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을 앓는 80년대 마드리드를 위한 블랙코미디

영화감상평

신경증을 앓는 80년대 마드리드를 위한 블랙코미디 <내가 뭘 잘못했길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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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말을 포함합니다 * * *










 

¿Qué he hecho yo para merecer esto?, 1984


   Director        Pedro Almodóvar
   Writer          Pedro Almodóvar
   Stars           Carmen Maura
 



지금/여기의 84년 마드리드의 빈민가 아파트. 욕망한다는 건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혹은 빼았겼다는 말이다.

독재자 프랑코가 죽었다해도, 그들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죽지도 않는 카톨릭주의는 이들을 무의식에서부터 옭아맨다.

도시는 너무 춥다며 매일같이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시어머니, 독일 여가수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택시운전사 남편,

시골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마약상 첫째아들 토니, 누구도 내 삶을 건들지 못한다는 동성애자 둘째아들 미구엘,

이들 가족원들 모두를 건사해내기 위해 하루하루 아르바이트와 집안일에 시달리는 글로리아,

소아성애자의 치과의사, 마조히스트이자 늘 퇴짜맞는 원고를 쓰는 소설가, 도벽이 있는 소설가의 아내,

자살 직전의 퇴물 독일여가수, 배우의 꿈을 꾸는 매춘부 크리스탈, 이유도 없이 딸을 학대하는 후아니,

집나간 아빠를 그리워하며 입양을 꿈꾸는 -심지어- 초능력을 가진 딸 바네사까지.

영화는 마드리드 빈민가에서의 글로리아의 삶을 전경화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각자의 욕망으로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전개된다.

욕망을 가졌다는 건 결핍을 가졌다는 것이고, 그 결핍을 해소할 수 없다는 건 욕망을 해소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재된 원인을 찾지 못하는 동어반복, 삶의 질곡은 늘 여기서 비롯된다. 물론 원인은 늘 명확하다. 돈이다.

그러나 글로리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하물며 욕망의 결핍을 투사할 대상이라도 있다.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딸을 학대하거나, 마약에, 가/피학 판타지에 탐닉할 수도 있다.

문제는 글로리아다. 하루하루 가족들을 부양하며(뒤치닥거리하며), 같은말로 주부라는 성역할에 고정된 이후부터 그녀는

이 모든 모순을 혼자 떠안게 된다. 이 모순의 이름은 신경쇠약이다. 순간적인 흘레붙기나 세제냄세보다도 못한,

돌팔이 의사들의 처방전은 물론 아무 효과가 없다. 왜냐면 처방된 약들이 모순을 해소하는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개인들에게 전가하고 억압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를 위한 비용은 고스란히 체제의 모순을 재생산하는 비용이 된다.

그리하여 세속적 사회에서, 결핍을 해소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물론 범죄뿐이다.

물론 걸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예정된 출구로서의 범죄는 모의되고 실행된다.

그러나 이들의 어설픈 범죄시도는 실패한다. 퇴물 독일 여가수가 자살해버린 것이다.

범죄의 성공이 찾아오기 전, 우울의 치사량이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의 욕망은 다시 제자리로, 결핍도 제자리로.

가난한 사회에서, 욕망을 이룰 수 없는 사회에서, 범죄는 따라서 늘 범죄사회학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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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전, 글로리아와 후아니는 가난을 토로하며 나란히 수평으로 보도블럭을 걷는다.
이 장면을 통해 알모도바르는, 세상으로부터 말그대로 유리된 존재로서의 글로리아의 위치를 가장 절묘한 미쟝센과 편집으로서 보여준다.

마치 파노라마샷인듯, 수평트래킹샷인듯, 그녀의 존재를 사물로부터 타자화하는 숏들을 연달아 네 장 붙여놓는다.

전경에는 너무 가난하여 그녀가 가질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찬 상점의 내부가 있다.

그 경계로 보이지 않는 상점의 전면유리가 있고, 실내의 가구들과 물건들, 입구의 문을 통해 프레임을 형성한다.

중경에는, 상점 밖의 보도블록을 수평으로 걷는 글로리아가 있다. 그녀는 빗길을 걷는다.

전경과 중경을 가르는, 상점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프레임으로서의 전면유리는, 말그대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 속 그녀의 유리벽을 가리키고, 이는 그녀의 존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비유한다.

더구나 카메라는 상점 내부에 존재하기에, 이게 미쟝센의 핵심이다, 이는 마치 상점 내 물건들의 시선으로 그녀의 모습을 응시한다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그녀가 철저히 사물의 질서에 종속된 존재라는 것을 가리킨다.

더 넓게 보자면, 상점 내 물건들 또한,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는 감독의 전언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면 글로리아는 나중에 소아성애자 치과의사에게 둘째아들을 치료비와 교환하고(입양시키고),

그 댓가의 교환받은 돈으로 상점 내 전기 고데기와 다시 교환을 하게되지만, 그렇다해도 그녀의 모순은 당연히 물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교환되는 물건과 글로리아의 시점은 역전된다. 글로리아가 사물로부터 소외되는 전 씬의 역샷으로 촬영된다). 즉, 사물은 이제 사람과 동격이 된다.

