를 죽이고, 어미 기러기의 그림을 찢어 달아난다.


* 아야코는 끝내 필름느와르의 블랙위도조차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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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지가 죽자, 같은 말로 전쟁이 끝나자, '브랜드 뉴 파파' 미국이 찾아온다.

칼라화면과 스윙재즈로 전환되는 에필로그에서 카메라는 트래블링한다.

위선과 폭력의 고봉암은 따뜻하고 정겨운 모자관계의 기러기 절로 윤색되어 미국인 관광객들을 맞는다.

마지막 쇼트는, 복원된 기러기 모자의 그림을 프레이밍하며 영화를 끝맺는다.


디제시스 속 실재의 기러기와 그림의 이미지로서의 기러기, 그리고 그것을 복원한 또다른 이미지로서의 기러기.

이는 곧, 20세기초 지넨과 주지의 기러기에서, 20세기 중반 일본인들과 미국인들의 기러기.

이는 다시, 프레임 속 기러기와 프레임 밖 1962년 일본과의 관계를 지시한다.

감독은 자신의 몇몇 영화의 에필로그를 통해, 이러한 아이러니를 자주 보여주었는데,

이는 일본 현대사에 대한 그만의 리얼리즘적 태도를 보여주는듯하다. 60년대 만만만세!! 걸작 *LMDb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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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21 에릭카트먼  
왠지 감상평이 올라올 것 같았는데 ㅎㅎ 올라왔군요 ㅎㅎ
9.6이라니!! 엄청 인상깊게 보셨나 봅니다 ㅎㅎ
올라오는 감상평들을 보니 점수를 조금 후하게 주시는 듯한 인상??? ㅋㅋ
저는 엄청 짜게 주는 편이라서... ㅋㅋ

그나저나 영화를 읽는 솜씨가 탈지구 급이신듯 해요
글의 퀄리티가 ㄷㄷ 합니다
번역한다고 여러 번 봤는데도 캐치하지 못한 것들을 날카롭게 분석하신 글을 보니 절로 탄복이 듭니다!!!
리시츠키 님 섹션이 따로 있어도 재미있을 듯한데... ㅎㅎ

막말, 짐승, 기러기, 스자키 전부 9점대가 넘는군요 ㅎㅎ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만 시무룩하게 됐군요.....ㅋㅋ 저는 엄청 좋아하는데 ㅠㅠ)
13 리시츠키  
재미나게 본 영화들 위주로,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감상글 적다보니,
아무래도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어 제 평점놀이에 인플레/디플레가 심한거 같습니다~ 저도 알아욤!!ㅋㅋ
대충, 마이너스, 플러스 1~2정도하면, 그나마 합리적(?)일거 같아요~ㅎㅎ

근데, <짐승>과 <기러기> 평점은 다 카트만님 때문이에요~~ㅋㅋ
<막말>밖에 모르던 제게, 이 걸작들을 알게된건, 개인적으로 제 영화감상경험의 일대 사건이었거든요~ㅎㅎ

<안마와 여자>, <허니문킬러스 (최고!!)>,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같은 영화들도 제 진심입니다~~

<여자>는 저도 좋아하는 영화고 만듦새도 나무랄데없다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평가 보류 했습니다.ㅋㅋ
영화의 어떤면에서, 감독이 좀 극단적이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뭐 그래도 저역시 좋아하는 영화긴 합니다~

제 글 나부랭이는, 이 훌룡한 영화, 숏과 숏 사이를 찢어발겨서 감동의 비밀을 찾아보자하는 심정으로;;;;
그러나 늘 그렇듯 별 신통치않은 글이 나왔는데;;; 다쓰고 읽어보면, 색안경 낀 제 이상한 생각들만 끄적여져있네욤~ -0-
암튼, 이런 잡문이라도, 재미나게 읽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21 에릭카트먼  
숏 바이 숏으로 분석하는데 대가이신 듯 해요 ㅎㅎ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데 ㅋㅋㅋ

누군가의 잡문이 누군가에게는 명문이 될 수 있는 법이죠~~
그러니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효~~
13 리시츠키  
재미난 영화들로 자주 만나요~ 순위놀위는 필수!!ㅋㅋ
20 암수  
리시츠키님의 영화평을 읽으면..
영화에 대해 "배우신 분"임을 누구나 캐치할 수 있죵...
13 리시츠키  
영화책 몇 권 읽은게 다인데욤~ ㅜㅜ
영화 아직 안 봤으면 언능보세욥!! 걸작 오브 걸작 입니닷!! ㅎㅎ
24 umma55  
LMDB!!!! IMDB보다 정확한듯!!!
13 리시츠키  
B짜를 좋아하시는 군요~ 동지를 만난듯 합니다~ ㅎㅎ
S 줄리아노  
부끄럽지만, 저와 참 비슷한 시각에서 보셨군요.
배경이 군국주의 일본이 아니라 에도 시대였으면 좀 달랐겠죠.
계속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카메라광 이웃 주지도 하나의 도구로 보입니다.
단, 처음 "모자 기러기" 그림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와 먹이는 장면이고
엔딩의 복원된 그림은, 먹이를 주고 떠나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 이제 
다시 돌아올것 같지 않은 어미의 모습의 의미는 어떻게 보시는지...?
13 리시츠키  
말씀하신 것처럼 저역시 그 어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혹은 어미 기러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밑에는 제 횡설수설입니다. 안 읽으시는게 좋겠지만, 줄리님의 아까운 시간에 미리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몇 자 뚜드려 봅니다.