이처럼,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화폐교환을 보여주는 샷과 샷들의 연속은, 결국 화폐교환 경제란 고통을 교환하는 경제체제이며,

따라서 이 체제에 사는 한 고통은 불가피한 것이리라는 감독의 전언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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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두 존재는 초능력소녀 바네사와 도마뱀의 존재이다.바네사의 초능력은 감독의 영화적 유희이자 극적인 코미디를 위해 사용되는데 반해,

도마뱀의 존재와 그 역할은 정반대이다. 도마뱀은 내러티브의 전개에 사실 아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무 관련 없음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그것은 영화 전체의 보이지않는 곳에서 네러티브 기우고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욕망을, 더 나아가 그들이 처한 시스템을 상징하는 모티프가 되기 때문이다.

도마뱀은, 영화 시작하고 인물 소개가 모두 끝난, 이후의 시퀀스부터 바로 등장한다. 겨울, 황량한 아파트 풍경 앞 야트막한 야산 위 도마뱀이 나타난다.

할머니와 토니는 산책을 나갔다가, 도마뱀이 쫓아온다며 애완동물로 키우기로하고 이름을 지어준다. 그것의 이름은  "돈(dinero. 스페인의 과거 화폐단위)"이다.
돈(화폐 시스템)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속의 인물들의 역할과 관계를 구성한다. 따라서 영화 속 인물들은 이제 내러티브가 진행되며,

도둑질을 하고 마약을 판매하고 매매춘을 하고 아들을 화폐와 교환하고 사기를 치고 자살을 하고, 우발적 살인을 하게한다.

클라이막스에서 글로리아가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의 미쟝센과 편집은 주목할만하다.

해 진 저녁, 글로리아는 마치 살인현장으로 초대되듯 자신의 집으로 입장한다. 이때 카메라는 고정된 채 집 안 내부에 위치지어진다.

남편이 흠모하는 독일여가수의 노래가 집안 가득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들의 관계를 표상하듯 집 안 내부의 프레임은 방과 벽을 통해 모조리 분리되고,

조명은 마치 느와르의 공간처럼 짙은 어둠에 잠겨있다.

글로리아와 남편은 서로 부엌과 화장실의 공간에 따로 분리되어있다가, 부부싸움을 위해 남편이 부엌으로 이동한다.
남편은 왼쪽에, 글로리아는 오른쪽에 위치하여, 투샷 바스트샷으로 프레이밍된다. 이때 글로리아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에 잠겨있고 하이라이트부분에는 붉은보랏빛의 조명이 드리운다.
다음 컷은, 직부감으로, 이 둘 사이 정가운데로 도마뱀이 기어와 마치 판정을 본다는듯 가운데로 위치한다. 도마뱀만이 조명을 받는다.
다음 컷은, 직앙각으로 전환되면서 남편은 오른쪽으로 글로리아는 왼쪽으로 위치를 옮겨 180가상선이 역전되고, 남편이 글로리아의 따귀를 때린다. 역광으로 인해 둘은 공간에서 분리된 채 실루엣으로만 남는다.
다음 컷은 직부감의 도마뱀 단독샷인데, 전 샷과의 편집으로 인해 도마뱀은 남편으로 분하게된다. 남편의 위치와 시선을 고스란히 이어받기 때문이다. 도마뱀 위로 글로리아의 코피가 떨어진다.
다음 컷에서, 둘의 위치는 다시 제자리로 오게되고, 글로리아는 남편을 살해한다. 오프닝에서 글로리아는 검도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시퀀스의 마지막 컷은, 두려움과 죄책감에 놀란 글로리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끝낸다.

이처럼 도마뱀이란 존재는, 네러티브를 전개하게하고, 그들의 무의식을 형성하는 모티프가 된다.

그들의 살인을 추동하고 수행하게 하는것, 그리고 오롯이 관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그가 도마뱀(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마뱀의 입장에서는, 가장 억울하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죽어야되는지의 또다른 의미의 제목이기도 할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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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간다. 이제 글로리아에게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감독은, 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서서 걸어오는 장면을 일 분여의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샷으로서 글로리아의 감정을 전한다.

클로즈업샷은 이어지는 샷에서는 계속된다. 글로리아는 텅 빈 집 안으로 입장하고, 그녀의 시선은 360도 시점샷으로 이어진다.

삶의 공허함과 부조리의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던 그 공간이 보여진다.

그러나 그 시점샷은, 감독의 교묘한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으로 인해, 그녀가 그녀 스스로를 응시받는 존재로 위치를 탈바꿈시켜 버린다.

감독의 카메라를 따라가던 독자 역시 순간적으로 감정의 위치가 변경된다.

이어 창문을 바라보게되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실존적 허무 앞에서 자살할려는 그녀에게, 입양갔던 동성애자 둘째아들이 돌아와 해후한다. 그녀를 구해준다.

영화는 이렇게 닫힌결말의 기이한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과연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될까.

FIN자막이 올라오기 전, 감독은 다시 한번 건조한 마드리드 빈민가 아파트의 전경을 보여주며, 여전히 삶은 녹록치 않을거라 예고하지만,

글로리아는 동성애자 둘째아들과의 새 가족을 통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으리라.

예측할 수 없는 플롯과 누구도 대상화하지 않는 카메라를 통해,
알모도바르는, 군부독재 이후의 80년대 마드리드에서의 삶과 부조리, 신경증을 따뜻한 블랙코미디로 껴안는다. 걸작!! *LMDb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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