지넨은 영화 내내 주지의 폭력에 고통스러워하며 그것에 벗어나려 수련에 임합니다. 동시에 지넨의 내면에는 이런한 고통의 근원이 잃어버린 어미에 있다 생각하여, 필사적으로 어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가 어미의 부재로서 공백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의 욕망은, 영화 첫장면에서 보듯, 화가가 그린 기러기 그림, 즉 어미 기러기가 새끼 기러기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으로 형상화 됩니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 인물들이 모두 어미 기러기라고 말하지만, 그것의 암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어미 기러기는 그림에서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넨은 어미 기러기를 애타게 찾지만요).

그러나 이건 그림입니다. 영화 속 실제 기러기를 그림으로 모사한 기러기일 뿐이죠. 지넨이 갓난아기 때부터 버려져 실제 어미를 본 적 없듯, 이 그림으로서의 어미 기러기 역시 모사, 환상일뿐이죠. 결말에서 그는 어미 그림만을 찢어 절을 탈출하지만. 실제 어미는 끝내 찾지 못할것입니다. 그가 사로잡힌 그 환상의 이미지는, 결국 그림일 뿐이니까요. 지넨이 간절하게 필사적으로 찾는 어미 (어미 기러기 그림)는, 훗날 미국관광객의 명화가 되어 다시한번 그를 좌절(소비) 시킵니다.

결말이후 그가 절을 떠나 만에 하나라도 우연히 실제의 어미를 찾는다해도, 그림 속의 모자 기러기 그림과는, 그가 욕망하는 모자관계와는, 아마도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본편에서 그가 군국주의 일본의 정치경제적 질서하에 신.음했듯, 에필로그 시퀀스는 미국주도하의 그것을 보여줍니다.

타이틀쇼트의 모자 기러기 그림의 클로즈업쇼트는, 마지막쇼트의 그것에서 그 위치가 4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같은 구도이지만 왜곡된 45도 기울기의 변화는, 단지 주지(일본 군국주의)에서 미국으로 지배 주체가 바꼈을 뿐,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만약 살아있다면 노년이 됐을 지넨에게도 무엇 하나 바뀐거 없는 세상일 테고요. 또한, 전자는 어미와 새끼 기러기 둘이지만, 후자는 (제 상상입니다만) 어미 기러기가 아빠 기러기로 바뀌었고 새끼는 둘로 늘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어미 기러기는 그림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미 기러기는 커녕, 모자(母子)조차 사라졌습니다. 복원되면서 새 가족으로 대체된 것이지요. 전자든 후자든 애초부터 어미 기러기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넨은 물론 그의 친엄마도 62년이 오기전에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패전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식되고, 거기에 손잡은 우익 지배계급 (주지의 후예들 혹은 아빠기러기인 미국)의 정치질서 속에 어쨌든 경제는 대단히 부흥합니다(그러나 그림 속 새끼 기러기 둘은 45도 기울어진 바위 위에 위태롭습니다). 이 정치경제적 변화, 달라진 세상에, 60년대 학생운동과 시민사회는 격렬히 저항합니다. 말하자면, 어미 잃은 지넨(미성년이라는 설정)은 끝내 아버지의 질서를 거부합니다. 이는 69년 전공투의 마지막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카와시마 유조의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 말하자면 60년대 일본은, 이제 더이상 어미(기러기)를 상상할 수도 욕망할 수도 없다는 감독의 도저한 비관주의일 것입니다. 에필로그 시퀀스를 통해 감독이 말하는 이러한 리얼리즘적 태도는, 프레임(스크린) 밖 60년대 일본사회 바로 그 상황 앞에 당대의 일본관객들을 정확히 위치시킵니다. 그리하여, 결과는, 2021년 일본의 정치경제적 상황, 감독이 그린 <기러기절 62>과 얼마나 먼지 혹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두 아시는 바 대로 입니다.

참고로, 감독의 3편, <여자 61> <짐승 62> <기러기 절 62>은 그런의미에서, 같은 주제(미국과 일본우익 주도 하의 정치경제적 질서)의 다른 판본일 것입니다. <짐승>에서 주인공 가족 아파트 상공을 배회하는 미군비행기, <기러기절> 에필로그의 사진찍는 미국 관광객들(줄리님 말씀처럼, 본편의 사진기자 땡중과 겹칩니다), <여자>는 잃어버린 어미의 변형으로서, 일본우익들 세상 속 비참한 아야코의 모습일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서 그녀는 어디로도 갈 수가 업고, (지넨처럼)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영화가 끝이 나죠. 그 전 쇼트들에서의 "시계" 모티프와 "소년"의 캐릭터는 그래서 의미심장 합니다.
21 에릭카트먼  
여윽시 멋져브러요~ 추천박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